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김형주 감독은 재치있고 솔직했다. 그의 첫 영화 '보안관'에서도 그 특유의 유쾌함과 정겨움이 묻어났다. 흥미와 호기심을 돋우는 신인 감독의 탄생이 즐겁다.

5월 3일 개봉될 영화 '보안관'(감독 김형주·제작 영화사 월광)은 전직 형사 출신에 동네 보안관을 자처하는 오지랖 넓은 대호(이성민)가 서울서 내려온 성공한 사업가 종진(조진웅)이 점차 자신의 입지를 빼앗자 위기감을 느끼고, 그를 홀로 마약사범으로 의심하며 집념의 수사를 벌이는 과정을 그린 코믹 로컬 수사극.

'군도:민란의 시대' 조감독이었던 김형주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첫 영화 개봉을 앞둔 그의 심정은 "발가벗겨진 기분"이란다. 그저 관객들이 재밌게 즐겼으면 한다고. 그가 '보안관'을 통해 부산 기장의 정겹고 유쾌한 '아재'들을 그려낸 이유는 그곳이 그의 고향이기도 했고, 타지 생활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대한 정겨움을 느껴주길 바라며, 지쳐있는 이 시대 '형님'이자 '아재'들에 소소한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첫 영화에 무려 이성민, 조진웅, 김성균을 기용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지. 세 사람 모두 그가 조감독 시절 만나 친분을 쌓았던만큼, 실제 형님처럼 본인들 일인마냥 축하를 해줬단다. 또 그들이 모두 출연 제안을 승락했을 땐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고. 아무리 인연이 있다고 해도 의리 때문에 쉬이 작품을 택할 이들이 아니었기에 인정받은 것 같아 뿌듯하고 자신감을 얻었을 터. 김형주 감독은 "영화의 정서를 이해해주시고 공감해주셔서 감사했다. 저도 억지로 웃기는 영화가 아닌, 유쾌하고 따뜻한 영화를 찍고자 했다"고 밝혔다.

개성 강한 진짜 동네 형님들 같은 배우들이 나서준만큼 감독은 인물들의 동선을 제약하지 말고 자유롭게 놀았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실제 영화는 유쾌한 '부산 아재'들의 코믹 활극으로 활력이 살아 넘친다. 특히 동네 대소사에 몰려다니는 대호파 6인의 모습은 젊은이들에 '아저씨' '꼰대'로 치부되는 중년 남성들이지만, 알고보면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지키기 위해 영웅 심리로 똘똘 뭉친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재들'이다.

김형주 감독은 "영화 곳곳에 만화적인 톤앤매너를 살리려 했다. 또 테크닉적인 콘티들은 날것의 아저씨들의 투박한 맛이 덜어져서, 동선이 틀어지더라도 감정에 충실하고 인물에 집중되게 찍으려 했다"고 밝혔다. 이런 감독의 노력대로 '보안관' 배우들은 주조연 할 것없이 생생하게 살아넘쳤다. 그리고 이는 오히려 스토리를 더욱 맛깔나게 만든 요인이었다.

이를테면 정의감 넘치고 저돌적이지만 남의 안타까운 사연을 두고보지 못하는 화통하고 속깊은 대호가, 점차 종진의 매력에 이끌리는 사람들을 보며 질투하고 토라지는 모습. 그와 '덤앤더머' 콤비를 이루는 처남 덕만(김성균)이지만 졸지에 '밉상 오지라퍼'로 몰린 매형을 위해 두 팔 걷고 나서는 모습. 늘 남의 집 일만 신경쓰는 남편 대호에 잔소리 일색인 기 센 아내 미선(김혜은)이, 초라하게 주눅든 남편을 위해 대신 나서서 '쌍욕'을 할만큼 멋지고 당찬 모습 등등. 이처럼 영화는 주류가 아닌 평범한 동네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더욱 코믹하고 정겨운 이웃의 정서와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그럼에도 감독은 "제가 재밌는 사람이 아니라서 좀 어려웠다. 코미디는 리액션이라고 하는데, 속된말로 '짜치게 웃긴다'는 얘기는 듣고 싶지 않아서 계속 상황을 만들어내려고 하다보니 정말 고민이 많았다. 누구를 웃긴다는 게 웃고 울고 이런 감정들을 모두 건드려야 하는 건데 정말 쉽지 않구나 싶었다"고 겸손이다. 워낙 신뢰도 있고 호감도 높은 배우들과 함께 해서, 그들의 바르고 정의롭고 친근한 이미지 덕을 많이 보는 것 같다며.



그는 사실 관객들 반응보다 앞서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어떻게 영화가 보여질까 더 무섭고 궁금했단다. 유쾌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선언했고, 이에 동의하고 함께 해준 인들인데 결과물이 동떨어졌다면 그들이 얼마나 자괴감이 들겠느냐며. "영화를 만드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더라. 함께한 사람들끼리 합의한대로 얘기가 나와야 하지 않나 하는 부담도 있었다. 세상 모든 감독님들이 존경스러운 마음"이라고 엄살이다. 모든 배우들이 하나같이 현장 분위기를 즐기며 끈끈한 친분을 자랑하고, 긍정적 에너지를 나누며 일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독의 남다른 자질이라 할 수 있다. 그 역시도 "이렇게 분위기 좋은 현장은 다신 못만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저 양반들 놀러오셨나' 싶기도 할만큼 정말 좋았다"고 너스레다.

무엇보다 김형주 감독의 재치는 간혹 드러나는 유쾌한 풍자 코드로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의도는 아니다"라고 손사레쳤음에도 이내 "녹아들어있으니 의도긴 하다"고 수긍하는 익살스러움이 있다. 안 보는데선 나랏님 욕도 한다고 그 의도가 읽혀도 좋고, 안 읽혀도 좋단다. 그저 늘 봐왔던 정치권 형태에 대한 코믹한 비틀기를 은유적으로 담고 싶었단다. 대본을 쓰면서도 제 목소리처럼 비춰질까 스스로 경계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영화의 톤앤매너를 이해한 이성민, 조진웅이 직접적이지 않고 자연스레 연기해줘서 더 좋았다고.

앞으로 어떤 장르의 이야기를 하게 되건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인간적인 정서들, 그 희노애락을 담는 영화를 만들고 싶단 감독이었다. '보안관' 배우들과 다 함께 스릴러를 해도 재밌겠다고. 첫 영화를 세상에 보이기 전 그의 바람은 그저 "즐겁게 작업한 분들이 행복하게 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목표와 고민은 분명했다. 목표는 좀 더 좋은 영화를 꾸준히 찍는 것이고, 그런 역량의 감독이 될 수 있는지 고민한다. '보안관'으로 탁월한 센스와 위트를 담아낸 신인 감독 김형주인만큼, 그의 '다음'이 기다려지는 건 당연했다.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영화 '보안관'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