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수영 기자] 밝은 에너지와 호탕한 웃음. 삶 자체가 즐거움으로 가득 찬 정상훈은 그야말로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제대로 춤출 줄 아는 사람이었다.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은 진정 그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자신의 웃음이 결코 가공되지 않은 것임을 스스로 증명해낸 배우 정상훈이다.

'배반의 장미'는 슬픈 인생사를 뒤로하고 떠날 결심을 했지만 아직 하고픈 것도, 미련도 많은 세 남자와 한 여자의 아주 특별한 하루를 그린 코미디 영화다. 동반 자살을 위해 한 지방의 모텔에 모인 고달픈 가장 병남(김인권)과 시나리오 작가 심선(정상훈), 사수생 두석(김성철)이 미지(손담비)를 만나게 되면서 펼쳐지는 아이러니하고 미묘한 심리 변화가 담긴다.

드라마와 영화는 물론 뮤지컬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특유의 유쾌함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정상훈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코미디 장르인 '배반의 장미'를 선택했다. 이에 대해 정상훈은 "2008년도에 비슷한 소재를 다루는 '기발한 자살 여행'이라는 공연을 했다. 과거의 경험을 녹이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이런 소재가 자칫 무거워지거나 신파가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있기 마련인데 이번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신선하고 좋았다"고 밝혔다.

웃음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지닌 작품이었기에 정상훈은 그에 걸맞은 호소력 있는 캐릭터를 위해 다방면으로 고민했다. 장고 끝에 그는 독특한 목소리 톤과 자신이 지닌 특유의 능청스러움을 캐릭터에 한가득 입혔다. 정상훈은 "이게 과연 설득이 될까 걱정이었다.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분명하게 가는 게 맞는 것 같았다"면서 "목소리 톤도 마치 아는 척을 하는 것처럼 표현했다. 아는 척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 목소리에 기교를 부리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것들에서 착안해 하나씩 정립해나갔다"고 설명했다.

특히 정상훈은 애드리브에 신경을 썼단다. "이건 배우로서의 욕심이다"고 밝게 웃으며 말문을 연 그는 "대본 리딩을 하면서 아이디어를 받는다. 그럴 때 나는 아이디어를 털어내는 성격이다. 그리고 현장 가서 촬영을 할 때도 새로운 걸 제안한다. 실제로 말한 것들이 하나의 장면이 되기도 했다"며 뿌듯해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개인적으로 많이 떨었다. 코미디라는 장르가 설득인 거 아니냐. 코미디가 들어갔는데 안 웃으면 끝장인 거다"고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처럼 정상훈이 코미디 연기에 각별한 책임감과 애정을 가지게 된 데에는 케이블TV tvN 예능프로그램 'SNL 코리아'의 영향이 컸다. 긴 무명의 시간을 끝내준 'SNL 코리아'는 정상훈에게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기도 했다. 정상훈은 "거긴 정말 학교였다. 매일 약 30명의 스태프, 작가, 배우들이 모여 브레인 스토밍을 했다. 덕분에 많은 것을 얻어 갔다"고 말했다. 그는 "야외 촬영을 한 번 할 때마다 그걸 단편 영화라고 생각할 정도로 애정을 쏟았다. 대한민국 최고의 웃음 사냥꾼들이 모인 곳이었다.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면서 "'SNL 코리아'는 날 만들어 준 프로그램이자 내가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게 해 준 발판이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렇게 정상훈이 'SNL 코리아'와 함께 한 시간은 4년. 오랜 시간 코미디 연기를 선보이다 보니 그를 코미디언으로 기억하는 이들도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정상훈은 이를 거부하지 않았고, 부정할 생각도 없었다. 정상훈은 "그건 내가 설득할 문제가 아니다. 나를 먹고 살 수 있게 해준 게 코미디였다. 훌륭한 직함을 왜 버리냐"며 그저 감사함을 드러냈다.

코미디에 매진하고 있는 정상훈의 태도에는 진정성이 넘쳤다. 그는 "코미디에서 가장 위험한 부분이 진실되지 않으면 설득하지 못한다는 거다"며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할 때 웃음이 터진다. 물론 만들어지는 웃음도 있지만 나는 대부분 진실됨을 연기의 기반으로 둔다"고 소신을 밝혔다. 이어 "'너 아니면 안 되겠더라' '잘 살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뿌듯하다. 그러나 반대로 미흡한 점은 모두가 똑같이 미흡하다 생각할 거다"고 말했다.

길었던 무명의 시간도 꿈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는 정상훈은 "힘이 닿는다면 가능한 많은 작품을 통해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다. 예전에 공연에서 멀티맨을 많이 했다. 짧은 시간 안에 수 십 번씩 호흡이 바뀌곤 했는데 그렇게 캐릭터 연구를 계속해서인지 많은 걸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고백했다. 그는 무대에 대한 갈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상훈은 "무대는 엄청난 곳이다. 혼자 다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그에 따르는 공부를 하는 곳이다. 또 관객들이 동화됐다고 느껴질 때 오는 특유의 짜릿함이 있다. 커튼콜 때 듣는 칭찬의 박수 소리는 잊을 수 없는 정말 좋은 맛이다"며 감격했다.


정상훈은 정말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가 품은 꿈 역시 지나온 나날들처럼 다부졌다. 정상훈은 "내가 가는 코미디의 길, 희극의 장르를 많은 분들이 알아줬으면 한다. 주성치, 윌 페렐, 잭 블랙 같은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연기가 있지 않냐. 나도 그런 걸 만들어보고 싶다"며 유쾌한 바람을 드러냈다.

"인간 정상훈의 목표는 굉장히 커요. 주위에 친한 배우들한테 창피하지 않은 배우가 되는 거거든요. 이 생각은 끝까지 계속 갈 거예요. 옛날을 잊어버린 채 허투루 하면서 마치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꼰대가 되지 말자는 마음이에요."

[티브이데일리 김수영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태원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