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수영 기자] 차갑고 도도한 첫인상. 쉽게 다가가기 어려울 것 같은 이미지의 손담비는 예상을 제대로 뒤엎는 사람이었다. 그는 털털하고 유쾌한 매력으로 시종일관 밝은 기운을 전했고, 입가에 맴도는 미소에서는 경쾌함이 느껴졌다. 배우로서의 삶 안에서 자신만의 분명한 행복을 찾은 손담비다.

'배반의 장미'(감독 박진영·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는 슬픈 인생사를 뒤로하고 떠날 결심을 했지만 아직 하고픈 것도, 미련도 많은 세 남자와 한 여자의 아주 특별한 하루를 그린 코미디 영화다. 동반 자살을 위해 한 지방의 모텔에 모인 고달픈 가장 병남(김인권)과 시나리오 작가 심선(정상훈), 사수생 두석(김성철)이 미지(손담비)를 만나게 되면서 겪는 아이러니하고 미묘한 심리 변화를 담는다.

그간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강인하고 당찬 모습을 주로 보여 온 손담비는 첫 스크린 주연작으로 코미디 작품인 '배반의 장미'를 택했다. 처음 맡는 타이틀롤에 낯선 코미디 장르까지 여러 가지로 부담스러울 법도 했지만 손담비는 시나리오의 매력에 이끌려 단번에 출연을 결심했다. 그는 "회사에서도 내가 코미디 장르를 선뜻 할 줄은 몰랐다더라"면서 "시나리오를 읽은 날 바로 출연을 결심했다. 대본이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에 그 안의 섹시함도 충분히 이해가 됐고, 또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 주에 바로 미팅을 하고 촬영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특히 손담비는 자신의 실제 모습과 닮아 있는 캐릭터에 마음을 빼앗겼단다. 그는 "드라마를 할 때는 털털한 역할만 해서 섹시한 걸 해본 적이 없다. 미지의 섹시하면서 동시에 당차고 솔직한 면에 많이 끌렸다. 털털하고 당당한 점이 내 성격과 흡사하기도 하다"고 털어놨다. 이어 "연기를 할 때 내 모습이 많이 나온 것 같다. 그래서 싱크로율도 더 높아졌다"며 맡은 역할에 강한 애정을 표했다.

자신과 닮은 캐릭터를 품에 안고 손담비는 웃음이라는 코미디 장르의 본질 또한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손담비는 "코미디는 처음이라 김인권 정상훈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곤 했다. 두 분 다 코믹을 많이 했기 때문에 엄청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상황에 맞춰 능수능란하게 치고 빠지는 걸 워낙 잘하셔서 질문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장에서 선배님들을 직접 보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나 역시 애드리브를 많이 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배반의 장미'는 연극 '사랑은 죽음보다 어렵다'를 원작으로 한다. 그렇기에 원작 연극을 스크린에 옮기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다. "대사량이 너무 많고, 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게 많았다"고 말문을 연 손담비는 "영화인데 한 공간에서 대사만 하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이 부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대중분들께 빈틈없는 재미를 드리기 위한 방법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연기하면서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바로 얘기해서 반영하기도 했고, 다른 배우들과 머리를 맞대고 비는 것 같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보완을 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손담비는 영화 속 남자들의 성적 욕망을 자극하는 섹시 이미지에 대해서도 솔직한 생각을 털어놨다. 손담비는 "페이크를 주기 위해 야한 표정을 짓는다던가 상상신에서 실루엣이 나오는 것 등은 전혀 부담이 되지 않았다"면서 "섹시한 동작이나 자세 등이 가수 활동을 했을 때와 비슷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게 부담스럽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을 내려놓고 연기를 즐기자는 생각이 강했다"고 고백했다.

손담비는 배우 활동을 하면서 앞서 가수로 굳힌 섹시 콘셉트에서 탈피하고자 힘썼다. 그렇기에 연기를 통해 다시 섹시 이미지를 불러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손담비는 "처음에는 감독님들이 섹시한 이미지로만 생각을 하니까 그냥 싫었다. 다른 모습도 많은데 왜 섹시한 것만 들어오나 하는 개인적인 갈등도 있었다. 그래서 다른 것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기 위해 일부러 액션이 나오는 역할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하지만 데뷔한 지 13년 정도 됐으니 다시 한 번 새 이미지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섹시 코미디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이쯤 돼서 한 번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았다"며 밝게 웃었다.


'배반의 장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 견디기 힘든 큰 아픔과 고통을 지니고 있다. 이들의 상처를 하나씩 되돌아보던 중 손담비는 자신의 힘들었던 시절을 떠올리기도 했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가수 활동 당시를 꼽은 손담비는 "자는 시간이 거의 한 두 시간 밖에 없었다. 그렇게 8년을 하니까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모습에 좌절도 많이 하고, 우울감을 느끼기도 했다. 생각할 시간 없다 보니 내 것 또한 많이 없어진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터널을 지나온 지금. 그는 '행복'과 마주했다. 손담비는 "나 자신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다행히 연기자로 전향하면서 공백 기간을 잘 보냈다. 혼자 여행도 다니고, 생각할 시간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행복에 가까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행복지수가 많이 높은 수준이다. 정말 그냥 나이 먹는 건 없는 것 같다. 20대 때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30대 때 여유를 조금 찾으니 인생의 행복 순위를 정하게 되더라"고 털어놨다.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통해 그는 인간 손담비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파악할 수 있게 됐다. 가족과 친구를 통해 얻는 에너지, 슬픈 로맨스 혹은 음악 영화, 나만 아는 것 같은 언더신의 가수들까지. 이제야 비로소 손담비는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가치를 알게 됐다.

행복은 손담비를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이었다. 실로 그는 끊임없이, 그리고 즐겁게 도전을 꿈꿨다. "안전한 길로만 가고 싶지는 않아요. '미쳤어' 하면 손담비가 떠오르지만 배우로는 아직 떠오르는 게 없잖아요. 꾸준히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면 제 것을 찾을 수 있을 거란 모험심을 갖고 있어요."

[티브이데일리 김수영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송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