[티브이데일리 조현민의 호크아이] 대중은 서민이건 부자건 나름대로 스트레스가 쌓이고 고민이 생기며 따라서 그 무엇인가를 통해 그것들을 해소하고 잠시나마 잊고자 한다. 그 대리만족의 스트레스 해소법으로는 대표적으로 노래가 있고 드라마 예능 영화 등이 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과학이 발달할수록 사람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지기 마련이고 사람간의 관계 또한 복잡다단해지기 마련이어서 그럴수록 대중문화 혹은 연예 콘텐츠에 대한 대중의 욕구는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대생활에서 가수와 배우라는 연예인은 필수적인 직업이고 그럴수록 그들에 대한 대중의 필요충분조건은 커지며 자연스럽게 연예인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가수와 배우도 똑같은 사람이다. 그들에게도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이 있고 가수와 배우라는 직업적 특성에 따른 매뉴얼이 있기 마련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가수와 배우는 하는 일이 다르다. 가수는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배우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한다. 가수는 자신의 음악적 성향에 따라 음악성의 방향을 정해놓고 살면 되지만 배우는 매 작품마다 자신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때로는 가수가 배우가 될 수도 있고 배우가 가수가 될 때도 있다. 대중예술이 발달하고 삶의 방식이 복잡해질수록 연예인의 생존의 방법도 달라져 이에 순응해야 하기 때문이고 연예인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그 개개인의 욕심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수록 가수와 배우의 경계가 무너지는 추세고 연예산업이 근래 들어 급속도로 발전해 세계로 뻗어나간 한국의 연예계에서 이런 특성은 더욱 심화된다. 가수와 배우의 직업적 구분을 짓기 보다는 양쪽에서 동시에 활동하는 멀티연예인이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분명히 가수와 배우로 살아가는 방식은 각각 다르기 마련.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수로 조용필을 들 수 있다. 신인시절 '그 사랑 한이 되어'라는 영화에 딱 한 번 출연한 적이 있지만 조용필은 그 외에는 오로지 가수활동에만 전념해온 인물이다. 드라마에 출연한 적도 없고 예능 프로그램이나 토크쇼에서 말로 대중을 웃긴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는 오로지 노래를 통해서만 대중과 소통하려 했고 이미 전성기 때 TV의 틀에 박힌 쇼프로그램 출연을 거절하고 오로지 공연으로만 대중과 만나온 대표적인 한국의 가수다.

가수는 노래를 잘 부르는 연예인이다. 지극히 당연한 진리고 그것은 기본 바탕이다. 노래 못 부르는 가수는 가수가 아니라 가수를 흉내 내는 연예인일 뿐이다. 김흥국이라는 이름 앞에 가수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그가 '호랑나비'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고 그 인기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활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김흥국을 가창력이나 음악성이 뛰어난 가수라고 평가하진 않는다. 그가 방송에서 시청자를 웃기려고 말장난을 하거나 슬랩스틱 코미디를 펼치는 장면은 흔하지만 콘서트를 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다.

그러나 조용필은 오로지 자신을 표현하고 대중과 대화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을 만들어서 그것을 전문공연장에 올리고 그 공연에 대한 값어치를 인정해 비싼 관람료를 지불하고 입장한 관객하고만 음악으로 소통하려 한다. 그게 가수다.

더불어 가수는 음악의 전문인인 만큼 악기 연주, 작사, 작곡, 편곡 등에 전문적이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기본은 해야 한다. 기타나 피아노조차 연주할 줄 모르는 가수라면 그 가수는 로봇이나 광대지 결코 뮤지션이 아니다. 조용필은 내로라하는 가창력의 소유자인 동시에 훌륭한 기타리스트다. 물론 그의 작사 작곡 편곡 능력은 이미 충분히 검증됐다.

김건모는 리듬앤블루스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는 국내 가요계에 흑인음악 돌풍을 일으킨 선구자이면서 뛰어난 피아니스트다. 록밴드 출신의 이승철 역시 웬만한 악기는 못 다루는 게 없다. 물론 그들 역시 싱어송라이터를 겸하고 있다.

배우는 연기자다. 연기를 못 하는 배우는 배우가 아니라 역시 작가가 써준 대본을 책 읽듯 읊조리는 초등학생에 다름 아니다. 배우는 대본이나 시나리오를 보고는 캐릭터를 분석해서 자신이 그 배역 안으로 녹아들어가야 하며 작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읽어내서 그것을 대중에게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 물론 김수미처럼 뛰어난 배우는 애드리브를 겸해 그 캐릭터를 더욱더 확실하게 발전시키기도 한다.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작가 연출자와의 완벽한 호흡이 필수다. 작가의 집필의 의도와 감독의 연출의 의도가 뭔지 정확하게 파악한 뒤 그들과의 대화와 교감을 통해 캐릭터를 제대로 구현해내야 한다. 그게 연기력이다.

