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신상민 기자] 스포츠 영화, 혹은 암울했던 과거를 다룬 영화의 경우 애국주의의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이러한 영화들을 두고 ‘국뽕’영화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스포츠와 일제 강점기를 모두 다루는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감독 김유성 배급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은 마땅히 이러한 점을 경계해야 했다. 애석하게도 ‘자전차왕 엄복동’은 이를 경계하기 보다는 작정하고 애국주의의 함정에 스스로 걸어 들어간 모양새다.

영화는 지금은 거의 잊혀진 이름이나 마찬가지인 ‘엄복동’이라는 인물을 다시 스크린에 소환시켰다. 단편적으로 드러난 그의 활약상은 민족의 영웅으로 불린 손기정 선수만큼이나 대단하다. 1913년 4월 13일 용산에서 개최된 자전차 대회에서 1등을 한 뒤 출전 대회마다 일본 선수들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둔 인물이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당시 대중적인 스포츠 스타나 다름 없는 엄복동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일본을 꺾고 자전차 대회에서 우승, 엄복동의 이름을 넣어 당시 불렸던 노래, 일본 측 만행에 항의해 우승기를 꺾은 엄복동이 구타를 당해 촉발된 한일간의 난투극까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허나, 이러한 모습은 엄복동이라는 인물의 단편적인 면일 뿐이다. 자전차 대회 우승이라는 빛이 있다면 엄복동에게는 자전거 도둑이라는 그림자가 있다. 물론, 김유성 감독의 말처럼 한 인물의 단편적인 면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다. ‘엄복동’이라는 인물은 당시의 기사화 된 기록이 전부이다. 그만큼 엄복동이라는 인물의 기록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이에 엄복동이 무슨 이유로 자전거를 훔쳤는지에 대해 정확하기 알 길이 없다.

이러한 연유로 ‘자전차왕 엄복동’은 기사화된 역사적 사실을 제외한 나머지 알 길이 없는 그의 행적을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채워 넣어야 했다. 여기에서부터 ‘자전차왕 엄복동’은 애국주의의 함정에 빠지게 됐다. 영화는 엄복동의 빈 공백을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건 독립투사의 이야기로 채워 넣었다. 물론 실존 인물을 다루는 경우 영화적인 상상력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극적인 요소를 위해서 없었던 인물이 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역사서에 한 줄로 나와 있는 인물에 상상력을 덧대 영화에 녹여내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영화에 대한 완성도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애국주의의 함정에 빠진 나머지 인물간의 관계성에 소홀했다. 엄복동과 김형신(강소라)의 러브라인은 인물간의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도 않은 채 갑작스럽게 진행된다. 그런 가운데 김형신의 부탁으로 엄복동이 1등을 하려고 하는 모습은 두 사람의 러브라인이 애국주의로 연결시키기 위한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받게 한다.

더구나 명확하게 구분 짓는 선악 구조도 영화를 단조롭게 만든다. 사카모토(김희원)는 독립운동단체 애국단을 제거하려는 악독한 인물로 그려진다. 더구나 잔혹한 고문 장면을 통해 영화는 선과 악의 구조를 공고히 한다. 엄복동, 애국단, 친일파. 세 톱니 바퀴가 맞물리면서 흘러간 이야기는 자전차 대회 경기장에서 관중이 애국가를 부르는 장면을 통해 관객에게 극단적인 애국주의를 강요하기에 이른다.

김유성 감독은 ‘자전차왕 엄복동’에 대해 다양한 층위를 보여주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를 두고 스포츠 드라마의 역동성, 형신과 관계를 통해 로맨스 등 다양한 구성을 가진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고 밝혔다. 또한 영화를 두고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라고 했다. 문제는 종합선물세트로 포장된 욕심이 오로지 3.1운동 100주년에 편승하려는 듯 억지로 끼워 맞췄다는 것이다. 결국 엄복동의 연승, 조선인들의 열광, 우승기를 꺾은 역사적 사실인 부분을 다루고 있음에도 모든 것이 ‘국뽕’화 되어 버린 결과를 낳았다.


[티브이데일리 신상민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출처=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