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박진영 기자] 정말 ‘대박’이라는 말이 자동으로 터져 나오는 ‘미친’ 연극 한 편이 탄생했다. 감동과 재미가 동시에 담긴 탄탄한 스토리는 물론 유도, 복싱, 배드민턴 등을 구사하는 배우들의 땀방울 또한 헛되지 않다. 바로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가 창단 10주년을 맞이해 야심차게 준비한 세 번째 작품, 연극 ‘유도소년’ 얘기다.

연극 ‘유도소년’은 1997년 고교전국체전을 배경으로 고교 유도선수 경찬과 복싱선수 민욱 등 피 끓는 청춘들의 성장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박경찬 작가가 실제 고교시절 유도선수로 활동하던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실화다. 뮤지컬 ‘머더 발라드’, ‘번지점프를 하다’ 등을 통해 섬세한 연출을 인정받은 이재준 연출이 6년 만에 극단 ‘간다’로 복귀한 작품이기도 하다.

홍우진은 한때 유도 국가대표 상비군이자 전북체고 유도부 선수 경찬 역을 맡고 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18살, 그것도 유도 선수가 되어야 했던 홍우진은 매 공연 몸이 부서져 내릴 것 같은 고통을 마주하면서도 “행복한 작업”이라며 의지를 다진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도 마음만은 즐겁다며 웃는 천상 배우 홍우진과 ‘유도소년’의 공동 작가이자 연출을 맡고 있는 이재준 연출을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났다.

- 개막하자마자 반응이 굉장히 좋았는데 예상했나.

이재준 “반응이 이렇게 좋을지 전혀 예상을 못했다. 다만 관객들이 어떻게 볼 지 궁금했다. 만드는 우리는 의심이 많았다. 말은 안 했지만 걱정을 많이 했다. 급하게 쓴 대본이라 수정도 많이 했다. 물론 초고는 있었지만, 마음에 안 들어서 계속 수정을 했고 그게 연습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그런 과정이다 보니 대본 자체가 웃기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개막하고 웃기다고 해주시는 걸 보고 의외다 싶었다.”

- 공연이 진행 중인 지금의 만족도는?

이재준 “잘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굉장히 만족스럽다. 고생한 배우들이 신나게 공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흥행이 되니까 좋은 것보다는 감사한 마음이 크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글을 직접 써보고 싶었다. 작가들과 작업을 하면서 좋을 때도 많았지만 힘들 때도 있었기 때문에 내가 직접 써보고 싶었고, 그걸 해냈다는 것 자체가 기분 좋다. 하고 싶었던 얘기를 한다는 것도 좋고, 그걸 관객들도 느끼는 것 같아 놀랍고 감사하다. 신난다.”

홍우진 “엄청 만족한다. 진짜 행복하다.”

- 캐릭터가 굉장히 명확하기도 하지만 배우들이 이 캐릭터를 제대로 잘 살려주고 있는 느낌이다. 어떻게 캐스팅을 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이재준 “우진이에게 감사한 건 해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을 때 ‘형이 하니까 할게’라고 바로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극단 배우들 사이에서 조율을 했는데 다들 너무 바빠서 잘 안 됐고, 그럴 바에는 신입단원 중심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피디님이 외부 배우 두 명을 섭외했다. 참 고마운 게, 외부 배우는 잘 안 섞일 수도 있고, 운동을 이렇게나 빡세게 하면 싫어할 수도 있는데 정말 잘 어울려서 열심히 했다. 뭐가 그리 다들 즐거운지, 모여서 으쌰으쌰 해주더라. 연출로서는 미안한 부분이 많다.”

- 연습 과정부터 지금까지 굉장히 힘들었을 텐데, 출연을 후회하지는 않았나.

홍우진 “사실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20대 때 몸도 잘 쓰고 운동도 다 쉽게 배우고 잘 했기 때문에, 아직도 20대인 줄 알았다. 그런데 3일 유도 연습 하고 나니까 온 몸이 끊어질 것 같더라. 그리고 무술 감독님이 생각보다 복잡한 동작들을 만들어주셨다. 보기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는데 만들어가는 과정이 있다 보니 미치겠더라. 너무 숨차고. 내가 20대가 아닌데 아직도 착각을 하면서 살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속상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거 빼고는 되게 행복하다. 공연 끝난 뒤 배우들 표정을 보면 ‘우리가 오늘도 해냈구나’라는 게 보인다. 커튼콜 때 동그랗게 모여서 인사를 하면서 얼굴을 보면 말 안 해도 ‘수고했어’라며 눈이 막 웃고 있다. 그게 정말 행복하다. 공연 올리고 나서 반응이 정말 좋긴 한데, 몸을 많이 쓰다 보니 어느 정도 공연이 지나고 나면 다치고 지쳐서 하기 싫어지는 게 생기는 건 아닐까 걱정을 했다. 다칠 위험이 있기 때문에 공연 들어가기 전에 항상 맞춰본다. 그 때마다 서로 끌어안고 행복해 한다. 원 안에서 그런 감정을 느끼다보니 기분이 정말 좋더라.”

