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박진영 기자] 자로 잰 듯 딱 떨어질 것 같은 엄격함이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허를 찌르는 반전 매력을 뽐낸다.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않으면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 싶은 이 의외성은 배우 한지상을 더욱 궁금하게 만드는, 그래서 더 오래 보고 싶은 욕심과 기대감까지 피어오르게 한다. 그러고 보니 이 남자 ‘나쁜 남자’ 탐을 참 많이도 닮았다.

뮤지컬 ‘머더발라드’(연출 이재준)는 네 명의 남녀 주인공들의 사랑과 이별, 재회와 파멸의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 2012년 맨하튼 씨어터 클럽에서 초연될 당시 티켓팅을 하려는 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섹시한 배우들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는 바석은 제일 먼저 매진되는 등 근래 공연된 작품 중 가장 핫한 공연으로 여겨졌다.

한지상은 ‘머더 발라드’에서 사랑했던 여자가 유부녀라는 사실도 잊은 채 물불 가리지 않고 사랑에 집착하는 남자 탐을 맡아 최재웅 강태을 성두섭과 번갈아 무대에 오르고 있다. 초연 장소인 합정을 떠나 대학로로 자리를 옮긴 재연 무대는 초연 멤버 전원이 출연을 결정지어 화제를 모았다. 다만 한지상은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공연 일정으로 인해 조금 뒤늦게 ‘머더 발라드’에 합류하게 됐다.

무려 한 해에 7편의 작품에 출연을 했던 한지상은 “지난 해 보다는 체력적으로 괜찮은 편”이라고 말하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말은 이렇게 해도 한지상은 ‘머더 발라드’ 공연과 ‘두도시이야기’ 연습을 병행하며 매일 매일을 바쁘게, 또 알차게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 노력을 바탕으로 생성된 열정과 에너지는 한지상의 내일을 더 힘차게 만들어주고 있다.

- 질문을 무척이나 많이 받았겠지만, 이렇게 쉬지 않고 끊임없이 작품을 하는 이유가 있다면?

“지금만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20대 때 못해본 것에 대해 많이 후회를 하는데, 이 시기 또한 놓치고 후회하고 싶지 않아요. 30대 후반이 되면 또 어울리는 역할이 있을 테니, 지금은 제가 가진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싶어요. 다행히 올해는 완벽하게 끝낸 건 ‘프랑켄슈타인’ 밖에 없어요. ‘머더 발라드’가 두 번째 작품이고, 세 번째 작품은 연습 중이에요.”

- 굉장히 체력적으로, 또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프랑켄슈타인’을 마무리 지은 뒤 곧바로 ‘머더 발라드’ 공연에 합류를 했는데, 재연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의리와 추억이 있고, ‘머더 발라드’만의 매력이 있어요. 의리는 김수로 선배까지 해서 배우, 스태프 간의 끈끈함이겠죠. 또 추억은 모든 공연이나 연습 포함해서 배우들과 공유했던 것. 여기에 관객들과 공유했던 추억, 순간의 감정들이에요. 그리고 ‘머더 발라드’만의 매력은 일단 커튼콜을 빼면 1시간 20분 안에 끝날 정도로 짧아요. 그 만큼 깔끔하고 밀도 있으며 군더더기 없이 착착 진행이 되죠. 이런 스타일리쉬한 뮤지컬이 존재한다는 자체가 인상적이었어요. 다양한 작품이 공존을 해야 발전을 할 수 있는데 ‘머더 발라드’는 또 하나의 다양성을 증명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적당히 파격적인 관객과의 접근성이 있어요. 프랭키를 제외하고는 바석 관객들은 적당한 선을 지키는 관찰자가 되고,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철저하게 흘러가요. 또 장소 전환 없이 조명을 이용해 아이를 표현해요. 바 위에서의 움직임과 타이밍도 톱니바퀴처럼 다 맞물려져 있어요. 즉흥적으로 넘어가는 것 같지만 우리는 모두 약속을 해 놓은 상태에요. 이런 약속을 기반으로 한 내추럴 함이 ‘머더 발라드’의 매력입니다.”


- 초연과 재연 사이 연극 ‘레드’와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거치며 연기적인 성장도 많았을 것 같은데 이번 재연에서 탐을 표현할 때 좀 더 달라졌거나 깊이가 있어진 부분이 있다면?

