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신상민 기자] 엄유나 감독과 인터뷰를 하면서 그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사람들’이었다. 왜 ‘사람’에 대한 생각이 감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느냐고 묻자 되려 “그러게요?”라고 물음으로 답했다. 그런 엄유나 감독은 차가운 시대에 사람들의 따뜻함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 영화 ‘말모이’가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말모이’(감독 엄유나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우리말 사용이 금지된 1940년대 까막눈 판수(유해진)가 조선어학회 대표 정환(윤계상)을 만나 사전을 만들기 위해 비밀리에 전국의 우리 말과 마음까지 모으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엄유나 감독은 영화를 시작하기 전만 해도 주시경 선생님이나 조선어학회를 알고만 있는 정도였다. 그런 그가 ‘말모이 작전’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면서 이에 대해 알게 되고 또한 감명을 받았다. 엄 감독은 “전국 사람들이 함께 했다는 것 자체가 감동적이고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엄유나 감독은 ‘말모이’를 통해 입봉을 한 신인 감독이다. ‘말모이’로 입봉 하기 전 엄유나 감독은 천만 영화 ‘택시운전사’의 각본을 맡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아픈 역사를 담은 시대극이었다. 이에 대해 엄 감독은 “요즘 그런 부분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고 자신이 왜 유독 시대극에 매력을 느끼는지 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엄유나 감독은 아픈 역사를 담은 시대극임에도 그 안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택시운전사’도, ‘말모이’도 시대상이 보여주는 암울함과 달리 캐릭터는 장난기 가득하고 유쾌한 모습을 통해 관객들에게 웃음을 준다. 엄 감독은 “아픈 시대일수록 따뜻하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엄 감독은 이름 없는 사람들이 동참한 말모이 작전을 보면서 ‘이 사람들의 마음이 무엇일까’에 대한 궁금함이 있었다. 그 마음을 궁금해 하며 따라가다 보니 ‘보는 이들이 조금은 따뜻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힘든 시대일수록 웃으려는 게 우리 나라 사람들의 특징이 아닐까? 아픈 시대가 아니라면 관객들이 웃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영화 속 정환의 대사 중 “한 사람의 열 발자국보다 열 사람의 한 발자국이 중요하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는 “조선어학회 대표나 회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거기에서 벗어난 평범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 사람의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감동을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어학회 대표인 정환을 주인공으로 삼기 보다는 아주 평범하고 못난 사람인 판수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엄유나 감독은 “주인공이라기 보다는 그 사람들의 도움이 아니면 완성되지 않았을 큰 일”이라고 했다. 엄 감독은 한 사람의 힘만으로 되지 않는 일도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힘을 합치면 큰 일을 해낼 수 있다고 했다.

판수는 탄압이 심해지자 가족과 사전 편찬 사이에서 갈등을 하게 되는 인물이다. 때로는 정환과 신경전을 펼치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조선어학회의 존재 이유를 서서히 깨닫게 된다. 그러나 판수는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는 사전 편찬을 돕는 일을 그만 둬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로 인해 판수는 자식의 안위와 자신이 가고자하는 길 사이에서 고민에 빠진다.

그러나 엄유나 감독은 판수만 끊임없이 갈등을 하는 인물이 아니라고 했다. 영화에 나오는 수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갈등 속에서 옳은 선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엄 감독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편물을 보낸 신의주 학생도 고민과 갈등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우체부 역시도 자신의 위치에서 직업을 걸고, 목숨을 걸고 갈등을 하고 옳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설명을 했다.

엄유나 감독이 만들어낸 정환이라는 인물은 사전을 만들기 위해서 한글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기꺼이 내거는 인물이다. 그러나 정환이 왜 집착을 하듯 한글을 지키려고 하는 지에 대해 영화에서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엄유나 감독은 이에 대해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고 선택하고 길을 가는 건 논리적인 이유를 댈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독립 운동을 한 사람들 역시도 해야 하니까, 옳으니까 가야 했던 것이라고 생각 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엄 감독은 오히려 정환과 같은 사람에게 어떤 사건이나 계기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오직 엄유나 감독은 정환이라는 인물이 온기가 있는 사람처럼 보여지는 것에 집중을 했다. 순희를 처음 만난 정환의 모습이 진짜 정환의 모습이라고 했다. 특히 정환이라는 인물과 아이들의 관계가 중요했다고 했다.

“말과 글이 아이들을 통해서 이어져 내려온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중요했어요. 영화 시작에 극장에서 판수를 따라하는 아이들, 어른들이 한 말을 따라하는 순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교육하고 가르치는 것을 아이들이 보고 배우고 영향을 받아요. 사람과 사람이 주고 받는 영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영화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자칫 애국과 반일에 대한 감정을 강요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해 엄 감독은 “신경을 쓰긴 했다”고 말했다. 그는 ‘말모이’가 독립 운동을 했던 어떤 영웅의 삶도, 말을 바르게 쓰라고 강요하는 영화도 아니라고 했다. 엄유나 감독은 “단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살아가는 평범한 이야기로 접근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서 엄유나 감독은 “실제 사건이 어떻게 전개 됐다는 것 보다 함께 했지만 자료에 없는 사람들, 남기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고민했다”며 “그리고 조선어학회 사건이라는 큰 줄기가 있어서 그 부분을 가져왔다”고 했다.

엄유나 감독의 모든 초점은 특별한 한 명이 아닌 그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맞춰져 있다. 엄 감독은 “처음 ‘말모이’를 고민할 때 ‘헬조선’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유독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큰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힘든 친구들도 많고 요즘 뉴스를 보더라도 무겁고 아픈 이야기가 많다”며 “그냥 영화를 보는 시간만큼은 영화처럼 따뜻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여기에 조금 더 욕심을 부리면 영화를 계기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 볼 수 있는 계기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티브이데일리 신상민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출처=롯데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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