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수영 기자] 시종일관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김인권의 눈빛이 변하는 순간이 있다. 바로 연기와 배우로서의 자신, 그 둘의 관계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때다. 소탈하게 웃다가도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보여주고 싶은 게 너무 많다고 말하는 김인권은 참으로 건강한 연기 욕심을 지닌 배우였다.

'배반의 장미'는 슬픈 인생사를 뒤로하고 떠날 결심을 했지만 아직 하고픈 것도, 미련도 많은 세 남자와 한 여자의 아주 특별한 하루를 그린 코미디 영화다. 가족과 회사를 위해 하얗게 불태운 인생에 지친 가장 병남(김인권)이 동반자살 카페를 통해 시나리오 작가 심선(정상훈)과 사수생 두석(김성철)을 지방의 한 모텔로 불러 모으고, 여기에 미지(손담비)가 가세하며 펼쳐지는 아이러니하고 미묘한 심리 변화를 그린다.

김인권의 필모그래피는 빼곡하고 또 다양하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광해, 왕이 된 남자'(감독 추창민·제작 리얼라이즈픽쳐스)와 '해운대'(감독 윤제균·제작 JK필름)는 물론 수많은 저예산 영화들까지 주, 조연을 막론하고 열심히 달려온 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올해만 해도 영화 '물괴'(감독 허종호·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에 이어 '배반의 장미'로 쉴 틈 없이 내달리는 김인권은 "요즘 카메라 앞에 서고 싶은 마음이 크다. 시간이 되면 다 하려고 한다"면서 "배우로서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예산이 큰 영화에서는 조연으로 인상 깊은 활약을 할 수 있다면 저예산 작품에서는 하고 싶은 코미디를 마음껏 할 수가 있다"며 밝게 웃었다.

실로 '배반의 장미'는 김인권이 큰 애정을 지니고 있는 코미디 장르다. 그러나 김인권은 동일한 장르 안에서 늘 똑같은 웃음을 주는 것은 지양하고자 했단다. 그는 "이번 영화는 연극적인 요소가 가미된 코미디다. 한 공간 내에서 다양한 사건들이 벌어지는데 이 또한 나만의 도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코미디를 주로 하면 식상해질까 걱정이 된다"는 김인권은 "그 안에서 다양한 변주를 시도했다. 이번에는 나이대를 높이고, 평소에 쓰지 않는 말투도 썼다. 그래서 연극적인 말투가 되기도 했지만 이 또한 코미디니까 허용치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외형적인 것도 장발을 선택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신선함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김인권에게 '배반의 장미'는 확실히 독특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캐릭터보다는 새로운 만듦새가 마음에 들었다. 한 공간 내에서 하룻밤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디테일한 연기를 할 수가 있다. 작은 감정으로 미묘한 연기를 한다는 게 매력적이라 도전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작을수록 크다'는 말이 있다. 배우 역시 작게 할수록 커 보일 때가 있다"면서 "이번 영화를 통해 작게 이야기하는데 크게 전달되는 연기를 하고 싶었다"고 생각을 밝혔다.


영화는 연극 '사랑은 죽음보다 어렵다'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극적인 요소들을 영화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터. 이에 대해 김인권은 "영화에 의아스러운 부분들이 많다. 황당한 상황이기도 하고, 남자들이 과하게 성적 욕망을 드러내기도 한다"고 고백했다. 이를 두려움보다는 도전정신으로 격파해나간 그다. 김인권은 "객기일 수도 있지만 연극적인 캐릭터를 맛깔나게 살려보자는 생각이 있었다"면서 "결과적으로 혼란스럽고 황당한 코미디들이 따뜻하게 마무리돼서 좋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모텔이라는 한정된 공간은 연기를 하기에 분명 큰 장애물이 될 법도 했지만 김인권은 이 또한 즐겼다. "오히려 공간의 제약이 매력이었다"는 그는 "퍼즐을 풀 때의 쾌감 같은 게 있었다. 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매 장면이 다채로워야 했고, 그 안에서 캐릭터도 성장하고 있어야 했다"고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김인권은 "공간의 제약은 방 탈출 같은 느낌이었다. 계속되는 미션이면서 동시에 나한테는 하나의 동기가 됐다. 덕분에 캐릭터에 더 깊게 들어갈 수 있었다"며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런 김인권에게도 숙제는 있었다. 죽음을 결심하는 인물의 짙은 드라마와 미모의 여인에게 끌려 결심이 흔들리는 코미디의 간극을 잘 조절해야 했던 것. 김인권은 "사실 이걸 잘 넘나들어야 코미디 연기라 할 수 있다"면서 "경중을 맞추기가 힘들었다. 차이를 벌린다고 벌렸는데 지금 보니까 더 벌려도 됐겠더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코미디라는 게 하면 할수록 더 과감하게 시도하게 된다. 그러나 캐릭터가 지닌 슬픔, 딸과의 관계, 죽음을 앞둔 남자의 벼랑 끝 우울감 등 삶에 대한 주제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자살을 하려는 대표적인 인물인데 그 캐릭터를 희화화해버리면 생명에 대한 조롱이 되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비현실적인 코미디에 많이 접근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다"고 조심스레 털어놨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늘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웃음을 전하는 김인권은 겸손했고, 그가 내민 청사진은 진실했다. 김인권은 "관객분들이 내 코미디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 있다는 건 그간 좋은 작품을 만났기 때문인 것 같다. 그 기대가 너무 소중해서 늘 부응해야겠다는 마음이 있다"면서 "부담감이 있기는 하지만 그만큼 관심도 많이 받고 싶다. 관심을 가지고 봐주셔야 나 또한 다양한 캐릭터로 계속 영화적인 재미를 드릴 수가 있다"고 소신을 밝혔다.

"요즘 천만 배우는 정말 많죠. 저는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저예산 계의 백만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저예산 작품으로의 백만은 또 의미가 다르잖아요. 아직 보여드릴 게 너무 많아요. 채찍질도 귀담아들으면서 꾸준히 시대에 맞는 연기를 해나가려고요."

[티브이데일리 김수영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안성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