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수영 기자] '뷰티풀 데이즈'는 처절하고 고단한 탈북 여성의 인생을 줄곧 심도 있게 펼쳐낸다. 잔인하고 애처로운 생존의 연속, 끝날 것 같지 않은 지독한 비극이지만 이를 묵묵하게 버텨온 삶의 끝에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한 줄기 희망이 자리한다. 역설적이기에 더욱 아프고, 간절히 바라게 되는 누군가의 '뷰티풀 데이즈'다.

'뷰티풀 데이즈'는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작으로 조선족 가족을 버리고 한국으로 도망간 탈북민 엄마(이나영)와 그런 엄마를 미워하던 아들 젠첸(장동윤)이 14년 만에 재회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젠첸이 엄마의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과거와 마주하며 그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담긴다.

영화는 젠첸이 죽음을 앞둔 조선족 아빠(오광록)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한국으로 엄마를 직접 찾으러 가면서 시작된다. 젠첸은 단번에 엄마를 알아보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그의 모습에 실망한다. 엄마는 술집에서 일을 하고, 다른 남자와 살림까지 차린 상태다. 그리워했던 엄마였음에도 젠첸은 복잡한 마음에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채 계속 엇나가기만 하다 중국으로 돌아간다. 재회는 다소 허망한 듯 끝이 나지만 본격적인 영화의 시작은 엄마가 젠첸의 짐에 몰래 넣어둔 일기장이 펼쳐지면서부터다.

'뷰티풀 데이즈'는 관객들이 일기장을 보는 젠첸의 시선에 맞춰 지나간 엄마의 일생을 마주하도록 만든다. 엄마의 아픔과 비밀은 2003년과 1997년, 그리고 현재까지 시간을 넘나들며 다각도로 풀어진다. 자칫 산만해질 수 있는 구성적 변주에도 영화는 젠첸이 과거를 하나씩 들여다본다는 설정을 중심에 두고 이를 자연스러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한다. 젠첸과 동시에 사건을 접하게 된 관객들은 그와 감정의 결을 함께 하며 엄마의 삶에 깊게 공감하게 된다.

드러난 엄마의 일생은 매매혼, 가정해체, 마약 밀매, 살인 등 온갖 비극적 요소로 점철돼 있다. 그러나 '뷰티풀 데이즈'는 자극적인 소재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보다는 인물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집중해 여운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취한다. 클로즈업 장면을 수차례 등장시켜 인물들의 복잡한 내면을 사실적으로 드러내고, 드라마틱한 음악과 원색의 조명으로 처절하고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더욱 세밀하게 잡아낸다.

'뷰티풀 데이즈'를 통해 6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이나영은 이러한 연출적 의도를 가장 충실히 담아낸다. 이나영은 표정 변화가 거의 없고, 대사도 많지 않은 캐릭터의 깊은 감정을 특유의 짙은 눈빛과 분위기로 대변한다. 비언어적 요소로 진한 정서를 표현하는데 주력한 그의 의도는 오프닝에서부터 제대로 적중한다.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에서 슬로 모션으로 잡힌 이나영의 표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도 관객들로 하여금 엄마가 지닌 사연의 깊이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또한 그는 무심한 듯하면서도 가슴 깊숙이 자리 잡은 모성애까지 완벽하게 표현해낸다.

영화 속 엄마의 삶은 '뷰티풀 데이즈'라는 제목과 상반되게 전혀 아름답지 않아 더욱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다. 104분의 러닝타임 내내 제대로 된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 그는 수많은 탈북민의 고단한 삶을 대표하는 여성인 '엄마'일 뿐이다. 이처럼 영화는 엄마에게 이름도 부여하지 않으며 누구보다 처절하지만 누구에게도 관심 받지 못하는 처연한 실상을 묵묵하게 그린다.

그러나 '뷰티풀 데이즈'는 단순히 아픔을 조명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종국에는 고통을 감싸 안는 따뜻한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엄마를 이해하는 젠첸을 통해 탈북민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고, 인간애에 기반한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통해 또 다른 시작의 서막을 알린다. 이처럼 영화는 비극에 지지 않고 강인하게 버텨 온 엄마의 삶에 빛을 드리우며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희망의 메시지를 확고히 한다.

마지막까지 엄마와 가족들의 미래가 명확하게 그려지지는 않지만 답답한 느낌은 없다. 그저 어디선가 펼쳐지고 있을 이들의 '뷰티풀 데이즈'에 조용히 응원을 보내게 된다. 이런 긍정의 메시지야말로 '뷰티풀 데이즈'가 진정으로 남기고자 한 여운이자 역설의 힘이 아닐까. 오는 11월 개봉.

[티브이데일리 김수영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영화 '뷰티풀 데이즈'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