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우울증은 그에게 칼을 쥐여주지 않았다". 의사 남궁인 씨가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 담당의로서 사건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남궁인 씨는 19일 오후 개인 블로그에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에 대한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나는 강서구 PC방 피해자의 담당의였다"고 운을 뗀 그는 당초 사건에 대해 함구하려 했으나, 사건의 참상이 전국적으로 알려져 공분을 자아내며 입을 연다고 했다. 이어 그는 치료 과정에서 느낌 참담한 심정과 우울증으로 인한 심신미약이 거론되는 상황에 대한 소회를 상세하게 털어놨다.

남궁인 씨에 따르면 피해자는 병상이 모자랄 정도로 큰 키와 체격을 자랑하는 20대 청년이었다. 그러나 병원에 도착했을 당시 검은 티셔츠와 청바지가 피투성이었고, 더 이상 피 묻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특히 피해자의 목과 얼굴, 칼을 막은 손에 도합 32개의 자상이 있었다. 상처 하나하나가 신체 형태를 파괴할 정도로 깊었다. 남궁 씨는 경찰에게 들은 흉기의 길이를 가늠해볼 때,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칼을 끝까지 넣을 각오로 찔렀다고 봤다.

그는 "모든 칼이 뼈에 닿고서야 멈췄다"며 두피의 상처는 두개골에 닿고 금방 멈췄으나 얼굴과 목 쪽의 상처는 깊었고, 귀는 얇아 구멍이 다 길게 뚫려 허공이 보일 정도라고 했다. 그중 목덜미에 살이 많아 상처가 가장 깊어 비현실적으로 보였는데 치명상으로 추정된다고도 했다. 이밖에도 얼굴뼈에 평행으로 이어진 상처는 가해자가 빠른 시간에 칼을 뽑아 다시 찌른 흔적이었으며, 손에 있던 상처 중 하나는 손가락을 끊었고, 또 하나는 두 번째 손가락과 세 번째 손가락 사이로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남궁인 씨는 "어떤 일인지는 모르지만, 어쨌건 미친 XX라고 생각했다. 피를 막으면서 솔직히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극렬한 원한으로 인한 것이다. 가해자가 미친 것은 당연하지만, 그럼에도 평생을 둔 뿌리 깊은 원한 없이 이런 짓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무 살 청년이 도대체 누구에게 이런 원한을 진단 말인가. 그런 생각은 여기까지였다"며 "같이 온 경찰이 말다툼이 있어서 손님이 아르바이트생을 찌른 것이라고 알려 줬다. 둘은 이전에는 서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진짜 미친, 경악스럽고 혼란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순간 세상이 두려웠다. 모든 의료진이 그 사실을 듣자마자 욕설을 뱉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환자는 병원에 온 처음부터 의식이 없었고 손과 발을 무의식적으로 움직였다. 칼이 두개골을 뚫지 못했고 흉부와 복부의 주요 장기 손상은 없었던 만큼 그는 출혈만 막으면 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온 병원의 수액과 혈장 용액을 쏟아부은 지 20여 분 만에 첫 번째 심정지가 오며 생각이 달라졌다. 상처가 너무 많아 혈관이 어떻게 상했는지도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것. 결국 심폐소생술이 이어지고 사방이 피바다가 된 가운데 피해자는 사망했다.

참담한 죽음 가운데 남궁인 씨는 보도된 현장 사진을 보고 피해자는 이미 현장에서 온몸의 피를 다 쏟아냈음을 알았고, 의학적인 면에서 죽음을 납득했으나 깊은 무기력함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는 피해 현장의 CCTV 영상에 대해서도 "나는 그 이후를 직접 목격했다. 하지만 내가 직접 보지 못했던 그전의 장면이 왜 그렇게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잔인해 보였는지"라며 깊은 공포감을 표했다. 특히 그는 이후 피해자를 떠올리며 문득 괴로웠고, 국민적 공분을 이해하면서도 참담함과 죄책감, 두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무엇보다 남궁인 씨는 오랜 기간 우울증 약을 복용했다는 가해자에 대해 "그가 우울증에 걸렸던 것은 그의 책임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우울증은 그에게 칼을 쥐여주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는 "되려 심신 미약에 대한 논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울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을 잠재적 살인마로 만드는 꼴"이라며 "오히려 나는, 일요일 아침 안면 없던 PC방 아르바이트 생의 얼굴을 서른 두 번 찌를 수 있던 사람의 정신과적 병력이 전혀 없다고 한다면 더 놀랄 것이다. 그것은 분노스러울 정도로 별개의 일"이라고 했다. 그는 거듭 "우울증은 그에게 칼을 쥐어주지 않았다"며 "그것은 그 개인의 손이 집어 든 것이다. 오히려 이 사건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심신미약자의 처벌 강화를 촉구하는 것이라는 게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그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이어지는 사건 이후 상황에 대한 회의감과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절망감을 호소했다. 끝으로 남궁 씨는 고인의 명복을 빌고 슬픔을 토로한 뒤 "다만 나는 억측으로 돌아다니는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언급함으로써 이 사건의 엄중한 처벌과 진상 조사가 이루어지고, 사회적으로 재발이 방지되기를 누구보다도 강력히 바란다. 그래서 이 언급이 다시금 그 불씨나 도화선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보고도 믿기 힘들었던 비인간적인 범죄 그 자체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이런 짓을 진짜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글에서 무기력함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이 사건에 대한 무기력함의 지분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앞서 강서경찰서는 14일 오전 강서구 내발산동의 한 PC방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피해자가 손님으로 방문했던 가해자에게 흉기로 수차례 찔려 숨졌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가해자는 "PC방 테이블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피해자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PC방을 나섰다. 이후 흉기를 갖고 돌아와 피해자에게 수차례 흉기를 찔렀고, 피해자는 119 구급대원에 의해 병원에 이송됐으나 결국 숨졌다. 조사 결과 가해자는 평소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심신 미약으로 인한 감형 의혹이 제기되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감형 방지와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청원글이 게시됐다. 또한 배우 오창석과 그룹 SG워너비 멤버 김용준 등은 피해자가 지인의 사촌형제임을 언급하며 청원을 호소했고, 래퍼 산이 등도 사건의 참담함을 강조하며 청원 동참을 호소했다. 여기에 국민적 공분에 힘입어 해당 청원은 게시 24시간이 채 안 돼 기준 인원 20만 명을 돌파했다.

그런가 하면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우울증으로는 쉽게 감형이 되지 않는다", "시민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정신질환이 있다고 자동적으로 심신 미약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염려하시는 것만큼 그렇게 걱정스러운 결과가 초래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KBS2 제공, JTBC 방송화면·CBS 보는 라디오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