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한국 영화 100주년, 마치 세리머니처럼 봉준호 감독은 누구도 쓰지 못한 역사를 썼다. 가장 까다롭다는 칸의 콧대를 꺾고 기어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아마도 그의 영화 인생 최고의 순간일 요즘, 봉 감독의 입에서는 예상 외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항상 글을 쓰는 편이에요. 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시나리오를 썼거든요. 기본적으로 전 늘 불안해 하는 성격이에요. 신경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그러다 죽는다’며 저한테 처방약을 권유했는데 약을 먹으면 멍해지는 게 문제에요. 근데 불안한 상태가 사라지면 글을 쓸 수가 없어요. 불안이 유지되어야 시나리오가 써지는 편이죠. 칸에서 벌어진 모든 일은 이제 과거가 됐어요. 아마도 ‘기생충’이 마무리 되면 늘 가던 카페에 들러 또 글을 쓰겠죠”

꿈 처럼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일까. 봉 감독은 한국 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을 둘러싼 영광과 애써 거리를 두려했다. 잠시 즐겨도 좋으련만 혹여 초심에서 멀어질까 제 마음을 경계하는 그의 모습에서 겸손함을 넘은 묵직한 내공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확실히 들 떠 있다. 봉 감독은 어린 시절 자신을 세계를 만들어 준 감독들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방식으로 ‘기생충’을 얘기했다. 온갖 할리우드 영화를 섭렵하던 시절부터 김기영 감독 회고전을 보고 전율이 일던 때까지. 누군가는 ‘괴물’과 ‘옥자’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흔적을 읽는다. 어린 시절 본 거장들의 작품은 봉 감독의 피 안에 녹아있다.

“‘기생충’에서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떠올리시는 분도 있더군요. 사실 가장 보여주고 싶은 분이 바로 김기영 감독이에요. 안타깝게도 세상에 안계시네요. 낯선 존재가 침투했을 때 느껴지는 불안감을 가장 잘 그려냈던 분이죠. ‘기생충’에도 그런 불안감이 있어요. 기택(송강호)네 가족이 그런 존재입니다"

'기생충'에서 봉 감독은 전작에서처럼 계급에 대해 얘기한다. 최상위칸에 박사장(이선균)이 있고, 꼬리칸에 기택이 있다. ‘설국열차’에도 '괴물'에도 ‘기생충’에도 가족이 있다. 계급과 가족, 봉 감독의 시그니처같은 이 보편적인 소재는 결국 칸의 박수를 이끌었다. 외신들 역시 이 부분에 주목했다.

“북미쪽은 장르에 대한 관점이 강해요. 가장 인상적이 있던 건 ‘더 이상 이 사람의 장르를 규정하는 것에 논의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 장르가 되었다’는 말이었는데 사실 이번 칸 경험을 통틀어서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죠. 솔직히 영화를 설명하는 게 참 어려운데 앞으론 이걸로 말해야 겠네요. 편리한 인용구가 생겼어요”

박찬욱 감독의 칭찬 역시 인상적이었다. 그 칭찬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봉 감독은 끝까지 “제 입으론 말 못하겠어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결국 옆에 있던 영화사 직원이 거든다. "완벽하다. 경의를 표한다“가 박 감독의 칭찬이었다고. 이를 듣는 봉 감독의 표정이 쑥스럽다. 칸 최고상을 수상한 감독인데 말이다.


‘기생충’은 부자의 집에 기생하는 가난한 자들을 통해 공생과 상생에 대해 묻는 영화다. 봉 감독이 그리는 이상적인 공생과 상생은 무엇일까. 그런 세상이 가능하긴 한 것일까. 그의 전작들엔 늘 희망이 있었다. '설국열차'와 '괴물'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이는 늘 아이들이었다. '기생충'도 마찬가지일까.

“인간에 대한 존엄, 상대를 향한 존경이 있다면 공생과 상생은 유지될 수 있을거에요. 그 부분이 붕괴됐을 때 요즘 세상이 흔히 말하는 ‘갑질’이 생기는거죠. 최근 뉴스에서 많이 나오잖아요. 최소한의 존경을 지키는 것.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그걸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느냐를 고민하는 게 공생, 상생인 것 같아요. 근데 이 리스펙트가 또 모순적인 부분이 있죠. ‘기생충’을 보면 가장 힘든 처지에 있는 자가 리스펙트를 표하죠. 아이러니한 장면이에요.”

서로 다른 계급이 부딪힐 수 밖에 없는 한 공간에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생충’은 그 혼돈에 대해 이야기한다. 봉 감독은 이 카오스를 그리는 걸 즐긴다.

“난장, 카오스를 촬영할 때 흥분이 됩니다. 취조 장면도 되게 좋아하는 신인데 이런 장면을 촬영할 때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죠. 혼동과 무질서의 상태를 촬영하는 게 좋아요. 영화에서는 짜파구리 신이 그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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