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2018년, SBS 드라마국은 대대적으로 장르물을 선보였다. 연초 논란의 화제작 '리턴'으로 시작해 최근 종영한 '미스마', '흉부외과'까지. 평일 미니시리즈와 주말극 등 전 시간대를 가리지 않았다. 한때 '장르물=웰메이드'라는 공식이 있던 만큼 기획력 있는 편성이어야 마땅하건만. 정작 올해 SBS의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특히 장르물 중 10% 시청률을 넘긴 것은 '리턴'이 유일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 '리턴', SBS 장르물 불안한 시작

'리턴'은 올해 SBS의 첫 수목드라마로 화려하게 포문을 열었다. 드라마는 34회(마지막 회)에서 시청률 16.7%(이하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1위로 인기리에 종영했다. 작품은 촉법소년에 대해 유독 허술한 사법제도를 비판하며 나름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의미한 성적과 내용에도 불구하고 '리턴'은 논란으로 더욱 주목받았다. 주인공 최자혜 역의 배우 고현정이 연출을 맡은 주동민 PD와 갈등을 빚은 것. 고현정이 주동민 PD를 때려 스태프들이 보이콧에 돌입했다는 의혹, 반대로 주동민 PD가 고현정에게 모욕적인 폭언을 퍼부었다는 의혹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결국 고현정은 중반부에 이르러 작품에서 하차했다. 제작진과 방송사, 고현정의 소속사 모두 뚜렷한 해명 없이 '주인공 교체'로 합의를 본 점만 명시했다.

같은 최자혜 역을 이어받은 배우 박진희는 임신 중에도 수중 촬영까지 감행하는 열연을 펼치며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인기가 높았던 만큼 '주인공 교체'의 파급력도 컸다. 인물은 동일한데 배우만 바뀐 상황. 드라마는 배우 변화에 따른 캐릭터의 변화를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 이에 '리턴'은 지금까지 올해 지상파 미니시리즈 최고 시청률이라는 괄목할 성적에도 불구하고 완성도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나아가 완성도보다 시청률을 우선하는 풍토를 자리잡게 했다.

◆ 법조·의학·수사, 장르물 버뮤다 삼각지대

이후 SBS는 전 시간대에 걸쳐 장르물을 선보였다. 월화극에선 '의문의 일승', 수목극에서는 '스위치', '친애하는 판사님께', '흉부외과', 주말극에서는 '시크릿 마더'와 '미스마'까지. '리턴'부터 가장 최근 작품인 '미스마'까지 7개의 작품이 장르물의 탈을 쓰고 세상에 나왔다. 평균적으로 드라마 한 편당 2개월에 걸쳐 방송되는 것을 감안하면 1년 12개월 중 장르물이 쉬지 않고 편성된 셈이다.

문제는 이 같은 장르물이 하나같이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는 것이다. 모두 '위기에 빠진 주인공이 역경을 딛고 권력을 가진 거대한 악에 맞선다'는 영웅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누명 쓴 사형수의 탈옥기와 복수를 그린 활극 '의문의 일승', 검사와 사기꾼이 스위치 되는 활극 '스위치', 부패한 사법부에 맞서 전과 5범이 현명한 판사 노릇을 하는 '친애하는 판사님께', 의료 기술을 돈 벌이로 악용하는 의사들에 저항하는 진짜 의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메디컬 드라마 '흉부외과', 딸 사망에 얽힌 진실을 파헤치는 엄마들의 복수극 '시크릿 마더'와 '미스마'. 모두 인물들의 성별, 나이, 직업 같은 부수적인 면에서만 차이를 뒀을 뿐 권선징악의 메시지와 복수극 형태의 틀을 따랐다.

더욱이 이 작품들 모두 변호사와 판·검사를 중심으로 한 사법 체계, 경찰과 공조하는 수사 등을 빼놓지 않았다. 매 작품마다 등장하는 법조계와 수사 현장이 마치 공식이라도 마련된 듯 했다. '흉부외과'가 의학 드라마로 비교적 다른 직업군을 보여주기는 했으나 결국 이야기의 큰 틀은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차별화엔 실패했다.

◆ 처참히 깨진 장르물 성공 공식

이처럼 비슷한 이야기가 답습되는 가운데 한때 신선하게 여겨졌던 장르물마저 결국은 뻔하다는 인상을 남기고 말았다. '장르물=웰메이드'라는 기대치도 희석됐다. 급기야 최근 방송되는 일부 드라마들에서는 "또 수사극?", "기승전-정치"라는 비판적인 댓글마저 왕왕 눈에 띄고 있다.

물론 SBS가 시작부터 이렇진 않았다. 과거 '싸인', '유령' 등 김은희 작가의 명작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장르물이 시청자의 마음을 훔쳤고 또 성공했다. 모두 철저하고 치밀한 극본을 중심으로 완성도에 깊이 신경 쓴 결과다. 그러나 올해의 SBS 장르물에서는 완성도에 대한 깊은 고민을 느낄 수 없었다. 성공한 작품을 따라하는 듯한 뉘앙스가 대부분의 작품을 지배했고, 그래도 된다는 안일함이 TV넘어 시청자에게도 전달됐다.

마치 어떤 작품을 내놔도 드라마 시간대에 일정 수준의 시청자는 존재한다는 믿음이라도 있는 것일까. 근거 없는 자신감 속에 고민 없는 방만한 작품들만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더 이상 시청자들은 '장르물'이라는 키워드 하나에 열광하지 않는다.

[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