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신상민 기자] 가히 국가적 재난이었던 1997년 IMF 위기, 21년이나 지난 일이기에 10대, 20대에게는 딴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법하다. 하지만 30대 이상이라면 당시의 암울했던 시대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감독 최국희 제작 영화사 집)은 그때 그 시절, 많은 국민이 절망했던 일을 2018년 현재에 꺼낸 영화다. 최국희 감독은 IMF 위기를 마치 재난 영화처럼 그려냈다. 재난 영화를 보면 흔히 재난이 도래하기에 앞서 이를 감지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재난을 예지한 이들은 위기를 관료들에게 알리지만 이미 코 앞까지 다가온 재난에 속수무책이다.

분명 재난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국가부도의 날’의 외환 위기는 재난이 몰려 오듯 1997년 한국을 덮친다. 그 속에서 한시현(김혜수)이라는 인물이 이를 감지하고 정부 관계자들에게 경고를 하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국가부도의 날’은 한시현, 윤정학(유아인), 갑수(허준호) 세 인물을 통해 그 시대를 살아가던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영화는 한시현을 통해 IMF 위기가 어떻게 한국 사회를 집어 삼켰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윤정학을 통해서는 위기를 이용해 배를 불렸던 이들의 모습을, 갑수를 통해서 대다수가 겪어왔던 고통과 좌절을 보여준다.

세 이야기 축이 서로 맞물려 1997년 한국의 상황을 스크린에 풀어 놓다 보니 자칫 각 캐릭터의 흐름을 깰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캐릭터에서 다른 캐릭터로 넘어가는 장면 전환을 마치 인과 관계를 설명하듯 편집을 했다. 덕분에 각자의 이야기가 흘러가면서도 영화 전체의 흐름이 깨지지 않는다.

다만 ‘국가부도의 날’이 IMF 위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아쉽다. ‘그래서 1997년 대한민국은 IMF 위기를 겪어야 했는가’에 대한 명쾌한 답을 영화가 제시하지 않는다. 단지 한시현과 재정국 차관(조우진)의 대립을 통해 무능했던 당시의 관료들의 모습을 통한 답답함, 갑수의 좌절과 오열을 통한 짠한 감정만을 전할 뿐이다.

특히 영화 말미에 각자 흘러 가던 두 이야기 축의 접점이 생기는 지점이 이야기의 몰입을 깨트린다. 이전까지 아무런 복선도 없이 갑작스럽게 두 캐릭터의 연결 지점이 ‘서프라이즈’처럼 등장한다. 이후 등장하는 오열 장면이 등장해 마치 신파를 강요하기 위해 억지로 삽입한 장치처럼 느껴지게 한다. 당시의 아픔이 특정한 몇몇이 아닌 내 가족이 겪은 상처를 보여주려는 의미라 할지라도 설득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를 제쳐 놓더라도 배우들의 열연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영화다. 조우진은 관객의 분노 지수를 높일 만큼 재정국 차관의 모습에 완벽히 녹아 들었다. 김혜수와 주고 받는 호흡 역시 팽팽한 긴장감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여기에 서민을 대표하는 갑수를 연기한 허준호는 눈빛, 얼굴 표정만으로도 당시를 힘겹게 버텨온 많은 이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배우들의 열연으로 다시 꺼내든 1997년 아픔이 2018년을 살아가는 관객들의 마음을 지그시 짓누른다. 당시의 울분에 떠올라 영화를 보다가 욕지거리가 튀어나올 만큼.

영화는 28일 개봉한다.

[티브이데일리 신상민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 출처 =영화 ‘국가부도의 날’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