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지영 기자] KBS2 드라마 ‘착한 남자’(극본 이경희, 연출 김진원 이나정)는 강마루, 서은기, 한재희 세 사람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운명적 사랑과 배신, 야망을 그린 20부작 드라마다. 처음부터 제목 ‘차칸남자’ 논란을 일으키며 이슈의 중심에 섰다.

현재는 기억 상실, 재벌 스토리 등 극의 진행이 진부하다, 막장이라는 원성을 들으면서도 시청률 20%를 돌파했다. 슬슬 지겨워져 가는 ‘내내 절절한 세 사람의 숨바꼭질 사랑’을 보며 그들 사랑의 실체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세간의 평처럼 '착한 남자'의 장치와 플롯은 비어 있다. 새롭거나 정교하지 않고 인물과 이야기 거리도 부실하다. 스토리는 예측 가능하거나 심지어 플롯은 유출되기까지 했다. '착한 남자'의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드라마의 어떤 장치도 아닌 '보는 이의 기억'이다. '착한 남자'의 80%는 두 인물 간의 대화로 채워진다. 감나무가 늘어진 평상과 같은 몽환적인 배경은 시청자를 그들의 대화를 듣는 유일한 목격자로 치환시킨다. 시청자는 그들의 감정에 동화되고 자신의 경험을 극에 투영하며 자신의 추억에 취한다.

설명이 아닌 이입의 과정을 끌어내 보편적인 개념을 개인성으로 구체화 하는 이경희 작가는 사랑을 묘사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그러나 ‘착한 남자’는 정지한 그림이 아니고 개인사로 환원되기에는 지나치게 명확한 내러티브 구조를 가지는 20부 드라마다. 사랑을 그리는 것을 넘어 사랑의 과정과 성숙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착한 남자’에는 두 가지가 없다. 살아있는 인물과 변화다. 주인공 강마루(송중기 분)는 뛰어난 외모와 두뇌의 소유자로 속내를 알 수 없는 남자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안변호사(김태훈 분)는 차가운 외모와 두뇌의 소유자로 안정된 미래를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희생했다. 박변호사(이상엽 분)는 따뜻하고 속내를 알 수 없는 남자다. 세 명 모두 같다. '착한 남자'에 나오는 남자들은 같은 말로 요약된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본성을 가진 남자. '인물'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개념'의 ’상’으로만 존재하는 그들과 함께 ‘착한 남자’는 희생하는 사랑, 절대적 사랑의 단면을 강박적으로 그린다.

끊임없이 위기를 조성하는 임무를 부여 받은 한재희는 '한재희도 하지 않을 엉성한 논리'로 목을 조이는 역할 놀이를 하는 '돌대가리'로 조롱 받는 습관적인 악녀 역을 되풀이 한다. 여전히 과거와 결핍 속에 사는 그녀는 기껏해야 '아들에게 모든 걸 다 사줄 수 있는' 것 외 높은 곳의 실체를 알지도 즐기지도 못한다. 상투적인 그녀의 기반은 그녀의 목적성과 행동을 설득시키지 못했고 재희는 갈등을 만들지도 서사를 이끌어 가지도 못하고 그냥 거기 있는 인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변신이 아니라 인물의 변화를 보여 주려면 인물이 한계를 드러내야 한다. 실패와 고민 끝에 결핍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인물은 변화하고 성장한다. 강마루는 완벽하다. 시궁창에서 바퀴벌레 같이 살았다는 처음부터 그는 자의적으로든 타의적으로든 실패한 적이 없다. '언제 어디서나 멋있'는, '그 머리에 그 재능을 갖춘 천하의 강마루'의 모습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다.

변화할 수 없는 완벽한 강마루는 그 끝이 파괴이거나 소멸일 수 밖에 없다. 유일하게 결핍과 극복의 의지를 드러내던 서은기는 기억 상실로 인해 퇴행하고 강마루에 의해 사고 전 바로 그 자리로 복원된다. 이야기가 시작된 바로 그 지점이다. 그 사이 축적된 감정과 관계의 변화로 이야기가 폭발할 바로 그때, 존재의 의미가 사라진 강마루는 소멸되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경희 작가는 인간의 가장 큰 착각인 절대적 사랑 이야기, ‘인어공주-인어왕자’를 차입해 판타지 세상을 구축한다. 아련하고 가슴 뻐근하게 아름다운 그 세상은 그러나 인물이 없고 움직이는 것이 없는 스노우 볼 안에 박제된 세상이다. 이경희 작가는 한번씩 스노우 볼을 흔든다. 눈발이 흩날리는 스노우 볼을 들여다 보며 우리는 설득된다. 박제된 그 곳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무언가가 있다고.

거짓말이다. 박제된 생명은 부속품들의 집합으로 전락한다. 박제한 기억은 각자의 기억 속에서 변하고 만다. 이경희 작가는 좀처럼 끝까지 가지 않는다. 사랑의 호르몬이 떨어지는 권태도, 구질구질한 돈 얘기도 없다. 끝없이 인물들을 코너로 몰아 넣고 사랑의 진정성을 시험하고 확인하다가 절정일 때 시간을 멈추고 만다.

드라마가 인생을 바꿀 만한 힘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시청률 15% 드라마들처럼 '착한 남자'는 잊혀질 것이다. '착한 남자'에겐 목적지로 가려는 꿈틀거리는 욕망이 없다. 거기 가 보았던 '꼰대'의 힘없는 중얼거림만 있을 뿐. ‘착한 남자’의 사랑은 매혹적이지만 아무렇게나 각색된 오래된 사랑의 파편이다.

[티브이데일리 김지영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출처=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