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조혜진 기자] 비록 이빨이 빠지고 나이 많은 개들이 태반이지만, 남들 눈치 안 보고 마음 편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포천의 유기견 보호소가 배우 이용녀에겐 곧 유토피아다. 자신이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 위해 사람이 버린 개들과 함께한다는 이용녀는 가끔 제가 약속한 개들에 대한 책임이 벅찰 때도 있다. 자신이 버려진 모든 개에 손을 뻗을 수 없다는 것을 안 이용녀는 또 다른 유토피아를 꿈꾼다. 그가 꿈꾸는 이상의 세계는 거창하지 않다. 그저 세상의 모두가 나보다 약한 것을 모른 척 하지 않는 것이다.

운전도, 스케줄 정리도, 의상 준비도 혼자하고 있다는 이용녀의 하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더군다나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에서 그는 사설 유기견 보호소를 운영하며 100여 마리 유기견을 돌보고 있기도 하다. 전국동물보호활동가연대 회원들과 개식용 종식을 위한 카드 뉴스를 만들고, 국회로 나가 촛불 시위에 참석하기도 한다.

‘전국동물보호활동가연대’에 이름 석 자가 쓰인 명함을 내민 이용녀는 인터뷰를 위한 사진 촬영을 위해 옷을 빌려 입고 오려다가도 개들과 일상을 보내며 입는 일상복을 꺼내 입었다고 했다. 꼭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었고, 이 이야기가 조금 더 편하고 자연스럽게 닿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였다.

이용녀는 강렬한 캐릭터와 이를 살려내는 선 굵은 연기로 매 작품 독보적 존재감을 뿜어내왔다. 하지만 화면 밖을 벗어난 이용녀는 자신이 받은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돌려주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15년 간 약 1500마리의 유기견을 입양 보내 ‘유기견의 대모’로도 불리는 그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단 동물들을 위한 이야기에 집중했다.


“잘 살지는 못해도 굶을 걱정은 하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집안에 살았다는 이용녀의 집에는 단 하나 특별한 것이 있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아버지 덕에 열 마리 이상의 개들, 누군가 버린 토끼들, 화초닭을 길렀다는 것이다. 유독 많은 동물을 키우는 탓에 이용녀는 학교가 끝나면 시장에 들러 자투리 생선과 채소를 얻어 집에 가는 게 일상이었다.

자연스럽게 동물들과 자라난 그는 이후 성인이 되어서도 세, 네 마리 강아지들과 함께 살았다. 그러다 길에서 눈이 터진 강아지 한 마리를 발견했다. 이 강아지 한 마리를 통해 이용녀는 유기동물의 안타까운 현실을 알게 됐고, 이는 새 삶의 시초가 됐다. 그는 “시보호소에서 일정 기간 내 새 가족을 찾지 못하면 안락사를 시킨다더라. 그래서 당시 한 달 사이에 17마리의 개를 데려왔다”고 했다.

결국 몇 달 사이 훌쩍 100마리의 개를 넘게 데려왔다는 그는 주변 사람들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이사를 가야만 했다. 이용녀는 “재건축 하는 동네에 집을 얻어 살다가 하남의 창고 지대로 갔다. 허허벌판이라 무서워도 마음은 편했다”며 “빚은 1억 가까이 있고, 지인들한테 2만원을 꿔 사료 두 포대 사 하루 만에 다 쓰고 그랬다. 그때 천호동 족발 골목에서 자투리 뼈다귀를 얻어 오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감사하다”고 녹록치 않았던 상황을 설명했다.

그렇게 11, 12년을 하남에 살다 현재 살고 있는 포천으로 이사를 온 지는 2년 남짓이 됐다. 이용녀는 “(개들 때문에) 펜스 같은 것들을 다 설치해놔 이사를 섣불리 못한다. 그런데 월세를 30%씩 막 올리더라. 견딜 수 없어 포천으로 갔다. 서울과 멀긴 하지만, 애들에 비해 나만 불편하면 되니까 괜찮다”고 담담히 털어놨다.