“저는 힘을 굉장히 많이 뺐어요. 자신이 있을 때는 힘을 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어요. 탐은 세상에 여자가 널렸고, 다 내 여자 같은 엄청난 자신감이 있어요. 유흥을 즐기고 꿀릴 게 전혀 없는 남자이기에 비효율적으로 힘을 쓸 필요가 없죠. 반대로 가장 힘없고 약해보일 때 힘을 주게 돼요. 나중에 사라에게 매달리고 집착을 하는데, 관객이 볼 때는 굉장히 힘없어 보이거든요. 굳이 신분으로 따지자면 철저하게 강등된 거죠.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완전 힘없고 초라하며 맥없어 보이는 탐이에요. 보이는 강약과 배우적으로 표현하는 에너지의 강약은 반대에요. 이런 점을 이번엔 극대화 시켰어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힘 하나 안 주고, 또 더 멋있어 보이려고도 하지 않았어요.”

- 탐은 나쁜 남자지만, 그만큼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섹시한 매력이 다분한데 한지상만의 섹시함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궁금하네요.

“많은 분들은 뭘 할 때 섹시하다고 생각하시는데, 제가 알고 있는 섹시는 뭘 안 할 때에요. 물론 안해야 하는 것도 적재적소의 타이밍이 있어요. 정말 해야 할 될 것 같은 타이밍에 안 해버릴 수 있는 여유와 배짱이 사실 섹시죠. 여백 같은. 그리고 요즘 관객들은 힘을 줘서 섹시를 어필하려 하면 다 알아요. 그래서 자신감 있을 때 힘을 다 빼버려요. 뭘 하질 않아요. 연애도 마찬가지잖아요. 사랑 표현은 하면 할수록 좋은 거겠지만, 가끔 안 해야 할 때도 있어요. 분명 강약이 필요해요. 연애를 할 때도 당연히 밀당이 있어야 해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하면 공감하는 분들 많을 걸요. 하물며 섹시한 탐이라면, 그만의 밀당과 강약이 분명 존재해요.”

- 그렇다면 배우가 아닌 남자 한지상으로서 탐을 얼마나 이해하나요?

“저는 탐이 될 만한 외모가 아니며, 그만큼의 배짱도 없기 때문에 100% 공감하지는 않아요. 탐은 올랜드 블룸이나 혹은 소지섭 조인성 정도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조인성 원빈 정도면 탐처럼 살아도 될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그런 외모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탐이 부럽기도 해요. 남자들은 자유로움에 대한 로망이 굉장히 크거든요. ‘넥스트 투 노멀’의 게이브 같은 인물처럼 구속 받기 싫고 훨훨 날고 싶은 그런 로망 말이죠.”

-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 그런 점에서는 ‘보니 앤 클라이드’의 클라이드와 굉장히 많이 닮아 있는 것 같네요.

“그렇죠. 클라이드도 굉장히 자유로운 인물이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해요. 저 또한 탐을 하기 전부터 클라이드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미지나 겹치는 부분이 있고, 또 맞닿아 있기 때문에 탐을 클라이드와는 다르게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두 캐릭터의 차이점을 많이 연구했던 것 같아요.”

- 지금까지 해왔던 작품 속 캐릭터나 또 앞으로 연기할 ‘두도시이야기’의 칼튼까지 보면 드라마적으로 어두운 부분이 깊게 깔려있는 것 같은데 그런 캐릭터에 매력을 많이 느끼나요?

“저도 어느 정도 염세주의가 있어요. 그래서 저의 어두운 면을 부정하고 싶어 하는 면도 있고. 그래서 이번 칼튼은 이전 캐릭터보다 훨씬 더 극대화된 염세주의가 나올 것 같아요. 사실 유다도 그랬어요. 다들 내 말은 안 들어주니 얼마나 비관을 했겠어요. 동호, 클라이드는 물론이고 완득이 또한 생각해보면 비관적이고 염세주의적인 면이 있죠. 이렇게 꿰어서 생각을 해보면 캐릭터적으로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밝은 것보다는 어두운 캐릭터를 찾게 되는 건, 드라마적인 갈등이라는 것이 있어야 그걸 극복하는 과정이 더 재미있게 느껴지기 때문이죠. 기왕 갈등이 있어야 한다면 크고 비극적이어야 그 진폭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 한지상이 표현하는 탐만의 매력이나 강점이 있다면?

