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수영 기자] '미쓰백'은 아동학대 피해자인 두 인물의 삶과 이들이 다져가는 연대를 그리며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처절하게 울부짖는 강렬한 한지민의 연기 변신에 힘입어 한층 날렵해지고 또 묵직해진다.

11일 개봉한 '미쓰백'(감독 이지원·제작 영화사 배)은 성폭행의 위기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다 전과자가 된 백상아(한지민)가 세상에 내몰린 자신과 닮은 아이 지은(김시아)을 만나게 되고,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참혹한 세상과 맞서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추운 겨울,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온 백상아는 어둠 속에서 홑겹 옷을 입은 채 홀로 서 있는 지은을 발견하고 단번에 그에게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낀다. 친모 정명숙(장영남)으로부터 학대를 당하고 급기야 버림까지 받은 과거를 지닌 백상아는 지은의 몸에 남겨진 상흔들을 발견하고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이처럼 영화는 첫 만남부터 백상아와 지은의 감정적 교류에 초점을 맞추며 둘 사이에 진득한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만남을 반복하며 켜켜이 쌓이는 연대는 백상아가 지은의 아픔을 외면하지 못해 혼란을 겪고, 이내 그를 끌어안기로 결심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이를 토대로 '미쓰백'은 '아동학대의 잔혹한 현실을 외면하지 말자'는 뚜렷한 목표 의식을 백상아라는 인물에 투영해 처음부터 끝까지 올곧게 내달린다. 자신의 이름도 거부한 채 '미쓰백'으로 살아가는 백상아의 피폐해진 내면을 시작으로 그가 지은을 지켜내며 처절하게 그 부모를 응징하기까지가 러닝타임 98분을 채운다.

'미쓰백'의 표현 방식은 지극히 사실적이고 적나라하다. 지은은 게임 중독에 시달리는 아빠 일곤(백수장)과 계모 주미경(권소현)으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온몸에 물을 뒤집어 쓴 채로 화장실이나 베란다로 쫓겨난다. 그는 급기야 목 졸림까지 당한다. 마주보기 힘든 상황들이 수차례 여과 없이 전해지며 관객들로 하여금 강한 분노와 울분을 일으킨다. 영화는 지독한 현실을 수면 위로 들춰내고자 하는 목적의식을 충실히 반영해낸다.

이에 무관심한 사회의 이면을 조명하는 것 역시 잊지 않는다. 극중 경찰은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지은을 부모에게 다시 돌려보낸다. 급기야는 지은을 도우려는 백상아에게 전과가 있다는 이유로 편견에 갇혀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처럼 '미쓰백'은 숨 막히는 현실을 날 것 그대로 묘사하며 관객들에 강도 높은 자극을 가한다.

반면 백상아와 지은의 감정적 연대는 설명이나 대사를 최소화해 분위기 자체를 강조하는 방식을 취한다. 한 마디의 대사 없이 지은을 품에 안고 오열하는 백상아와 손을 꽉 잡은 채 지그시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을 통해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이 이미지화된다. 이는 구체적으로 민낯을 드러낸 현실과는 상반돼 더 큰 여운을 남긴다.

영화에서 백상아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지은을 발견하고 구원해내는 행동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성찰하게 만든다. 또한 악을 응징하면서 시종일관 어두운 톤을 유지하던 영화를 희망적인 분위기로 전환하기도 한다. 앞서 이지원 감독은 비슷한 소재의 작품들과의 차별점으로 백상아라는 인물을 꼽은 바 있다. 이 감독은 인물이 지닌 실천력과 응징을 통해 발현되는 카타르시스를 강조했다. 실제로 백상아는 주체적으로 세상에 정면 돌파하는 인물이다. 처음에는 감정에 이끌려 지은을 구하기로 결심하지만 나중에는 분명한 자신만의 사고와 의지로 거침없이 그를 지켜내는 '미쓰백'의 핵심이다.

이를 소화하는 한지민의 연기는 독보적이다. 그는 수시로 욕설을 내뱉고, 답답한 상황에 직면할 때면 짧은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긴다. 새빨갛게 칠한 입술에는 항상 담배가 물려 있고, 소주잔 역시 그의 손을 떠나지 않는다. 그간 보여온 이미지와는 확연히 다른 거칠고 센 캐릭터임에도 한지민은 위화감 없이 강인한 '미쓰백'을 완성시켰다. 그는 표현에 서툴지만 따뜻한 백상아의 성격을 행동 말투 눈빛 등에 섬세하게 입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유일한 캐릭터를 만들었다.

감정 연기 또한 놀랍다. 한지민은 백상아가 겪는 아픔 후회 연민 등 복잡한 감정을 능숙하게 표현해낸다. 모든 것을 내걸고 자신을 선택한 지은을 품에 안고 흐느끼는 모습부터 주미경과 몸싸움을 벌이며 울분을 폭발시키는 모습까지 매 장면이 압도적이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존재감은 로맨스물에 익숙한 한지민이라는 고정관념을 단숨에 상쇄, 그가 조금도 의심할 여지없이 '미쓰백' 그 자체임을 증명한다.

다만 영화는 후반부에 백상아와 친모 정명숙의 드라마에 감동 코드를 삽입해 다소 아쉬움을 자아낸다. 이는 자칫 정명숙이 백상아를 학대한 사실을 미화하는 것으로 비칠 위험이 있다. 과거의 상처를 안고 치열하게 지은을 지킨 백상아에게 말미에 이르러 이 같은 드라마를 부여한 점에는 약간의 의아함이 남는다.

그럼에도 '미쓰백'은 아동학대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우고자 하는 목표를 결코 희석시키지 않고 마지막까지 끌고 가 종국에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현시대에 만연한 무관심과 무책임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인식의 변화를 몰고 올 좋은 영화의 탄생이다.

[티브이데일리 김수영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영화 '미쓰백' 포스터,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