이재준 “우진이 같은 경우엔 연습 기간에 공연을 두 개나 하고 있었고, 매일 유도장에도 가야 해서 쉴 시간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방전이 된 것 같다. 방전이 되면 그걸 채우는데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그러지 못해 더 아프고 힘들다. 연출로서 그런 모습을 보면 안타깝고 미안하다. 우진이를 비롯해 배우들이 거의 다 30대다. 그런데 굉장히 열심히 운동을 해서 정말 놀랐다. 물론 자기들도 살려면 어쩔 수 없었겠지만, 핑계대고 빠질 수도 있을 텐데 그런 거 전혀 없이 끝까지 꾸준히 했다. 나도 뮤지컬 계속 하다가 오랜만에 연극을 한 건데, 1시부터 6시까지, 저녁 먹기 전까지만 연습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하다 보니 Ten to Ten(텐투텐)이 됐다. 할 게 너무 많으니까 배우도 그렇고 연출인 나도 힘들었다.”


- 제목은 처음부터 ‘유도소년’으로 정해져 있었나.

이재준 “처음엔 ‘전국체전’부터 되게 많았고 정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극단에 제출을 해야 해서 일단 ‘유도소년’으로 냈더니 괜찮다고 하더라. 그렇게 결정이 됐다.”

홍우진 “일반인들은 이렇게 단순한 제목이 더 먹히더라. 친구들도 ‘유도소년? 뭐야? 재미있을 것 같아’라고 하더라.”

-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분명 극적 구성을 위해 허구가 필요했을 텐데 어느 부분인가.

이재준 “전국 대회를 가서 배드민턴 하는 애(화영)에게 반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복싱하는 남자 애와 실제로 사귀는 사이였다. 그런데 그 남자 애가 무서워서 헤어지지 못하게 계속 사귀는 애매한 사이였다. 그래서 경찬이를 이용해서 두 사람 싸움을 붙였다. 그렇게 두 사람이 세 번에 걸쳐 싸웠다. 처음엔 경찬이가 졌고, 두 번째는 그 애를 기절시켜서 아스팔트에 눕혀놓고는 ‘열 받으면 찾아와라’라는 편지를 써 놓고 갔다. 그리고 그 애가 전북체고로 찾아가서는 쫓아다니며 싸우자고 했다. 그런데 그 때는 화영이와 연락이 안 될 때라 굳이 싸울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둘이 술을 먹으면서 ‘우리가 당했다’라는 얘기를 하는 건데, 그게 진짜 너무 웃겨서 극적으로 구성을 한거다. 그들이 했던 대화도 다 다르다.”

“봉구 에피소드도 실화다. 경찬이가 개를 잡아먹었다. 유도부 애들이 모여서 잡아먹고는 산에 뼈를 묻었다. 그러다 흙이 파헤쳐지면서 뼈가 발견됐고, 주민들은 그게 사람 뼈인 줄 알고 신고를 했다. 국과수가 오고, 결국 개 뼈로 밝혀지면서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에 유도부원 5명이서 가위 바위 보를 했는데 경찬이가 된 거다. 뭔가 운동부스럽지 않나. 그리고 이 애들을 한데 묶을 사건이 필요했다. 그냥 전국대회가 간다고 하면 밋밋하기 때문에 이 봉구 에피소드를 쓰자고 한거다.”

- 요셉과 태구도 실제론 없던 인물이지 않나. 이 두 인물을 만들 때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었나.

이재준 “요셉은 박정민을 모티브로 만들었다. 정민이는 미국 시민권자라서 외국인 등록증이 있다. 실제로 애는 착한데 한국식 예의범절을 잘 모른다. 미국식이다. 정민이를 보고 저런 인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어 연습에 늦어서 ‘지금 몇 시야?’라고 하면 시계를 보고 해맑게 ‘11시 7분이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태구는 경찬이 후배 중에서 모티브를 잡았다. 그 사람의 캐릭터라기 보단 후배가 가진 생각에 초점을 맞췄다. 별다른 욕심이 없다. 맛있는 거 먹으면서 사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뭐가 가장 맛있냐고 물으면 ‘소고기’라고 답한다. 이 얘기를 듣고 만들었다.”

