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이충렬 감독이 지난 2009년 다큐멘터리 '워낭소리'의 성공 이후 7년 만의 신작을 들고 충무로를 찾는다. 모두가 또 다른 감동 스토리의 다큐멘터리를 기대했겠지만, 그의 손에 들린 작품은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를 담은 '매미소리'라는 극 영화다.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매일 같이 시나리오를 다듬고 있다는 이 감독을 만났다.

이 감독은 오는 6월 크랭크인을 앞둔 영화 '매미소리'(제작 자유로픽쳐스)를 통해 영화계에 돌아오게 됐다. '워낭소리' 개봉 후 7년, 뇌종양으로 쓰러져 병마와 싸워온 지 5년 만이다.

'매미소리'는 전라남도 진도 지방에 전승되던 상여놀이를 하는 다시래기꾼으로 살며 무형문화재 전수자가 되고자 외길 인생을 고집한 아버지 덕배와 딸 수남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다시래기꾼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죽은 엄마, 그로 인해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수남의 이야기가 얽힌 부녀지간의 증오, 소통과 화해의 과정을 그렸다. 안성기가 덕배 역을, 이정현이 수남 역을 맡았다.


'매미소리'는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 오랫동안 뜸을 들인 작품이다. 이 감독이 쓰러지며 모든 촬영 일정이 멈췄고, 주연 배우였던 안성기는 감독의 회복을 기다리겠다는 의사를 전했지만 감독을 마냥 기다릴 수 없었던 제작진들은 뿔뿔이 흩어졌다고 했다. 이후 그는 병석에서 시나리오를 끊임없이 고치며 다시 크랭크인을 준비했다고 했다.

"진도에서는 다시래기를 '매미'라고 부르기도 해요. 헌 생명을 가져가고 새 생명을 낳는다는 개념의 다시래기와, 허물을 벗는 매미의 모습이 닮아 있어서죠. 7년 간 땅에서 애벌레로 살다가 세상 구경을 하는 매미와 '워낭소리' 이후 7년 만에 다시 영화계로 돌아온 제 모습이 닮아있기도 해요."

이 감독은 '워낭소리'의 성공 이후 주위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며 대인기피증을 겪고, 뇌종양으로 인해 몸까지 아팠던 터라 지난 7년의 시간은 아픔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매미소리' 제작에 매달렸고, 자신의 병으로 인해 여러 번 무산된 제작팀을 다시 꾸리는 동안 지난한 시간들이 흘러갔다고도 했다. 그 시간 동안 이 감독은 자신이 겪은 고통까지도 영화에 녹여 내겠다는 일념으로 제작을 이어갔다고 했다.

방송 일을 했던 경험 역시 '매미소리'의 시나리오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마분지에 만화 스토리보드 그리는 것을 좋아하던 어린 소년은 부모님의 뜻에 따라 교육학을 전공했지만 결국 방송 전문 프로덕션에 입사해 연출 일을 배웠다고 했다. 당시 진도 다시래기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경험은 '매미소리'의 시발점이 됐다.


시나리오가 어느 정도 완성된 이후에는 투자를 받기 위해 발품을 파는 과정이 이어졌다고 했다. "'워낭소리'에 이은 '매미소리'냐, 이번 다큐멘터리에는 매미가 나오느냐"는 질문을 듣는 일도 부지기수였다고. 독립영화계에서 공전의 히트를 친 '워낭소리'의 그림자가 워낙 컸던 탓에 그가 극 영화를 찍는다는 말을 들으면 의아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감독은 "'워낭소리'는 남녀노소 누가 봐도 감동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에서 기존 다큐멘터리 문법과는 달리 새로운 이야기 전달 방식을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처음 영화가 개봉했을 때는 '극 영화를 따라 한 것이 아니냐'는 오해도 많이 받았지만, 이후에는 오히려 본격적으로 영화를 찍어보라는 격려와 조언도 받았다는 그다. 그때 그가 떠올린 것은 '워낭소리'와는 또 다른 형태의 가족 이야기였다.

"'워낭소리'와 '매미소리'는 결국 소멸하는 가정에 대한 안타까움, 기억에 대한 이야기에요. 워낭소리를 들으면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따뜻하고 순수한 추억이 떠오르고, 매미소리를 들으면 주인공이 개인적인 트라우마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는 점이 다르죠. '워낭소리'에는 제 유년 시절 경험이, '매미소리'에는 내 상처와 아픔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 점들이 관객과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 감독은 "가족 영화가 상대적으로 외면받고 있는 장르임은 사실이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규모가 큰 상업 영화도 아니고, 그래서 물리적으로 한계를 느끼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매미소리' 제작에 사활을 건 것도 이러한 사명감 때문이라고. 이 감독이 사명을 가지고 그려낼 또 하나의 따뜻한 이야기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정영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