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배우 강한나가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마치 '보보경심'과 같은 심정으로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를 떠나 보냈다. 악역을 찰떡 같이 소화한 강한나였지만, 정작 그 안에는 좋은 배우를 꿈꾸는 좋은 사람이 있었다.

강한나는 지난 1일 종영한 SBS 월화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극본 조윤영·연출 김규태, 이하 '달의 연인')에서 황보연화 역으로 출연했다. '달의 연인'이 100% 사전 제작된 덕에 촬영은 지난 6월 일찌감치 끝났으나 카메라를 떠난 뒤에도 종영까지 4개월 여의 시간이 흘렀다. 이에 강한나는 "촬영할 때는 '언제 방송되나' 했는데 막상 방송이 끝나는 걸 보니 '벌써'라는 느낌이다"고 소감을 밝혔다.

종영이 아쉬운 만큼 강한나는 누구보다 '달의 연인'의 방송은 물론 출연을 고대했다. 그는 연출을 맡은 김규태 감독의 전작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괜찮아 사랑이야' 등을 빠짐 없이 챙겨봤다. 그 덕에 김 감독의 첫 사극 드라마인 '달의 연인' 섭외 요청이 들어왔을 때부터 기뻤고, 성동일과 이준기, 조민기 등 쟁쟁한 선배 연기자들과 호흡하는 것에 들떴다.

들뜬 와중에도 강한나에게 캐릭터에 대한 부담감은 분명히 존재했다. '달의 연인'이 중국 인기 소설 '보보경심'을 원작으로 삼아 만들어졌고, 원작은 중국에서도 드라마로 제작돼 큰 인기를 끌며 시즌2까지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이에 강한나는 김규태 감독에게 원작을 참고해야 할지 여부를 물어보며 해답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김규태 감독에게 물어본 결과 황보연화는 '달의 연인'에서 새로 만들어진 인물에 가깝다고 들었다"며 "원작에도 악녀 역할이 있기야 했겠으나 새 캐릭터인 황보연화는 굳이 원작을 참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또한 강한나는 감독으로부터 "초반 분위기에서는 대사 말투나 표정이나 모든 게 가벼웠으면 좋겠다는 주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초반에는 가볍게 가면서 후반에 무거운 분위기를 주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면서도 결국은 김규태 감독의 의도대로 극적인 변화를 보여줄 수 있었다고 만족을 표했다.

더불어 "자신이 걱정했던 것보다 시청자 분들이 황보연화의 상황을 많이 이해해주셔서 감사했다"고 소감을 털어놨다. 특히 그는 "사전 제작 드라마 특성 상 이미 찍은 장면들이 편집될 뻔한 위기도 있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황보연화에게 중요했던 장면은 나온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대본 상 극 초반 황보연화가 해수(이지은)의 영악한 면모를 눈치 채고 미워하게 되는 순간이 있어 촬영까지 했는데 막상 방송에서는 볼 수 없던 점에 아쉬움을 내비쳤다.

해수의 편집이 아쉬울 정도로 강한나는 해당 캐릭터를 연기한 이지은과 통하는 점이 많았다. 이에 '달의 연인' 방송 초반부터 불거졌던 이지은의 연기력 논란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저는 대본 리딩을 할 때 많이 더듬는 편이다. 그런데 이지은은 첫 대본 리딩을 할 때부터 너무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방송 후에 나와 달랐던 반응들에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만 일면 이해하기도 했다. 시청자는 장면을 보지만 연기자는 캐릭터의 전사(前史)를 더 생각한다. 그런데 해수의 전사인 고하진(이지은)이 방송 상 많이 줄었다"며 이지은이 맡은 캐릭터의 분량이 적어지면서 설명이 충분해지지 않아 연기력 논란이 있었을 것으로 나름의 이유를 추측하기도 했다.

자신이 아닌 다른 배우의 전사까지 고려할 정도로 강한나는 캐릭터의 전사를 비롯해 장면에서 드러나지 않는 내면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그 첫 단추가 그의 '배우 노트'였다. 그는 대중의 뇌리에 존재감을 각인시킨 영화 '순수의 시대'를 비롯해 매 작품마다 캐릭터를 향해 편지를 쓰듯 배역을 연구하는 자신만의 노트를 만들고 있었다.

이번에도 강한나는 "'달의 연인' 황보연화도 노트를 만들었다"며 "초반에는 꼼꼼하게 했는데 나중에는 촬영 일정에 쫓기기도 했고, 나만의 분석 보다는 현장에서 디렉션을 받아 흡수나는 식으로 촬영이 진행돼 많이 적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달의 연인' 속 황보연화에 대해 한 마디로 "보보경심(步步驚心)"이라며 "원작 제목의 뜻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캐릭터에 접근했고 그런 마음으로 작품을 마쳤다"고 돌이켰다.

강한나가 누구보다 조심스럽게 접근한 작품이지만 '달의 연인'은 흥행 면에서는 다소 아쉬운 성적을 거뒀다. 같은 시간대에 '구르미 그린 달빛'이 압도적인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강한나는 "아쉬움보다는 자부심"을 강조했다. 그는 "'달의 연인' 방송 당시 중국에서 드라마 촬영 중이었다"며 실시간으로 '달의 연인'의 반응을 확인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더불어 "국내 시청률이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숫자에 연연하기보다는 좋은 캐릭터를 연기한 게 저한테는 더 큰 의미가 있다. 결과보다 그를 위해 노력했던 과정들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만큼 강한나는 연기를 함에 있어 보여지는 장면보다 캐릭터와 호흡하며 에너지를 얻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순수의 시대'와 '달의 연인' 등 유독 사극에서 강한 여성 캐릭터로 주목 받은 것에 대해서도 "소위 말하는 '센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에너지 넘치는 캐릭터가 좋다"고 말했다.

그런 강한나가 꿈꾸는 캐릭터와 장르는 지금껏 제대로 도전한 적 없는 "시트콤"이었다. 그는 "희극이라는 장르는 배우로서 호흡을 맞추기 어렵다. 그렇지만 무척 좋아하는 장르다"며 "오히려 어려운 것에 도전해서 극복하는 과정을 즐긴다"고 말했다. 연장선 상에서 로맨틱 코미디 역시 해보고 싶지만 수동적으로 사랑 받기보다는 망가지더라도 노력해서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였다.

이에 강한나는 "아직 해보지 못한 게 너무 많아서 꾸준히 부지런하게 연기하고 싶다"며 웃었다. 동시에 그는 배우로서 "좋은 사람과 좋은 연기자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강한나는 "배우는 한 인물의 인생을 표현하고 시청자에게 캐릭터를 신중하게 보여 드려야 한다"며 "내 마음을 많이 쏟아야 하는 작업이다 보니 좋은 사람, 좋은 그릇이 되지 못하면 어떻게 다양한 인물을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좋은 사람으로 캐릭터를 담는 좋은 그릇을 꿈꾸는 강한나의 앞날을 기대한다.

[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조혜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