- 스토리도 재미있지만 ‘유도소년’의 백미는 역시 90년대 음악을 통해 관객들이 추억 속에 빠질 수 있다는 점 같다.

이재준 “사실 술자리에서 경찬이와 얘기를 하면서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곧바로 만들 거라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그러다 공연을 해야 하는데 뭘 할까 하다가 영화 ‘전설의 주먹’을 봤는데 이 얘기가 생각했다. 그 당시 복고가 유행이었기 때문에 이걸 만들면 웃기겠다 싶었다. 경찬이가 얘기한 시대가 딱 97년도였다. 나 또한 90년대 음악을 들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그 당시 향수를 품을 수 있는 것이 음악이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다 97년도 음악인 건 아니다. H.O.T ‘캔디’와 ‘아이야’는 같은 때가 아니다. 그런데 ‘아이야’는 97년을 말한 다기 보다는 그 순간의 배경음악이었을 뿐이다.”

- 그 시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은 충분히 공감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홍우진 “처음에는 그 나이 또래 감성으로 극을 바라보지 못했다. 그러다 화영이가 감정의 색깔이 다른 것 같다는 말을 하는 노래방 신에서 고등학교 때 생각이 났다. 그래서 슬펐다. 내가 이걸 놓치고 연습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재준 “실제로 대학교 1학년 때 감정의 색깔이 다르다는 말을 들었다. 좋아하는 애가 삐삐로 ‘재준아, 널 너무 좋나하는데 감정의 색깔이 다른 것 같아’라고 하더라. 그래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 유치하고 오글거리지만 그 나이에는 한번 쯤 그럴 때가 있지 않나.”

홍우진 “사람들이 오글거린다는 말을 하는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이미 그 때 감성이 떠올랐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헤어지자는 얘기만 들어도 밤새 이별 노래 들으면서 눈물 펑펑 흘리곤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여자 친구가 헤어지자고 하더라. 그래서 집에 와서 이승환 노래 틀어놓고 밤새 울었다. 그러다 렌즈를 끼고 잤는데 일어나니 앞이 안 보이더라. 그냥 회색이었다. 그래서 실명한 줄 알았다. 세상이 다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엄마한테 말할 수도 없고.(웃음) 그렇게 공부 안 하고 딴 짓할 때가 있었다.”

이재준 “힘들었지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다. 이기지는 않지만, 끝까지 버티는 것. ‘내가 끝낼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대사처럼, 그런 의미를 전하고 싶었다. 단순히 코믹 코드만 보면 웃기다, 오글거린다 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갈수록 우리가 얘기라고 싶었던 감정을 잘 느끼고 계시는 것 같아서 뿌듯하다.”

홍우진 “나도 고등학교 때 경찬이처럼 말하곤 했다. 여자애에게 고백할 때 사이다 병을 벽에다 쳐서 깨뜨리고는 ‘저 병은 깨지지만 너에 대한 마음은 깨지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그 때는 그랬다. 아마 오글거린다는 표현은 세대 차이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김태형 연출이 보고 나서는 트위터에 ‘겁나 웃기다더니 겁나 슬프잖아’라고 하는데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이재준 “김태형 연출과 친구다. 그리고 라이벌로 생각하면서 견제하는 것도 있다. 그런데 그 친구가 트위터에 그렇게 썼더라. 친구에게 듣는 최고의 칭찬이라 기분이 진짜 좋았다. 30대 중후반 나이대가 그럴 수 있다. 이제는 신인도 아니고 자리를 잡은 것도 아니고. 뭔가 신인의 마음,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쉽지가 않다. 이제 과장 대리되는 나이인데, 위에서 눌리고 밑에서 치이고. 참 애매한 나이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내 꿈이 뭐였지?’ 싶고, 좋아서 시작했다가도 잊어버렸거나 삶에 치여 그냥 하고 있거나. 그래서 당분간은 이런 행복의 가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작품을 많이 할 것 같다.”


- 사투리 연기 힘들지는 않았나.

