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하홍준 기자] ‘부산행’ 천만, ‘인천상륙작전’ 550만, ‘덕혜옹주’ 250만, ‘터널’ 100만, 여름 스크린 대전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박스오피스가 여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올랐다. 국내 4대 배급사의 텐트폴 무비는 물론 ‘수어사이드 스쿼드’ ‘제이슨 본’ ‘마이펫의 이중생활’ 같은 쟁쟁한 외화와 애니메이션까지 가세하면서 상영관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

이러한 대작들의 돌풍 가운데, 몇몇 ‘작은 영화’들이 의미 있는 성적을 거두고 있어 눈길을 끈다. 보석 같은 작품들이라 보물찾기처럼 상영관 찾기는 어렵지만, 입소문을 바탕으로 기특한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최근 다양성 영화 중 가장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은 지난 달 14일 개봉된 ‘나의 산티아고’(감독 줄리아 폰 하인츠)다.

최고의 코미디언 하페(데비드 스트리에소브)가 과로와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다 떠난 산티아고 순례 여행에서 그 동안 몰랐던 새로운 자신과 신을 마주하며 겪은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실제 독일의 유명 코미디언인 하페 케르켈링이 쓴 여행 에세이를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는 순례길의 고즈넉한 풍경을 통해 주인공과 여정을 함께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나의 산티아고’가 11일까지 동원한 누적관객수는 7만5419명이다. ‘부산행’의 천만에 비하면 미미한 성적이지만, 다양성 영화의 흥행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10만명에 근접한 수치다. 릴레이 GV는 예매가 오픈 될때마다 매진을 기록하고 있으며, 평일에도 높은 좌석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나의 산티아고’와 하루 차이로 개봉된 ‘데몰리션’(감독 장 마크 발레)도 1달째 장기상영 중이다.

아내를 잃은 후 사소한 삶을 들여다보게 된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파괴(Demolition)’라는 의미를 지닌 제목처럼 주인공 데이비스는 냉장고, 컴퓨터, 문짝, 전등, 심지어 집까지 고장난 물건들을 분해하며 파괴한다. 그에게 이러한 행위는 역설적으로 상실감을 이겨내고 망가진 자신의 삶을 재생시키는 수단이 된다.

영화는 장 마크 발레 감독의 스타일리시한 연출과 제이크 질렌할과 나오미 왓츠의 감성 연기, 상실을 경험한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로 호응을 얻고 있다. 개봉 후 2주 연속 다양성영화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으며, 일주일 만에 3만명을 동원하고 최근에는 6만 관객을 돌파했다.


다양성 영화 시장의 흥행 보증수표로 불리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도 잔잔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태풍이 지나가고’는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한 채 유명 작가를 꿈꾸는 사설탐정 료타(아베 히로시)가 태풍이 휘몰아친 밤, 헤어졌던 가족과 함께 예기치 못한 하룻밤을 보내며 진짜 어른이 돼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극적인 전개는 없지만, 잔잔한 에피소드를 쌓아 올려 묵직한 감동을 전하는 고레에다표 가족 영화의 장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이다.

지난 달 27일 개봉 후 재관람 열기가 더해지면서 11일 만에 5만 관객을 넘어섰고, 최근에는 6만 관객을 돌파했다. 고레에다 감독의 전작인 ‘걸어도 걸어도’ ‘환상의 빛’도 동시기에 재개봉 돼 의미를 더하고 있다.

‘우리들’(감독 윤가은·제작 아토 ATO)은 국내 다양성 영화의 저력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주목된다.

11살 소녀인 외톨이 선(최수인)과 비밀을 가진 전학생 지아(설혜인)의 우정과 갈등을 그린 영화다. 복잡미묘한 인간관계를 드라마틱하게 담아낸 스토리와 윤가은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 성인배우 못지않은 아역 배우들의 열연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 제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전 세계 10개 영화제에 공식 초청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우리들’은 지난 6월 16일 개봉 후 벌써 9주째 장기 상영 중이다. 최근에는 누적관객수 4만명을 돌파하며 ‘글로리데이’에 이어 올해 개봉된 한국 다양성 극영화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했다.

신인 감독의 데뷔작, 스타배우 없는 다양성 영화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작품이 가진 힘만으로 이뤄낸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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