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출연작 506편. 함께 호흡한 여배우 118명.

한국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원조 청춘 스타, 배우 신성일이 4일 새벽 타계했다. 폐암과 싸우던 그는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현재 아내 엄앵란을 비롯해 자녀들이 슬픔 속에서 조문객들을 맞이하는 중이다.

그 누구 보다 영화에 뜨거운 열정을 지녔던 고(故) 신성일은 6-70년대 은막을 주름 잡은 명실상부 최고의 인기 배우였다. 당대 보기 힘들었던 뚜렷한 이목구비와 훤칠한 키, 강렬한 눈빛은 단숨에 그를 멜로, 청춘 스타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아내 엄앵란부터 장미희, 문희, 김자옥까지 내로라하는 여배우 대부분이 그와 멜로 호흡을 맞췄다.

고인의 인기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타 배우들과 출연료가 차이게 무려 7배에 달했다. 당대 인기 남자 주인공들의 출연료는 1만원에서 2만원 사이. 고인은 홀로 4~50만원대의 몸값을 자랑했다. 하루에 여러 편의 영화를 촬영할 정도로 바빴지만, 수 많은 제작사와 감독들이 그와 손을 잡으려 촬영을 미루고 대기했을 정도다.




고인의 뜨거웠던 영혼은 영화에 오롯이 담겨있다. 그를 스타로 만들어 준 '맨발의 청춘'(1964)은 현재도 회자될 정도로 유명한 작품으로 1970년대 멜로 영화의 전성기를 여는 신호탄이 됐다. 변변치 못한 건달 청년(고 신성일)과 부자집 여인(엄앵란)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맨발의 청춘'은 서울에서만 36만명의 관객을 기록했다. 상영관을 한 곳에서 시작했고, 당시 서울 인구는 350만명에 그쳤으니 놀라운 기록이다. 이 작품으로 故 신성일과 엄앵란은 모두가 주목하는 스타로 급부상했다. 당대 2,30대 관객들 사이에 신드롬을 일으키며 '멜로'의 심벌이 된다.

영화 속 사랑은 실화가 됐다. 영화 보다 더욱 영화같은 러브 스토리다. '맨발의 청춘'이 대성공을 거둔 후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하며 결혼을 약속했다. 식은 말 그대로 '세기의 결혼식'이었다. 1964년 11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이들의 결혼식은 초대장이 암거래 될 정도로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식장 밖에는 3천 여명의 팬들이 몰렸다.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고 신성일은 2011년 발간한 자서전을 통해 여러 명의 애인의 있었다고 밝히며, 결혼 생활의 절반 이상이 별거였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엄앵란이 유방암으로 투병 중일 때는 누구 보다 헌신적인 남편이었다. 아내의 뒷바라지를 손수 맡았다. 엄앵란 역시 남편이 폐암 3기 선고를 받자 헌신적으로 그를 돌봤다.

두 사람의 전성기는 결혼 후에도 이어진다. 다양한 작품에 함께 출연하며 커리어를 쌓았다. 특히 고 신성일은 청춘 스타, 멜로 스타 이미지에 한정되길 거부하며 사극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례적인 작품 수와 다작의 힘은 고인의 남다른 연기 열정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1967년 상영된 영화 '안개'는 한국영화의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신상옥 감독과 함께 한 사극 '내시'(1968)에서는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이후 '별들의 고향'(1974)으로 또 한번 멜로 강자임을 증명했으며, 임권택 감독과 호흡한 '길소뜸'(1985)에서는 한 층 깊어진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고 신성일은 노년인 된 후에도 '야관문 :욕망의 꽃'에 출연하는 등 끝까지 영화인으로 남기 위해 노력했다. 병마와 싸우는 중에도 배우로 남고 싶어했던 그다. 지난해 열린 부산국제영화제가 고인의 마지막 공식석상이다. 영화배우협회 간부이기도 한 고인은 죽음 직전까지 후배들의 복지를 걱정했다고 한다.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발을 들이고, 논란의 자서전을 발간하는 등 생전 고인의 삶은 한 편의 영화를 보여주듯 화려하고 파란만장했다. 그러나 그가 가장 원하는 타이틀은 '배우'였다.

"난 '딴따라'가 아닙니다. 종합예술의 한가운데 있는 영화인입니다."

고인이 생전 남긴 말이다. 한 치의 휴식도 없이 질주하며 치열한 삶을 살다간 고 신성일. 그의 연기 열정에 박수를 보내며 평온히 영면에 들길 바란다.

[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news@tvdaily.co.kr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영화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