홍우진 “사투리 연기를 처음 하는데 엄청 힘들었다. 공연하기 전전날까지도 말을 못해서 헤맸다. 작가가 해주는 걸 따라하면 제 목소리가 아닌 이상한 목소리가 나오고. 서울말도 아닌 것이 전라도 말도 아닌, 그런 말이 나오니까 미치겠더라. 몸은 힘든데 매일 공연을 하러 가야하고. 공연 갔다가 다음 날 연습을 하러 오면 그 전날 애들이 만들어 놓은 게 있어서 따라가야 할 진도가 있어서 그걸 외워야 했다. 신 연습을 할 때도 머리가 안 돌아간다. 답답해서 사투리 얘기를 했더니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서울말로 읽어보라는 조언을 받았다. 그래서 그렇게 했더니 조금씩 감이 생겼다. 그러고 공연 전날 마지막 런을 도는데, 그게 제일 좋았다.”

이재준 “지금까지의 공연 통틀어, 그 때가 제일 좋았다. 공연 전날 런을 세 번 돌았는데 마지막 런이 정말 좋았다.”

홍우진 “연습 마지막 날 ‘이거 재미있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아침에 첫 런을 돌 때 혼자 시합하는 장면을 하는데, 지치고 힘든 상태로 돌았다. 그러다 보니 머리가 땅에 박힌 채 몸만 꺾였다. 제가 아픈 것을 정말 잘 참는 편이다. 너무 아파서 입원을 했는데 의사인 친형이 데스크에 갔다 오더니 ‘너 미쳤냐? 죽겠다는 소리 왜 안 했냐’고 묻더라. 고통의 수치가 있는데 출산 두 단계 아래 통증이라고 하더라. 그 정도로 아픈 것을 잘 참는 편이다. 그런데 그 날 목이 꺾였을 때 갑자기 통증이 온 몸으로 퍼지는데 정말 너무 아팠다. 공연 못 하겠다 싶더라. 너무 서럽고 오만가지 감정이 다 지나갔다. 무술 감독님이 30분 동안 마사지를 해주셨고, 진통제를 먹었다. 그렇게 첫 런 때 엉망으로 끝나다 보니 마지막 런은 ‘에라 모르겠다. 그냥 해보자’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냥 한 게 정말 좋았다. 정말 잘 나오니까 사투리에 대한 걱정이 모두 사라지더라.”

이재준 “그 때는 좀 편한 마음으로 봐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 날이 연출로서도 제일 재미있었다. 그러고서도 반응이 이렇게 좋을지는 몰랐다. 첫 공연 올린 뒤에 훈이가 관객들이 엄청 웃는다고, 대박이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래서 그 다음에 하는 애들이 ‘난 안 웃기면 어떻게 하지’라며 긴장하고 그러더라. 그 정도로 실감이 안 났다.”

- 그렇다면 지금은 사투리 연기에 대한 부담을 좀 떨쳐낸 편인가.

홍우진 “중간 중간 경상도 사투리가 나오기도 한다.(웃음) 그래서 의식이랑 현식이가 웃음 참는다고 힘들어 했다. 내가 사투리 해봤자 얼마나 잘하겠나 싶은 생각에 아예 부담감 없이 하고 있다. 사투리도 중요하지만, 드라마가 더 중요하니까.”

- 유도 연습을 해야 하는 것, 사투리를 써야 하는 것 외에 연기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었나.

홍우진 “사투리가 시발점이 돼서 (힘든 부분이) 전체적으로 퍼져 있었다. 지친 상태에서 아무 생각도 안 났다. 애들이 정말 아이디어를 엄청 낸다. 나 또한 즐겁게 만들고 싶었는데 그 때는 이유를 모르겠더라. 몸이 힘들어서 그랬는지 상당히 위축되어 있었고, 그래서 마음이 힘들었다. 스스로 내가 불성실해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과 사투리 안 되는 것까지. 연습 때는 정말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재준 “의식이도 비슷했다. 매일 공연을 하는 두 사람이 힘들어했다. 연습실에 있으면 힘들기도 하지만 재미있는데, 그 중간에 공연을 하러 가야 하니 맥이 뚝 끊긴다. 그리고 다음 날 오면 애들은 진도가 나가 있고. 그러다 힘들어했다.”

홍우진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연기 자체가 잘 안 됐다. 그래서 여자친구가 ‘이렇게 고민하는 모습 처음 본다’고 하더라. 그러다 대사를 다 외우고 나니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다. 역시 배우는 대사를 빨리 외워야 하는 것 같다.”

