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송희 기자] 연기 스펙트럼을 한정해두지 않고 꾸준히 도전하는 이가 있다. 관객들이 자신을 다른 화려한 수식어 없이 그냥 배우라고 불러줬으면 한다는 유해진이다.

영화 '말모이'(감독 엄유나·제작 더 램프)는 우리말 사용이 금지된 1940년대, 까막눈 판수(유해진)가 조선어학회 대표 정환(윤계상)을 만나 사전을 만들기 위해 비밀리에 전국의 우리말과 마음을 모으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유해진은 '말모이'가 인물들 간에 수많은 감정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 이야기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그는 "'말모이' 자체가 우리 말, 우리글, 우리 정신을 지키려고 했던 또 다른 독립운동이자 투쟁이었다. 말이란 건 우리의 정신이고, 그 정신을 지키려고 했던 사람들의 희생을 다룬다는 것이 신선했다"고 말했다.

유해진은 엄유나 감독이 자신을 판수의 모델로 삼고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는 것에 대해 "영화 '택시운전사'를 하고 있을 때 소속사 대표가 언뜻 이야기하더라. 저는 절 두고 쓴다는 말이 으레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책을 주더라. 실제로 저를 모델로 했다는 걸 알고 놀랐다"고 얘기했다.

'말모이'가 입봉작인 엄 감독에 대해 유해진은 "항상 귀가 열려 있어서 정말 많은 얘기를 했던 것 같다. 뭔가를 말하면 순간 판단이 쉽지가 않은데, 감독이 마음이 열려있으면서도 뚝심이 있어 좋았다"고 애정을 내비쳤다.

윤계상 또한 유해진 캐스팅에 따지는 것 없이 '말모이' 출연을 결정지었다고 했다. 유해진은 "정말 저만 믿고 했을까 싶다. 아마 시나리오 꼼꼼히 다 체크했을 거다. 다음번엔 얼토당토않은 거 해봐야겠다. 과연 같이 할까"라며 농담을 던졌다.

'말모이' 속 판수를 망나니라 표현한 유해진은 "그런 판수가 변해가는 과정을 관객들이 억지스럽지 않게 받아들였으면 했다"고 말했다. 유해진은 아이들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고, 글을 모르면 조선어학회에서 내쫓길 판이니 당장 한글을 배우다 '말모이'에 뜻을 함께 하는 일련의 과정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자 했다.

그는 판수가 '말모이'에 참여하는 결정적 이유로 아들과 딸이 창씨개명으로 인해 일본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이라고 봤다. 유해진은 "판수는 사전이라는 큰 뜻보다는 내 자식들의 이름을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큰 인물인 거 같다. 그래서 변화하는 과정이 좀 더 이해가 쉬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유해진은 자신의 딸로 출연한 배우 박예나가 '제1의 순희'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유해진은 "순희는 정말 어린애 같은 모습이 그대로 있다. 가공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그건 배운다고 해서 절대 할 수 없는 거지만, 정형화돼가고 있는 저한테 자극이 되는 건 분명하다"며 각별한 감정을 드러냈다.

유해진은 자신과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더라도 시나리오가 끌린다면 피하지 않고 도전한다고 했다. 유해진은 "제 작품을 보다 보면 '왜 저 작품을 했지?' 하는 경우가 있을 거다. 옷을 잘못 입은 거 같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저는 두려워하지 않고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배우가 가장 잘 하는 연기만 고집하면 같은 연기만 한다는 지적이, 큰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면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이 따른다. 유해진은 이미지 변신에 대해 "옷을 잘못 입으면 잘못 입었다고, 그래서 입는 거만 입으면 왜 그것만 입냐고 한다. 그래서 저는 벗었다가 입었다가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유해진은 자신에게 씌워진 코믹한 이미지를 언급하며 "저는 코미디 장르를 코미디라고 나누지 않는다. 다 드라마이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코미디라고 해서 코미디스러운 연기를 하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유해진은 흥행 부담에 속이 예민해져 최근에는 커피도 못 마신다며 "신경 쓰네 안 쓰네 해도 속병이 나는 거 같더라"고 했다. 그는 "대중을 위해 만들어진 대중 영화인데 대중이 등 돌리면 그것만큼 상처받는 것도 없지 않나. 갈수록 부담을 갖고 있는 건 사실이다"고 털어놨다.

어떤 시점을 계기로 부담을 느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언젠가 그 무게가 크게 다가왔다는 그다. 유해진은 어두운 모습도 잠시 "그래서 '완벽한 타인'은 마음이 편했다. 흥행 부담을 7분의 1로 나누는 거 아니냐"며 웃었다.

유해진은 "언론시사회 때 '말모이' 완성본을 처음 봤다. 저는 그 촬영 과정을 다 알기 때문에 사실 작품을 객관적으로 보기 힘들다. 그래서 나중에 다시 한 번 봐야겠단 생각이 든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말모이'란 작품을 떠올릴 때 그 현장과 인물이 그리울 것 같다는 유해진이 표현할 판수가 기대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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