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조기 대선이 예상되자 채널을 막론하고 방송국들이 정치권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보도국, 교양국은 물론 예능국도 거물급 정치인 섭외에 뛰어든 상황. 시청률 한탕을 노린 섣부른 정치와 예능의 콜라보가 우려를 낳고 있다.

13일 KBS2 예능 프로그램 '해피 투게더 시즌3'(이하 '해투') 관계자는 티브이데일리에 "문재인, 안희정, 안철수, 이재명, 유승민이 출연하는 특집을 기획 중"이라고 밝혔다.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며 유보적인 입장이긴 했으나 차기 대권 유력 주자 5인방을 예능에서도 모아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대권 후보들에 대한 섭외 시도는 '해투'가 처음이 아니다. 과거 토크 쇼가 성행할 때는 SBS 예능 프로그램 '힐링캠프'가 대선 특집으로 기획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정치권에서 탄핵 정국 이후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후보들이 대선 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방송국의 시계도 대선에 맞춰졌다. 특히 보도국은 물론 교양국과 예능국도 같은 타임 테이블을 공유하고 있다. 유권자이자 대중인 시청자의 관심사가 차기 대선에 집중된 여파다.

그 시작은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부터다. 뉴스뿐 아니라 다양한 정치 평론 프로그램을 가동 중인 종편 4사에서 유력한 대선 주자들과 전화 인터뷰를 시도하며 섭외의 불씨를 지폈다. 여기에 종편 4사 중 최근 가장 각광받고 있는 JTBC가 교양 프로그램 '말하는 대로'와 '썰전'에 대선 주자들을 섭외하며 기름을 부었다.

'썰전'의 경우 평소 정치 평론을 재치 있게 전해온 대표적인 프로그램이었다. 매주 출연하는 고정 패널 유시민 작가는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 국회의원까지 지냈고 전원책 변호사도 다양한 토론 프로그램에서 보수 대표 패널로 활약했다. 이에 '썰전' 제작진이 대선주자 특집까지 구성해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에 이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출연하고 다른 정치인들도 출연을 앞둔 것이 큰 괴리감을 주진 않았다.

반면 '말하는 대로'의 경우 게스트 중에도 연예인이 매회 등장하는 등 예능적 성격이 강한 교양이었다. 이에 이재명 성남시장과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출연한 것부터가 이슈였다. 다만 '말하는 대로'의 특성 상 출연자가 연사로서 시민들 앞에서 자유롭게 토크 버스킹을 진행한다는 점이 프로그램의 예능적 분위기와 진지한 사안을 논하는 정치인 게스트 사이 괴리감을 좁혔다. 무엇보다 이들의 방송 회차가 프로그램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정치인의 예능 출연이 시청자에게 호응을 얻는 것으로 비춰졌다.


그러나 시청률이 무조건 호평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SBS 특집 교양 프로그램 '대선주자 국민면접'(이하 '국민면접')이 대표적인 예다. 12일 밤 첫 방송된 '국민면접'은 설 연휴께 실시된 여론조사의 지지율 상위 5명을 대상으로 국민들의 관심과 댓글 질문으로 압박 면접을 실시한다는 콘셉트로 꾸며졌다. 첫 주자로 문재인 전 대표가 출연해 철학자 강신주, 소설가 김진명, 전여옥 전 의원, 진중권 동양대 교수, 영화평론가 허지웅과 1대 5 면접을 실시했다.

1시간이 넘는 방송 시간 동안 문 전 대표는 성실하게 면접관들의 질문에 답했다. 그러나 제작진이 문 전 대표의 '노잼' 수식어를 너무 의식한 탓일까. '혼밥', '혼술'을 즐긴다거나 고양이와 함께한다는 문 전 대표의 답변이 지나치게 희화화 됐다.

심지어 방송 시간 배우 김의성은 실시간으로 트위터에 "저런 거지같은 프로그램을 아예 볼 생각도 안 하는 내가 챔피언"이라는 멘션까지 남겼다. 격한 반응이라는 지적도 일었으나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에 동조하는 시청자들 반응이 주를 이뤘다. 현재 지지율 1위 문 전 대표에 대한 관심이 한 주의 시작을 앞둔 일요일 밤 늦은 시간까지 시청자를 TV 앞으로 부르긴 했으나 프로그램 자체가 시청자를 만족시키진 못했던 셈이다.

이는 곧 시청자가 정치인 게스트에게 기대하는 것은 결국 재치 있는 예능감으로 친근감 있게 대중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고 진지한 검증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웃고 떠드는 것은 어차피 프로 예능인들이 훨씬 잘해주니 당신네들은 살맛 나는 정책과 철학으로 우리를 웃게 만들어 달라고.


'썰전'과 '말하는 대로'는 이러한 시청자의 욕구를 파악해 정치인이 정책으로 말하게 만들었다. '썰전'은 유시민과 전원책의 매서운 질문을 통해 대답을 이끌어냈고, '말하는 대로'는 거리와 청중을 만들어 게스트 스스로 연사가 되게 만들었다. '국민면접'은 '썰전'과 유사한 포맷이었으나 엉뚱한 재미 포인트를 가미해 뭇매를 맞았다.

'해투' 제작진의 시도는 과연 이들 중 어디에 방점을 찍을까. 안타깝게도 최근 '해투'의 포맷은 '국민면접'을 뛰어 넘는 예능적 재미를 예상케 하고 있다. 우선 프로그램 자체가 에듀테인먼트 같은 교양과 예능의 결합 포맷도 아닌 순수한 예능국 제작 프로그램이다. 출연진 역시 정치적 행보와 거리가 먼 유재석, 전현무, 박명수, 엄현경, 기안84 등이다. 자연히 프로그램은 게스트들을 이용해 왁자지껄한 웃음을 자아내는 게 목표다.

그동안 '해투'는 게스트들을 상대로 기안84로 하여금 캐리커처를 그리게 한다거나, '노잼'에 가차 없는 엄현경의 냉랭한 반응을 직면하게 만들며 웃음을 자아냈다. 박명수, 전현무, 조세호의 깐족, 이들을 아우르는 유재석의 진행도 거들었다. 그 틈에 출연자들의 과거 에피소드가 화제를 모으기도 했으나 일회성 가십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과연 대선주자 5명을 상대로도 이 같은 예능 작법이 통할 것인가.

온갖 이슈를 잡아먹을 정도로 뜨거운 감자인 게스트를 섭외하려는 제작진의 노림수. 제대로 된 검증 전에 예능 출연으로 지지율 반등을 꾀할 수 있다는 발상. 이 두 가지 이해 관계가 마치 한탕주의처럼 비춰지기에 기획과 섭외 시도 자체가 주는 놀라움보다 아쉬움이 크다. 대중은 거대한 한탕주의에 지금의 시국을 경험하고 있다. 아직은 대선 주자 섭외는 기획 단계라는 '해투' 관계자의 말에도 기대보다 우려가 되는 이유다.

[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JTBC, SBS,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