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배우 하지원은 자신이 전생에 독수리였던 것 같다며 밤에는 여자로 변하는 독수리가 돼 늑대 인간 남자 친구를 사귀고 싶고, 이를 시나리오로 써보면 좋겠다고 눈을 빛내는 등 엉뚱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항상 향기로 그 순간을 기억한다며 자신이 '냄새를 보는 지원'이라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직접 만든 향초를 선물하는 그는 사려깊고 좋은 향기를 지닌 사람이었다.

하지원은 최근 종영된 SBS 주말드라마 '너를 사랑한 시간'(극본 정도윤·연출 조수원)에서 자신이 맡았던 사랑스럽고 활발한 오하나 역이야말로 그의 '진짜' 본모습을 보여준 캐릭터라고 했다.

그동안 다수 영화와 드라마 등을 통해 카리스마 넘치는 역할로 액션 여배우의 톱을 달리던 하지원은 극 중 친근감 넘치고 경쾌하면서도 때론 푼수 같은,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여자'를 연기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16부작을 마쳤다는 그는 "평범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캐릭터라 정말 좋았다. 하나는 판타지 속의 인물이 아닌 패션 쪽 일을 하는 30대의 평범한 여자고, 현실감 있는 사랑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며 "친구들이나 주변에서 하나의 말투나 표정 보고 딱 나라고 하더라. 오히려 예전에 공포나 액션 장르를 할 때 주변에선 더 놀라워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평범한 하나를 연기하게 된 것에 대해 늘 무거운 캐릭터를 해왔던 것 같아 가볍고 밝은 캐릭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처음으로 극 중 가족이 생겼다며 "실제 부모님께서 더 좋아하시더라. 처음으로 화목한 가정에 집도 있고 차도 있었다. 팬들도 '지원 언니 드디어 가족 생겼다'며 좋아했다"고 웃어 보였다.

그는 "이번 드라마에서 원 없이 예쁜 옷과 신발, 가방도 신어보고 촬연 현장도 정말 즐거웠다. 내가 자주 가는 목욕탕에서 전에는 다가오시지 않던 아주머니분들이 지금은 대체 원이랑 언제 이어지는 거냐고 말을 거실 때 친근함이 묻어나고 기분이 좋더라"고 했다. 사극 '기황후' 방송 당시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라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이전의 보이쉬하고 강한 캐릭터들을 연기하며 대리만족을 느꼈고, 액션도 자신이 그렇게 잘할 줄 몰랐다며 너스레였다. 그는 "'시크릿가든' 길라임이 극 중 '예쁘다는 말보다 멋있단 말을 좋아한다'고 하는 대사가 있는데 실제 작가님이 내가 과거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써주신 거였다. 난 예쁜 여자보다 멋있는 여자가 좋다. 그걸 작품 속에서 표현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게 좋았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힘을 빼고 풀어진 듯한 자신의 모습에 대중이 친근감을 갖고 다가와 주는 모습이 새롭고 따뜻한 기분이었다고.



하지원은 실제로 17년간 친구로 지내다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컸지만, 이번 작품을 계기로 생각의 전환이 됐다며 "사실 첫눈에 반하는 스타일이었는데 극 중 이진욱 씨처럼 말도 잘 통하고 날 위해주고 따뜻하고 재미있는 '남사친'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하나가 정말 부러웠다"고 밝혔다.

극 중 멋진 '남사친' 이진욱 외에도 매력적인 피아니스트 '구남친' 윤균상의 사랑까지 한 몸에 받으며 모든 여성의 로망을 자극한 하지원이다. 실제 그는 "헤어진 전남친이 다시 나타났을 때 기분이 어떨지 궁금해서 주변에 물어봤더니 '심쿵'한다고 하더라. 하지만 나라면 17년 동안 친구로 자리한 원이가 더 좋을 것 같다"며 "이번 역할을 하며 내가 해보지 않았던 사랑에 대한 느낌들을 많이 알 수 있었다. 원이가 하나에게 주었던 사랑에 대한 기대감과 편안함이 정말 좋았다"고 언급했다. 예쁜 사랑을 하고 싶단 기대감도 커졌다고 덧붙였다.

하지원 나이는 만 37세. 30대 평범한 여성의 사랑과 결혼으로 결실을 보기까지의 삶을 연기했으니 이에 동요될 법도 하다. 이에 하지원은 "만약 일반인이라면 현실적으로 크게 나이를 실감하고 결혼 압박에도 부딪히고 하겠지만, 배우 하지원으로 사는 시간들에선 고등학생이 되기도 하고 20대를 연기하기도 하니 인지를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며 "어떻게 보면 오히려 행복한 것 같다. 아직까진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체감이 안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덧붙여 "현장에서도 연하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니까 세대 차이를 실감하지 않느냐 하지만, 상대 배우들이 연하면 더 좋고 행복하지 않겠느냐"며 오히려 영광이라고 너스레였다.



고등학생 때 중견배우 고두심의 연기를 보며 '저 사람은 어떤 힘이 있길래 나를 이처럼 소름 돋게 할까'라는 생각을 하고, 그 힘이 대단하고 궁금했으며 처음으로 배우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는 하지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기에 감명을 받고 시작된 배우 생활, 그리고 어느덧 데뷔 18년 차에 접어들며 국내 톱 여배우의 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지만 하지원은 자신이 아직도 부족하다고 했다.

그는 "이제 시작이고 더 달려가야 한다. 안 해본 역할도 아직 어마어마하게 많다. 내가 더 이상 이 일을 좋아하지 않는 순간, 정말 관두게 될 수 있겠지만 아직까진 배우라는 이 직업이 정말 좋다"며 "내가 정말 좋아해서, 이 순간을 정말 즐기고 좋아서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이 크다"고 했다. 하지원의 롱런 비결은 다른 게 없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감사하고 즐기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그의 원천인 셈이었다.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조혜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