“나르시스트의 몰락이죠. 저는 ‘저렇게까지 되는구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몰락이 보였으면 해요. 몰락, 광기, 처절, 비극이 보이길 바랍니다. ‘유빌롱투미’(You Belong To Me) 전에 바에 올라가서 집착을 보이는데 사라가 무서워하죠. 그 다음엔 마치 똥강아지처럼 바짓가랑이를 잡죠. 안 그래도 제가 강아지상이라.(웃음) 그런 모습에서 나르시스트의 몰락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건 다른 세 명의 탐도 다 보일 거예요.”

“세 명 모두 정말 매력 있고 대단한 배우들이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도 정말 매력 있는 남자들이거든요. 재웅이 형은 저 군대 갈 때 같이 술 마시고 두 시간 자고 난 뒤 논산 훈련소까지 데려다 준 형이에요. 저는 재웅이 형이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도 할 수 있어요. 태을이 형도 마찬가지로 서로 공유한 것이 많아요. 저 군대 가기 전에 작품을 계속 함께 해서 추억이 많은 형이에요. 두섭이도 그렇고 배우들이 어쩜 그리 순수한지 모르겠어요. 제가 좋아하는 측근들은 정말 다들 순수해요. 친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사람들이에요. 탐도 순수해요. 그래서 무서운 거죠. 영악하고 계산적인 사람들은 탐처럼 그렇게 하지 못해요. 마이클, 사라도 마찬가지죠. 순수해서 본능에 의지를 하는 건데, 사라 또한 본능과 현실 중에 본능을 선택해 바람이 나고 이 난리가 난거죠. 순수와 본능은 이렇게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 최재웅 배우가 많이 챙겨줬다고 말씀하셨는데, 주원 서경수 등 후배들 또한 방송이나 인터뷰에서 한지상이라는 선배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곤 하더라고요.

“제가 남동생이 있어서 애착이 있는 것 같아요. 주원이나 경수도 동생이고, 너무나 사랑스러운 애들이니까. 둘 다 덩치는 큰데 참 귀여워요. 알게 모르게 다들 의지를 하는 것 같고. 귀여워서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 세 명의 나레이터의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던데, 함께 연기하면서도 그런 기를 받죠?

“그렇죠. 절정에 달했을 때는 탐이 죽고 나서인데, 죽고 나서도 (기를) 받더라고요. 죽어서는 그러면 안 되는 건데, 그만큼 대단한 배우들이에요. 나레이터가 축을 잘 잡아주기 때문에 나머지 셋이 잘 놀 수 있는 것 같아요. 정말 고마운 존재에요.”

- 공연을 보면서 궁금했던 건, 탐은 왜 이렇게 매력적인 나레이터를 바라봐주지 않는 건가요?

“여자는 사랑을 받아야 하는 존재지만, 남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자신의 마음이 더 중요한 거죠. 저 또한 남자가 더 많이 사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여자는 아무리 이 남자가 좋아도, 옆에서 다른 이가 지극정성으로 사랑을 해준다면 그 사람에게 갈 수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아닌 분들도 계시겠지만, 여자는 사랑 받아야 하는 존재인 거죠.”

- 마지막으로 배우 한지상을 표현할 수 있는 한 마디는?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소통이라는 것은 문화를 떠나서 대한민국에 필요한 숙제잖아요. 가족 친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소통이며 공연 또한 소통 없이는 존재할 수 없어요. 그리고 저는 뮤지컬이 하고 싶어서 배우가 된 것이 아니라 배우가 되고 싶어서 뮤지컬을 하게 됐어요. 학교 다닐 때 뮤지컬을 배우지 않아 잘 몰랐어요. 막연하게 배우가 되고 싶었는데 어떻게 뮤지컬을 하게 되면서 배우가 됐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연기적으로 더 깊이 있게 다가가는, 소통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한지상을 비롯해 최재웅, 한지상, 성두섭, 강태을, 린아, 박은미, 김신의, 홍경수, 조순창, 홍륜희, 문진아, 소정화가 출연하는 뮤지컬 '머더 발라드'는 오는 29일까지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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