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조혜진 기자]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너무나도 활짝 열린 결말로 대다수 시청자들의 이해와 공감을 얻는 데 실패했다. 이른바 ‘떡밥’ 회수를 해낼 것이라는 송재정 작가를 향한 믿음이 산산이 부서진 마지막 회였다.

tvN 주말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극본 송재정·연출 안길호)이 지난 20일 16회를 끝으로 종영했다.

작품은 투자회사 대표 유진우(현빈)가 비즈니스로 스페인 그라나다에 방문하고, 정희주(박신혜)가 운영하는 오래된 호스텔에 묵게 되면서 기묘한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담는다.

이날 마지막 회에서는 유진우가 천국의 열쇠로 직접 차형석(박훈), 차병준(김의성), 서정훈(민진웅)을 찌르며 버그들을 없앴다. 그리고 그는 엠마(박신혜)에게 천국의 열쇠를 건네 자신도 사라지는 방법을 택했다. 1년 뒤 제이원홀딩스는 리셋됐던 게임을 다시 개발해 세상에 내놨다. 사람들이 유진우를 포기하고 잊어갈 때쯤, 정희주만이 사라진 유진우가 살아있다고 믿었다. 정희주는 게임 유저들이 총을 쏘는 유저가 있다는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듣고 그가 유진우일 것이라고 직감했다. 정희주는 스마트렌즈를 끼고 게임에 접속, 유진우가 있다는 곳으로 달려갔고, 총을 든 유저의 실루엣이 등장하며 극은 막을 내렸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AR게임을 주요 소재로 가져와 NPC, 퀘스트, 버퍼링 등 드라마에선 생소할 수 있는 게임 관련 용어들이 다수 등장했다. 어려운 설정 탓에 진입장벽이 있었지만, 작품은 신선한 소재와 흥미진진한 초반 전개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또한 고퀄리티의 CG, 배우들의 열연은 몰입도를 높이며 극에 빠져들 수 있게 했다.

특히 현빈은 현실과 게임 세계를 오가는 유진우로 분해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유진우의 혼란스러운 감정선부터, 차차 적응하고 퀘스트를 해결해나가는 모습에서의 고난도 액션까지 해내며 극을 이끌었다. 초반의 까칠하고 냉정한 면모부터 로맨스에서 보여주는 짓궂은 면모와 애틋함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모든 상황에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와는 별개로, 유진우를 제외한 많은 캐릭터들은 실망을 남겼다. 여주인공 정희주는 적극적으로 나서 유진우를 돕기보단, 남주인공이 지쳐있을 때 잠시 나타나 기운을 주는 존재로 그려졌다. 매회 울고, 달리는 것밖에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 1년 만에 나타난 정세주(찬열)는 게임개발자임에도 각종 오류를 해결하지 못했다. 유진우가 애타게 찾았던 게 무색할 정도로 게임에 대해 아는 게 없었으며, 게임 탓에 사람이 죽었음에도 제이원에 스카우트돼 다시 게임을 만들 결심을 했다. 많은 것을 숨기고 있을 것 같았던 차병준 역시 명예만을 쫓다 허무한 죽음을 맞았고, 유진우 전처 고유라(한보름)는 단순 재력만을 좇아 결혼을 하는 쓸모없는 캐릭터로 소비됐다.

캐릭터뿐만 아니다. 정세주의 미스터리한 행방, 차형석의 기묘한 죽음 등 쌓여가는 의문들과 어려운 전개에도 시청자들이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놓지 않았던 건 드라마 ‘인현왕후의 남자’ ‘나인: 아홉 번의 시간 여행’ ‘W’ 등을 집필한 송재정 작가의 특별한 상상력과 세계관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당장에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아직 설명되지 않은 것들을 마지막에 수습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으나, 마지막 회야 말로 설정의 오류들을 확인하는 회가 되어버렸다.

그간 작품 곳곳에 뿌려놨던 ‘떡밥’들은 전혀 회수가 되지 않았다. 회상 신이 매회 상당 시간을 잡아먹어도 설명이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버그의 기준이 무엇인지, 특정 유저만 사용하는 독립 공간인 인던에 어떻게 리셋 후의 유진우가 어떻게 숨어 있는 것인지, 왜 숨어 있는 것인지, 버그의 잔재로 남아있던 유진우의 가루는 무엇인지 등등 단순 ‘버그’로 치부하기엔 설정의 오류들이 난무했다.

또한 이것들을 캐릭터가 말로 설명하는 전개 역시 실망감을 남겼다. 더욱이 생명수라는 이온음료와 샌드위치 PPL이 주인공의 행방보다 기억에 남는 황당 PPL도 결말의 허무함에 한몫했다. 대다수 시청자들이 송재정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을 믿었지만,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결국 마지막까지 물음표 남기는 드라마로 남게 됐다.

[티브이데일리 조혜진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tvN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