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아이' 김여진이 슬픔을 담아내는 법 [인터뷰]
2018. 08.29(수)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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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김수영 기자] 배우 김여진이 타인의 슬픔에 다가가는 방식은 조심스럽지만 명확하다. 목소리 눈빛 말투 그 어느 것 하나 가벼운 구석이 없는 그는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상실의 슬픔에 조심스레 접근해 이를 고스란히 '살아남은 아이'에 담아냈다.

영화 '살아남은 아이'(감독 신동석·제작 아토ATO)는 아들이 죽고 대신 살아남은 아이 기현(성유빈)과 만나 점점 가까워지며 상실감을 견디던 부부 성철(최무성)과 미숙(김여진)이 어느 날 아들의 죽음에 관한 비밀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김여진은 극중 기현으로부터 예기치 못한 고백을 들으며 혼란을 겪는 엄마 미숙을 연기한다.

상실의 아픔, 특히 자식을 잃은 부모로 분한다는 것은 연기 20년차 베테랑 김여진도 겁을 먹게 만들었다. 김여진은 "제목이 너무 무거워서 대본을 받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무겁고 진지한 것에 대한 겁이 생긴다. 그 무게가 나를 압도할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실제 한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에 더욱 두려웠다는 그는 "사실 처음에는 아이가 있어서 택하고 싶지 않은 작품이었다. 촬영을 하면서도 이건 미숙이의 슬픔이지 나의 것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만큼 큰 아픔이라서 그랬다"고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그러나 김여진은 대본 속 캐릭터와 처음 마주하던 순간의 강렬함을 잊지 못한다고 밝혔다. 그는 "미숙이라는 인물이 손에 잡힐 것처럼 생생했다. 배우로서 그런 느낌을 갖기가 쉽지 않다. 굉장한 감동이 밀려와 일순간 마음이 출렁였다"면서 "'이건 반드시 내가 해야겠다'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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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은 이름 지을 수 없는 고통이라고 해요. 과부 홀아비 고아는 있어도 자식을 잃은 부모를 지칭하는 말이 없다는 건 가장 무섭기 때문인 것 같아요."

김여진은 가장 무섭다고 생각하는 고통을 표현해야 했다. 그렇기에 자신이 누군가의 또 다른 상처가 되진 않을지 조심하며 연기에 더욱 신중을 기했다. 김여진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겪고 싶지 않은 불행을 겪은 이들에 대한 이미지를 일반화한다. 조금만 불행에서 벗어나도 '아이 잃은 부모가 어떻게 저럴 수 있냐'고 말하는 식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상에서 벗어나면 그게 피해자든 유가족이든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비난을 하기도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그는 "타인의 불행을 선정적으로 전시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슬픔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거나 구구절절하게 풀어내지 않으려 했다. 감독님 역시 이 부분에 크게 동의를 했기에 촬영이 끝날 때까지 내 생각을 계속 가지고 갔다"고 소신을 밝혔다.

특히 김여진은 위로의 방법에 관해서도 깊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보편적으로 많은 이들이 슬픈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지닌 슬픔에 겁을 먹어 거리를 두거나 공감하지 않는다"면서 "그것도 하나의 나약함이다. 슬픔을 직시하지 않는 거다. 처음에는 위로를 해주다가도 슬픔이 계속되면 그만 좀 하라는 반응이 나온다. 결국 외면하고 자기 갈 길을 간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여진은 "다른 사람의 슬픔을 보며 꼭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되고, 반드시 안아주지 않아도 된다"며 "굳이 말을 덧붙이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된다"고 말했다. 이어 "슬픔이라는 게 위로될 수도, 작아질 수도, 사라질 수도 없는 거지 않냐. 그러니 가능하다면 잠시 옆에 같이 앉아 있다 가는 정도면 되는 것 같다"고 생각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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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본인 역시 두려움에 대본조차 펼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김여진은 이를 외면하지 않았고, 치유와 위로의 참된 의미에 대해 고심했다. 그렇게 타인의 슬픔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기로 결론 내린 그의 연기에는 짙은 공감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하지만 그토록 온 마음 다해 미숙을 담아내고도 김여진은 "난 아직 배우로서 보여줄 게 너무 많다"며 웃었다. 이제 액션에 도전해 한두 컷이라도 시원하게 발차기를 날리고 싶다는 김여진. 늘 치열하게 연기에 매진하는 그의 뜨거운 욕심은 언제 봐도 참 반갑다.

[티브이데일리 김수영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송선미 기자, '살아남은 아이'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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