- 화영이라는 여자 캐릭터가 어찌 보면 어장 관리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연기를 잘 해서인지 그렇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홍우진 “남자와 여자의 차이 아닐까. 과거에 화영이 같은 여자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화난다.”

이재준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은 했다. 대본 쓸 때 그렇게 안 보이게 하려고 노력했다. 사실 화영인 민욱이의 마음을 아예 모르고 좋은 오빠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이 사람이 좋아할 거란 생각을 전혀 못한 거다. 또 경찬이가 좋지만 남자친구로서 보느냐 아니냐는 다른 문제다. 두 사람 사이에서 견준 다기 보다는 자기 마음이 가는대로 최선을 다한 것뿐이다. 그런데 그걸 어장관리라고 보더라. 한 번은 어린 친구들이 관람을 하러 왔는데 화영이가 ‘연락하지 말란다고 진짜 안 하냐’라고 하자마자 네 명 정도가 큰 소리로 ‘헐!’이라고 하더라. 어린 친구들 눈엔 그런 것 같다. 경험에 따라서도 다르고.”


- 처음 ‘유도소년’이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한 것은 있었다. 다큐를 만드는 것도 아닌데, 유도 장면 조금 나오고 드라마가 강조된 극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라 많이 놀랐다.

홍우진 “사실 나는 운동 동작에서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연을 본 사람들은 저 정도로 할 줄 몰랐다며 놀라더라. 첫 공연에 유도 체육관 관장님을 비롯해서 유도인 카페 사람들이 보러 왔었다. 그들이 분장실에 와서는 ‘놀랐다’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이렇게 만들어줘서 감사하다’고 말해줬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이재준 “메쳐지는 것이 진짜 아프다. 바닥이 달라서 충격 흡수가 안 된다. 다들 싼 매트라고 알고 계시는데 파란색은 고무가 맞다. 그래서 거기선 유도를 안 한다. 하지만 주황색 매트는 싼 편이긴 해도 유도장 매트가 맞다. 다만 바닥을 안 띄워서 아프긴 하다.”

홍우진 “그런데 아픈 만큼 소리가 안 난다. 유도장에선 낙법도 팡팡 소리가 난다. 민욱이와 싸우는 장면을 처음 만든 날은 엄두도 안 나더라. 중간에 숨이 안 쉬어질 정도였으니까. 공연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계속 반복하니까 되더라.”

- 유도만 할 줄 알았는데, 복싱과 배드민턴이 나와서 신선한 부분도 있었다.

이재준 “배드민턴은 남정우라는 뮤지컬 배우가 가르쳐줬다. 어려서 배드민턴 선수였다고 하더라. 사실 배드민턴을 배우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성)두섭이가 그 선생님을 소개시켜줬다.”

홍우진 “‘유도소년’은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던 작품 같다. 유도나 복싱은 가서 배우면 되지만 배드민턴 선생님을 어디서 섭외를 하겠나. 그런데 손지윤이 성두섭 아는 사람 중에 배드민턴 하는 사람 있다고 소개를 시켜줬고, 유도 장면은 작가와 만들면 되겠지 했는데 정선아 남편이 무술감독이라서 만들어줬다. 사실 민욱이와 싸우는 장면은 상상도 못했다. 무술 감독 형님이 만들어준 것보다 우리가 못하는 거긴 하지만, 형님이 액션을 담당하지 않았다면 이정도도 엄두가 안 난다. 때마침 남자친구도 없던 애(정선아)가 작년 이맘 때 쯤 연애를 시작해서 결혼을 했다. 이게 다 ‘유도소년’이 만들어지기 위해서였던 거다. 나 또한 때마침 지금 이거 말곤 다른 걸 할 게 없으니까 참여를 하게 되고. 모든 것이 다 들어맞았다.”

- 극단 ‘간다’에 대한 애정이 참 남다른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의 기쁨이 묻어난다.

이재준 “이 작업이 행복하다. 우리끼리 재미있게 할 수 있고 또 잘 됐으니까. 돈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닌데 기분이 좋다. 이렇게 작업을 하면서 나부터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안정적이어야 더 즐겁게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어느 정도의 금전적인 해결만 된다면 이렇게 모여서 작업을 하고 얘기하고 배우는 것이 참 좋다. 극단 배우들끼리 워크숍을 하는데, 함께 하고 싶은 것을 해보고 잘 되면 잘 되는대로 안 되면 안 되는대로, 이런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지 계속 생각한다. ‘공연배달 서비스 간다’라는 극단은 더 많은 곳을 찾아서 보여주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소외 계층을 비롯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지 않나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홍우진 “극단 작품을 하는 건 금액만 따진다면 거의 봉사활동 같다. 하지만 행복하기 때문에 군말 없이 할 수 있다. 같이 하는 사람들이 다 좋고 착하다. 아직 40대가 되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수입보다 행복을 따라가고 싶다. 마흔 되기 전까지는 극단에서 작업을 한다고 하면 먼저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내가 재미있는 게 정말 행복하니까.”

