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뱀파이어’라는 소재가 가진 야릇한 매력은 이미 많은 작품들을 통해 증명되었다.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존재, 사람의 피를 흡입하며 살아가고 늙지도 않으며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전설에 의하면 한없이 두려워해야 할 것이나 현대로 건너 온 그들은 퇴폐적인 미에 순정을 얹어 여심을 뒤흔드는 존재로 변화되고 있다.

영화 ‘트와일라잇’(2008)은 이 같은 면을 극대화시킴으로써 흥행에 성공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 여파가 어느 정도였냐면,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연이어 시리즈물로 제작되었음은 물론이고 해외영화와 드라마 시장은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이야기들로 북적거렸으니까.

흔히 전설은 전설이란 이유만으로 하나의 설득력을 만들어낸다. 개연성이 좀 떨어져도, 매력적인 인물이 등장하고 주연배우가 그것을 걸출한 외모와 약간의 연기력으로 소화해줄 수 있다면, 적절한 러브라인이 있고 그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이 평균 이하로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사실 ‘뱀파이어물’은 꽤 수지맞는 장사이기도 하다. 즉, 웬만해선 실패하지 않는단 이야기다.

외계인에서부터 사이코패스 및 소시오패스, 다중인격장애 등 다양한 존재들이 드나들고 있는 요즘의 안방극장에, 드디어 ‘뱀파이어’가 소환되었다. 평소 ‘뱀파이어물’이라면 앞뒤 안 가리고 챙겨 봤던 이들은, 나름의 기대감과 또 그만큼의 염려를 가지고 있었으리라. 각자 어떠한 결과를 얻고 있는 진 모르겠다. 하나 확실한 건,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KBS 2TV 월화드라마 ‘블러드’(연출 기민수‧이재훈, 극본 박재범)는 현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가장 먼저 꼽은 ‘블러드’의 치명적인 결점은, 초장부터 드라마의 몰입을 방해하는 주연배우들의 연기력이었다. 특히 극 중 유리타란 인물을 맡은 구혜선의 부자연스러운 연기는 첫 회부터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구혜선은 앞서, 이번 드라마를 통해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말투와 목소리톤을 바꾸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 그녀의 말대로 목소리톤과 말투는 어느 정도 바뀌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보는 이들은 유리타가 된 구혜선이 아니라, 유리타인 척을 하는 구혜선을 보는 것 같아 어색하고 낯간지러운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쯤 되면 몰입이란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기존의 ‘예쁜 구혜선’ 이미지는 그대로 고수한 채 말투나 목소리톤 정도만 바꾸려 하니 될 턱이 있을 리가.

하지만 이것은 ‘블러드’가 가진 문제에 있어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즉, 구혜선의 연기력 논란은 만약 드라마가 순항 중이라면 무마되었을지도 모르는, 그저 드러난 하나의 현상일 따름이란 의미다. 정말 치명적인 결점은 주연배우들의 연기력이 아니라,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해 낯선 곳에 와서 괜한 신고식을 치르게 된 ‘뱀파이어’란 소재와 이를 뒷받침하기에 너무도 개연성이 떨어지는 스토리라인에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좀 더 외부에 드러나 있는 배우의 연기력 문제만 눈에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다.

우리가 여러 장르의 이야기를 통해 ‘뱀파이어’에 아무리 익숙하게 되었다 치더라도, ‘뱀파이어’는 엄연히 서양 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창조물이다. 가까운 예로, 사람들에게 ‘뱀파이어’를 묘사해보라고 한다면 대부분 서양인으로, 그것도 백인으로 그려낼 것이다. 서양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 구축된 ‘뱀파이어’란 이미지엔 그 쪽 사람들의 세계관과 삶의 방식이 자연히 녹아들어 있을 수밖에 없으며, 우리 또한 은연중에 ‘뱀파이어’를 ‘접해보지 못한 낯선 것(흡사 외국인처럼)’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트와일라잇’의 외국인 ‘뱀파이어’들은 어딘가에 실제로 있을 것만 같은 매력적인 존재들로 여겨지고, ‘블러드’의 한국인 ‘뱀파이어’들은 그냥 코스프레한 사람들인 것처럼 여겨지니 손가락이 오그라들고 낯이 간지럽고 몰입이 안 될 수밖에. 한 마디로 정서적인 차이가 가져온 문제다. 이는 웬만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가 아닌 이상 소화해내기 힘들다. 지진희가 ‘블러드’에서 만들어낸 뱀파이어가 그나마 매력적인 존재로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의 앞머리에 말한 것처럼 전설은 전설이란 이유만으로 하나의 설득력을 가지기에, 전설을 다룬 이야기들을 두고 굳이 개연성을 따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블러드’는 그 상황이 다르다. ‘뱀파이어’는 서양의 정서로 이해되는 서양의 전설이고 미신이다. 우리의 것이 아니다. ‘전설의 고향’에서 등장하는 귀신과 같은 취급을 해선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 소재가 아닌 이야기의 힘에 의지해야 한다. 견고한 개연성을 갖춘 이야기로 설득력을 획득해야 한다. 그 위에서야 비로소 ‘블러드’의 ‘뱀파이어’들은 코스프레란 오명을 벗어낼 수 있고 그들만의 매력을 마음껏 뿜어내며 사람들을 매혹할 수 있을 테다.

사실 ‘뱀파이어’로선 이번이 첫 방문이 아니다. 이미 십년 전에 ‘안녕, 프란체스카’란 시트콤으로 첫 발을 들였다. 뱀파이어들에게 ‘안녕, 프란체스카’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그 땐 지금보다 더 생소했을 ‘뱀파이어’란 소재를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멋들어진 CG 하나 없었고 그들이 ‘뱀파이어’라고 갖춘 모양새는 유치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 안엔 ‘뱀파이어’로서의 그들의 삶이, 그들과 별다를 것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재미와 감동을 동반해 담겨 있었다. 우린 함께 웃고 울며, 코스프레에 가까운 우스운 분장을 하고 있었던 그들을 진짜 ‘뱀파이어’로 받아들였다. 그것도 기꺼이 물려줄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인 ‘뱀파이어’로. 이는 ‘안녕, 프란체스카’가 많은 환호 속에서 시즌3까지 제작될 수 있었던 저력이며, 난관 속에 봉착한 ‘블러드’가 본보기로 삼아야 할 대목이겠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 사진=‘블러드’화면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