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신상민 기자] 드라마든, 영화든 ‘어? 이 배우’하게 되는 조, 단역 배우들이 있다. 주인공이 아니고서야 대중이 기억하기 어려운 작은 배역이라고 할 지라도 유독 눈에 들어오는 배우들이 있기 마련이다. ‘낭중지추’라고 했던가. 그런 이들은 어느 순간 좋은 작품을 만나 이름을 날리기 마련이다.

이중옥이라는 배우를 처음 인지한 것은 OCN 드라마 ‘손 더 게스트’였다. 폐차장 형제 중 형으로 등장해 섬뜩한 부마자를 연기한 이중옥을 다시 만난 건 영화 ‘마약왕’에서였다. 그리고 얼마 뒤 다시 그의 얼굴을 영화 ‘극한직업’에서 마주하게 됐다.

이중옥은 영화 ‘극한직업’에서 영화 초반에 환동이라는 인물로 잠깐 등장한다. 마약반 5인방이 쫓는 마약 중간책인 환동은 분량이 적지만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어찌 보면 중요한 인물이기도 했다. 이중옥은 “부담이 되긴 했다”고 말했다. 그는 “관객에게 영화의 첫 인상을 결정 짓는 중요한 5분이라고 생각하니까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촬영 현장에서 분위기도 좋고 재미있게 찍었다”며 “마약반 다섯 분 모두 잘 챙겨주셨다”고 촬영 당시 상황을 전했다. 더구나 이중옥은 진선규와 연극을 하면서 알고 있던 사이였기에 부담을 덜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진선규에 대해 “착하고 인성이 좋다는 이야기가 많아서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이중옥은 그간 악역 연기로 대중에게 강렬한 눈도장을 찍은 배우다. 특히 ‘마약왕’에서 보여준 독특한 분위기는 대중의 시선을 강탈하기에 충분했다. 우민호 감독 역시도 영화 ‘내부자들’을 통해 조우진이라는 배우를 발견한 것처럼 영화 ‘마약왕’을 통해 이중옥이라는 배우를 발견했다고 했을 정도.

‘마약왕’에서 보여준 이미지와 달리 ‘극한직업’ 속 이미지는 같은 악역임에도 상당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에 대해 이중옥은 “역할마다 삶의 궤적은 다르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맡은 캐릭터가 어떻게 살아왔을 지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했다.

‘마약왕’의 윤강식 역시 그 인물의 궤적을 쫓은 결과물이라고 했다. 그는 “체구도 작은데 어떻게 이 인물이 그 위치에 올라갈 수 있었을 지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윤강식을 연기함에 있어서 되려 세 보이려고 하지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관객이 그 인물을 상상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그는 왜소한 그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어떤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을 느끼게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윤강식이 대사를 하기 보다는 낄낄 웃은 모습을 더 자주 보여준 것에 대해 “송강호 선배가 ‘이 역할은 웃음이 언어가 될 수 있다’는 말해 줘서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러한 치열한 고민은 작은 배역이라도 극 전체의 흐름에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그의 연기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윤강식 캐릭터가 첫 등장하면서 하는 욕설을 하는 것도 현장에서 우 감독에게 자신이 제안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질한 이두삼이 마약왕으로 성장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더 극적인 대비를 보여주기 위해서 욕을 붙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감독님도 해보라고 하셨는데 편집 없이 해당 장면을 써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캐릭터가 왜 이 장면에 등장하는 지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고 연기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고민 끝에 만들어낸 캐릭터이기에 이중옥은 ‘마약왕’의 윤강식이 덩치 큰 인물들 사이에서도 무언가 있을 것 같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인물로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러한 시각을 키우는데 연극 연출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연출을 할 때는 모든 배우들의 앙상블을 지켜봐야 한다는 점에서 배우를 할 때 시선보다 넓어지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연출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배우가 배우 일이 없다 보니까 연출을 하게 된 것”이라고 농담처럼 이야기 했다. 그러나 그 농담 안에는 이중옥이 배우로서 걸어온 길이 그리 평탄하지 않았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6개월 가량 일이 없어 쉬다 보니 집에 있기도 불편해 여기 저기 제작사에 자신의 프로필을 돌렸다고 했다. 그러던 중 연락이 온 것이 ‘마약왕’이었다. 이중옥은 ‘마약왕’에 이어 ‘극한직업’ 그리고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 이르기까지 작품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운이 좋았다고 했다.

그는 “운이 좋았다. 다행히 좋은 작품을 같이 하게 됐다”며 “연기를 하면서 고민이 많았다. 어떤 역할이든 작품 안에서 이질감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에게 누만 끼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연기가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냐고 물었다. 그는 “솔직히 이제 할게 연기 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다른 일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오래 발을 담갔다. 이젠 이것 밖에 못한다”고 했다.

평생 가야 할 삶과 같은 연기라는 그는 힘들었던 지난 날을 녹여 낼 수 있는 캐릭터만큼은 잘할 자신이 있다고 했다. 그는 “남들보다 더 불쌍하거나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손 더 게스트’ ‘마약왕’에서 센 캐릭터와 ‘극한직업’에서 유쾌한 캐릭터를 모두 오간 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중옥은 센 역할이 더 연기할 맛이 난다고 했다. 이러한 이유는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서 비롯됐다.

그는 오디션에서 자유 연기를 할 때 가급적 센 캐릭터를 연기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서 이전에는 안경을 쓴 채 오디션을 봤다면 요즘에는 안경을 벗고 센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악역을 주로 연기함에도 불구하고 이중옥은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이미지에 한계가 있다. 악역을 하기에는 왜소한 체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체격에 대해 왜소하다는 말을 자주 반복했다. 그러나 이중옥은 자신의 한계를 받아드리고 오히려 장점으로 극대화 시켰다.

이중옥은 “한 때 체격적인 한계에 대해 신경이 쓰기도 했지만 이미 그런 시기가 지났다”며 “캐릭터가 주어진다면 몸에 연기를 맞추면 된다고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다만 다른 이들과 달리 연기적인 고민이 두 배로 더 들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배우가 자신을 잘 알아야 해요. 가진 외형이 어떻게 보여지는 지 알고 장점을 소화해야 해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잘 맞는 자신만의 연기 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캐릭터를 만나면 생각이 많아서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요. 그런 면에서 집요하게 생각해서 캐릭터를 만들어요.”

어찌 보면 이중옥은 불쌍하고 소외된 인물을 잘 연기할 수 있음에도 대중을 만날 때 자신의 왜소함을 입고 있는 악역이 더 무서울 수 있다는 걸 잘 하는 영리한 배우다. 그렇기에 오디션에서도 센 역할을 주로 보여주며 일반적이지 않은, 궁금함을 자극하는 자신만의 악역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다.

[티브이데일리 신상민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출처=지킴 엔터테인먼트, ‘마약왕’ ‘극한직업’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