그 연기력은 대부분 경험에서 우러나온다. 가창력은 타고 날 수 있다. 남들보다 월등한 가창력을 지닌 원석이 기획사의 간단한 조련에 의해 보석으로 가다듬어져 프로페셔널 가수로 데뷔한다면 배우는 인생경험과 연기경험을 거쳐야만 제대로 무르익은 연기력이 나온다. 타고난 아역배우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배우들은 조련에 의해 연기의 기본기를 닦은 후 데뷔해서 연기를 펼치지만 대부분 설익은 연기력으로 '발연기' 논란을 야기한다.

하지만 그들은 세월과 경험을 통해 안정된 연기력을 갖출 수 있다. 현재 누가 뭐래도 외모와 연기력에서 부족함이 없는 장동건 정우성 이병헌 등도 모두 그런 길을 겪었다. 현재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칭송받는 최민식은 신인 연극배우에서 하루아침에 드라마계로 진출한 방송계 정식 데뷔작 '야망의 세월'에서 발연기로 욕을 바가지로 먹은 바 있다.

그렇다면 요즘 대다수의 아이돌이 가수와 연기 활동을 병행하는데 그들의 연예인으로서의 삶의 방식은 올바를까?

즉답은 '아니다'다. KBS2 ‘개그콘서트’의 '시청률의 제왕' 코너를 보면 드라마 제작자 박대표(박성광)가 드라마 촬영현장에 나타나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막장요소도 집어넣고 억지로 자극적인 코드도 집어넣다가 해도 해도 안 되면 마지막으로 쓰는 히든카드가 아이돌 출신 배우의 투입이다. 아이돌의 투입은 일시적인 시청률 상승에는 효과가 있지만 이내 시청률의 급락을 초래한다. 그 이유는 발연기다.

각자 가수로서, 혹은 배우로서 사는 법도 녹록치 않은데 가수 겸 배우로 사는 길은 더욱 험난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어렵고 힘든 일을 기획사는 20대 초중반의 아이돌에게 강요한다. 아직 연예계가 어떤 곳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가수와 배우가 어떤 직업인지 확실하게 개념이나 직업관이 성립되지 않은 어설픈 사회 초년생에게.

하지만 이승기처럼 발연기 논란을 세월과 노력으로 극복하는 만능 엔터테이너도 있고 수지처럼 부족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안성맞춤인 캐릭터를 만나 오히려 연기활동에 추진력을 받아 승승장구하는 아이돌도 있다. 또한 소녀시대라는 거대한 프리미엄을 뒤로 하고 연기자로서 성공하기 위해 시청률도 보장 안 되는 케이블TV 드라마에서 묵묵히 연기경력을 쌓는 수영도 있다. 왜냐면 원소스멀티유즈 시대에 아이돌의 연기돌 겸업은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아이돌이라는 한계에 있다. 가수는, 특히 아이돌은 신곡 음원 두세 개 발표해서 승부가 안 나면 바로 활동을 중단하고 다른 길을 찾아봐야 한다. 하지만 배우는 다르다. 비록 지금은 크게 부각되지 않을지라도 인내심을 갖고 작은 배역이라도 끊임없이 찾아서 연기인생을 지속한다면 언젠가는 빛을 볼 수 있다. 성동일은 1999년 SBS 드라마 '은실이'의 빨간 양말 캐릭터로 하루아침에 무명 타이틀을 벗어던졌으며 이후에도 꾸준하게 조단역을 거치면서 오늘날의 명품조연자로 자리를 굳힐 수 있었다. 그가 '빨간 양말' 캐릭터 성공 이후에도 중간에 슬럼프가 있었을 때 배우의 길을 포기했더라면 오늘날의 명품조역 명단 중에서 한 명이 지워졌을 것이다.

배우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가수는 일부 실력파를 제외하곤 나이가 먹으면 자연스럽게 도태되기 마련이지만 배우는 정년이 없다. 안성기는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아직 그 나이대에서는 경쟁자가 없는 불세출의 영화배우로 군림하고 있다.

가수와 배우로 사는 방법은 사뭇 다르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가수 겸 배우로 사는 법은 의외로 매뉴얼이 쉽다. 끈기만 있으면 의외로 쉽다. 물론 그 끈기라는 참을성이 쉬운 게 아니지만.

[티브이데일리 조현민의 호크아이 news@tvkr daily.co./ 사진=티브이데일리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