치솟는 월세 탓에 어쩔 수 없이 자리 잡은 곳이지만, 이용녀는 오히려 그 덕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게 됐다고 했다. 겨울엔 은세계를 이루고, 봄엔 푸른 녹음이 짙게 물든다는 곳에서 자연을 놓치지 않으려 계속 눈에 담는다는 이용녀는 “다른 생각할 시간은 없지만 평화롭다. 아이들한테도 ‘너희들 만나 행복하다’ 이야기 많이 한다. 이 아이들을 안 만났으면 서울 근교에 살지 않았겠나. 어쩔 수 없이 갔는데 내가 더 좋은 상태가 된 거다. 강아지들이 신나서 뛰어다니면 그 바이러스가 저한테도 온다. 우리 집엔 작은 말티즈부터 큰 진돗개까지 다 같이 있는데 개들도 스트레스가 없어 싸우지 않는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용녀가 ‘아이들’이라 칭하며 애정을 드러낸 개들 역시 임시 보호 개념으로 그의 집에 머물고 있는 개들이다. 그는 집이 곧 보호소가 되고, 빚까지 내 유기견을 돌보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이용녀는 “포천 가는 길에 개 농장이 많다. 처음엔 몰랐는데 이사 다 하고 여유롭게 왔다 갔다 할 때 보이기 시작하더라. 그곳의 개들은 유기견 보호소 개들 표정과는 또 다르다. 짖고, 꼬리치는 일도 없다. 그걸 보면 눈에 밟혀서 괴롭더라”고 이야기했다.

법이라곤 교통딱지 떼는 것밖에 몰랐다는 이용녀는 오로지 동물을 위해 직접 동물을 위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신한테 빌어도 들어주지 않자, 탓 할 시간에 ‘내가 해보자’는 생각을 갖게 된 거다. 그는 “우린 변호사도 없고 무식하다. 두 달 넘게 팩스 보내고 전화하고 그랬다. 저도 너무 힘들어 하던 중 ‘신체적 고통’을 넣겠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동물학대를 더욱 포괄적으로 정의할 수 있도록 동물학대 조항에 ‘신체적 고통’을 명시할 수 있게 됐던 비화를 밝히기도 했다.

이용녀는 법을 몰라도 법을 바꾼 사람이었다. 그가 또 다른 법을 바꾸기 위해 시민들과 연대하는 유일한 수단과 발판은 SNS다. 그는 지난 6월 국회입법예고 홈페이지에는 가축에서 개를 제외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축산법 개정안에 시민들의 찬성이 4000개 이상 달린 것을 언급하며 ‘시민의 힘’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내 욕심은 세 가지”라며 유기견 번식장을 없애기 위한 시민들의 참여, 정부의 확실한 입장, 함께 행복할 권리를 꼽았다. 이용녀는 “내 문제가 아니더라도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며 “요즘은 자기가 피해볼까 불의를 봐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되면 아무도 서로 도와줄 수 없지 않나. 동물이 끔찍하게 죽는 것에 ‘그러면 안 돼’ 소리 낼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나보다 약한 것에 힘을 써주면 이후에 나보다 강한 사람이 나를 위해 애를 써주지 않겠나. 그저 약한 걸 보호해주고 지켜 줬으면 하는 마음이다”라며 점점 경직되는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연기가 전부인줄 알고 살았다는 이용녀는 자신이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 위해서라도 이 일을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이건 연기자로서가 아닌, 이용녀의 또 하나의 일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사랑도 많이 받고 살았고, 중간에 큰 불운도 없었어요. 특별히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적도 없었고, 전 행운아인 거죠. 이제 흰머리가 나면서 나 자신을 정리 하라는 사인이 왔어요. 제가 받은 것들을 돌려주고 싶은데, 제 능력이 크지 않으니 사람이 버린 개들한테라도 돌려주고 가고 싶어요.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왔으니까 얘들에 대한 책임을 지는 거예요. 아이들 살 수 있는 곳을 주고, 먹을 것을 주고. 그 정도만이라도 해주겠다고 약속했고, 이 약속을 지키고 싶어요.”

[티브이데일리 조혜진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송선미 기자, MBC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