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조혜진 기자] 마지막까지 ‘눈이 부시게’ 완벽했다.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극본 이남규·연출 김석윤)가 지난 19일 막을 내렸다.

작품에서는 배우 김혜자와 한지민이 한순간에 늙어 버린 스물다섯 혜자, 2인 1역을 맡아 활약했고, 남주혁이 무기력한 삶을 사는 남자 준하로 분했다. 혜자의 가족들로는 안내상 이정은 손호준이 출연해 극의 웃음과 눈물을 모두 책임졌고, 혜자의 친구들 김가은 송상은은 세대를 초월한 우정을 보여줬다.

작품은 섬세한 연출,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대사, 동네의 지나가는 할머니까지 구멍 없는 연기력을 선보일 정도로 열연을 펼친 배우들까지 어느 것 하나 완벽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두 말할 필요 없이 김혜자의 눈부신 활약이 돋보였다. 스물다섯 청춘으로도, 알츠하이머를 앓는 혜자로도 완벽히 녹아든 김혜자와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작품을 마지막까지 웰메이드 드라마로 남게 했다.


처음 ‘눈이 부시게’는 주어진 시간을 다 써보지도 못하고 잃어버린 여자와 누구보다 찬란한 순간을 스스로 내던지고 무기력한 삶을 사는 남자, 같은 시간 속에 있지만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두 남녀의 시간 이탈 로맨스로 시작했다. 그러나 극 후반부, 혜자의 시간 여행에 숨겨진 비밀이 사실은 알츠하이머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충격을 안겼다.

알츠하이머임이 밝혀지기 전까지 김혜자는 아빠(안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 시간을 돌린 스물다섯 혜자 그 자체였다. 철부지 오빠(손호준)와 티격태격하고, 친구들과 ‘썸남’ 준하에 대한 수다를 떨었으며, 구김 없는 성격으로 홍보관 노인들과도 두루 어울려 지냈다. 또 미용하는 엄마(이정은)의 갈라진 손을 보며 안타까워했으며, 사고 이후 자신에게 거리를 두는 아빠에게 도시락을 싸주고, 아파트 주민의 터무니 없는 항의에 대신 맞서며 감싸주기도 했다.

숨 쉬는 타이밍, 빠른 속도로 뱉는 말들, 늙어버린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 자신을 대하는 주변인들에 따라 달라지는 반응들까지도 김혜자는 스물다섯 청춘이었다. 반전이 밝혀진 후에는 불행했던 기억들마저 잃는 것이 두려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혜자 그 자체로 보이는 마법이 일어나기도 했다.


자신의 상상 속에서 혜자는 자신의 아들과 며느리를 아빠와 엄마로 생각했다. 살갑게 대하지 못했던 아들에게 그 누구보다 큰 사랑을 주는 딸이자 어머니였고, 언제나 ‘편’이 되어주고자 하는 딸이자 시어머니였다. 김혜자는 시간 여행을 하는 혜자를 통해 ‘나이 듦’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깨닫게 했고, 알츠하이머 혜자의 이야기로는 당장 생각나는 내 주변 소중한 사람에게 전화 한 통할 마음 하나를 쥐여줬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의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 거 아닌 하루가 온다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한 메시지 역시 김혜자 였기에 더욱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크레딧이 올라가도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영화처럼, 덮어도 계속해서 뒷면을 바라보게 만드는 책처럼, 깊은 여운을 선사한 ‘눈이 부시게’였다.

[티브이데일리 조혜진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송선미 기자, JTBC ‘눈이 부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