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노한솔 기자] 배우 류덕환이 제대 후 안방극장으로 복귀했다. '미스 함무라비'는 그의 철학과 생각이 그대로 담긴 작품 그 자체였다.

류덕환은 2017년 제대 후 첫 작품으로 종합편성채널 JTBC 월화드라마 '미스 함무라비'(극본 문유석·연출 곽정환)를 선택했다. '미스 함무라비'는 이상주의 열혈 초임 판사, 원리원칙이 최우선인 엘리트 판사, 현실주의 부장 판사까지, 달라도 너무 다른 세 명의 재판부가 펼치는 리얼 법정 드라마다.

류덕환은 극 중 판사계의 안테나 정보왕 역을 맡아, 시청자들의 숨통을 트이게 만드는 서브 캐릭터로 활약했다. 박차오름 역의 고아라와 임바른 역의 김명수는 멜로라인보다 진지한 스토리를 이끌어가야 했기 때문에 정보왕과 이도연 역의 이엘리야가 그 역할을 대신해야 했다. 류덕환은 정보왕과 이도연이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박차오름과 임바른에게 주어진 숙제들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 반면 이도연과 나 같은 경우에는 주인공 힘이 돼주는 조력자였다. 극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핑크빛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극의 숨통이 트인다는 것 때문에 예뻐보였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함께 연기했던 배우 이엘리야에 대해서는 호평을 마지않았다. 이엘리야는 극 중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미모의 소유자지만, 그 속내를 알기 어려운 서울중앙지법 민사 제44부 속기실무관(속기사) 이도연을 연기했다. 류덕환은 두 사람의 호흡에 대해 "이엘리야가 가지고 있는 달란트가 이도연과 너무 잘 맞았던 것 같다. 자신의 재능을 보여줄 수 있는 콘셉트를 잘 잡아 왔다"고 말했다. 정보왕과 이도연의 관계에 대해서도 "당당한 정보왕이 유일하게 얘 앞에 가면 말이 끊기고, 듣게 되고, 관심 가지게 된다. 온전히 인간 그 자체로 받아들이게 되는 거다. 집중하려고 했다"며 이엘리야와 호흡이 좋았기 때문에 정보왕 캐릭터가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 류덕환이다.

원래 그는 영화에서 자주 얼굴을 비췄던 배우였다. 이는 20대 당시 류덕환의 아집 때문이었다. 실험적인, 내가 좋아하는 것 위주로만 하고 싶었다는 그다. 더군다나 너무 빠르게 촬영이 진행되는 드라마 매체에 대한 겁도 있었다. 자신은 매우 느린 사람이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류덕환은 드라마 매체에 대해서는 "아직도 무섭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 그가 이번 작품을 하게 된 것은 군대에서 아주 우연찮게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군대에서 만난 후임이 전역하고 TV에 나오면 너무 반가울 것 같다고 했던 것이 류덕환에게 이상한 감동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류덕환은 "영화를 찍으면 별로 반응이 없는데 드라마를 하면 우리 이모들도 잘 보고 있다고 연락을 준다. 이제는 모자랐던 부분들도 조금은 용기를 내서 슬슬 발을 디뎌도 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었다. 어린 친구가 얘기해준 한 마디 때문이었다. TV에서도 나를 정말 반가워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돼서 거리낌 없이 선택하게 됐던 것 같다"고 답했다.

"내가 모르는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들과 2년 동안 같이 살고, 다른 조직과 피부를 맞닿으면서 했다는 게 컸어요. 어찌 됐건 걸어온 길들이 완벽하게 변하진 않았으니까요. 겁을 먹어서 이런 작품들을 못 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하게 됐으니 다행이죠."

그는 아직도 작품 선택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앞선 걱정들은 고쳐지지 않을뿐더러 조심하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치지 않을 것이라는 류덕환이다. 그러면서도 류덕환은 "후회를 하지는 않는다. 다만 '부족했나'라는 생각은 늘 한다"며 "이번 작품에서는 실력에 관한 것, 나를 뽐내는 것에 대해서 정말 생각을 안 했던 것 같다. 진짜 재밌게 했다. 부담감 없이 했다. 더 잘해야지 뭘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도 없었다. 사람도 좋았고 작품도 그냥 했던 것 같다"고 한층 부담감을 내려놓은 모습이었다.

류덕환도 군 제대 후 30대 초입에 들어섰다. 그에게 30대란 조금 다른 의미다. 그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단순하게 늙는다는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스트레스였는데, 지금 보니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뭔가 바뀌는 게 아니더라. 변화하는 걸 두고 보고 싶다. 지금 내 나이에 맞는 역할을 잘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류덕환에게 배우란 현재 그의 삶 그 자체였다. 최근 지인들과 술자리에서 '다음 생에도 배우를 할까'에 대해 토론한 적 있었다는 그는 "다음 생에도 진짜 또 배우를 할 수 있을까. 하면 재밌을 것 같은데, 힘들 거 생각하면 하기 싫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할 것 같기도 하다"면서도 "결국 그냥 지금 연기를 하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다음 생 생각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대신 이미 선택한 거 많은 분들의 기대에 저버리지 않게 열심히 하자는 생각만 했다"고 덧붙였다.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는 다시금 밝아진 류덕환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기억되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류덕환이 어쩌고 했다는 것보다는 '미스 함무라비' 속 정보왕으로 기억에 남고 싶다. 내가 잊혀지고 캐릭터가 됐을 때, 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전달이 됐고, 잘 각인을 시켰구나 라는 마음이 든다"며 "계속해서 좋은 작품을 하게 되면 이름도 알려지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내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연기를 하는 게 좋은 것 같다"고 답했다.

"한 식당에서 옆자리 분들이 제가 했던 드라마 '신의 퀴즈'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근데 옆자리 있는 나는 못 알아봤어요. 그때 제일 기분 좋았어요. 누가 보면 굴욕적이라고 할 테지만 저는 진짜 기분이 좋았거든요. 이 모습으로 있는 나는 몰라도. '신의 퀴즈' 한진우 역은 기억하고 있는 거잖아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티브이데일리 노한솔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신정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