이재준 “극단 대표인 민준호 형이 우진이랑 연기과 동기다. 요즘 준호 형이 ‘유도소년’을 보고 ‘우진이는 뭘 맡겨도 안정감이 있다. 대단하다고 느껴진다’라고 한다. 대학 다닐 때는 완전 망나니였는데 지금 연기 하고 있는 걸 보면 감격스럽다는 말이었다. 사실 우진이는 정말 진지한데 겉으로 장난스럽게 해서 그걸 모르는 사람이 많다.”


- 겉으로 장난스럽게 행동한다는 말에 생각이 났는데 ‘유도소년’ 프로그램 북을 보면 홍우진 배우만 작품에 ‘나와 할아버지’ 외 다수라고 나와 있더라. 왜 그렇게 한 건가.

홍우진 “작품한 게 뭐가 중요한가 싶어서 그냥 그렇게 쓰라고 했다. 내가 기억력이 좋아서 군대 가기 전 1기부터 10기까지의 선배들 후배들 이름을 다 외웠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형 동생은 아는데 몇 살인지는 기억 못하고, 작품도 연도별로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나도 기억 못하는데 이게 중요한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올모스트 메인’도 쓰고 싶었는데 그건 게스트 형식으로 참여한 거라 쓰기 애매해서 ‘나와 할아버지’만 썼다. ‘나와 할아버지’외 다수. 좋지 않나. 사인할 칸도 많아지고.(웃음)”

- 아직도 식단 조절을 하나.

홍우진 “어느 정도의 식단은 유지하는 편인데, 분장실 들어가서 엄청 먹는다. 체력 때문에 무조건 먹어야 한다. 큰 봉지에 든 초코바를 쏟아놓고 먹는다. 나는 나만 당이 떨어져서 먹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초코바가 없더라. 애들도 엄청 먹는 거였다.”

- 술도 못 마실 것 같다.

홍우진 “요 근래 맥주 맛을 조금 알게 됐다. 하지만 원래 술을 잘 못 마신다. 500cc 한 잔 정도? 두 잔 이상 마시면 머리가 깨질 것 같아서 많이 마시지 못한다. ‘술 마시면서 얘기하자’는 말을 싫어한다. 얘기를 하려면 맨 정신으로 해야지. 나는 진짜 편한 사람들 아니면 술자리를 잘 안 가진다.”

- 영화나 방송 쪽으로 더 해볼 생각은 없나.

홍우진 “재작년에 영화 드라마 쪽으로 기회가 많았다. 영화 ‘화이’도 오디션 갔다가 좋게 됐는데 ‘나쁜 자석’과 ‘너와 함께라면’을 같이 해서 스케줄이 안 됐다. 공연을 계속 하다 보니 방송 쪽에서 연락이 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공연을 멈출 수가 없다 보니 방법이 안 생기더라. 선배들은 제가 지금까지 연기를 할 줄 몰랐다고 하더라. 한 번은 강필석 형이 하는 ‘번지점프를 하다’를 보러 갔다. 몇 년 동안 못 보다가 분장실에서 오랜만에 만났는데 ‘너 아직도 연기한다며?’라고 묻더라.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데 이딴 식으로 얘기할거냐’고 했더니 안 그래도 내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하더라. 연기 안 할 줄 알았는데 계속 하고 있어서 정말 기특하고 행복하다고 하더라.”

“사실 일이 이렇게 끊임없이 들어오는 건 진짜 감사하고 행복하다. 하는 일 중에 반 이상은 내가 하고 싶어서 선택했다. 인복도 많다. 힘들어서 일주일만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내가 부러운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아 이러지 말아야지 하며 정신을 다잡곤 한다.”

홍우진을 비롯해 박훈 차용학 박성훈 오의식 박정민 정연 박민정 윤여진 조현식 우상욱 양경원이 출연하는 연극 ‘유도소년’은 오는 29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공연된다.

[티브이데일리 박진영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스토리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