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오지원 기자] '1가구 1에릭남'이라는 말이 유행이던 때가 있었다. 착하고 다정한 가수 에릭남의 매력을 칭찬하는 말인데, 정작 에릭남의 본색은 그저 '착한 남자'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 속에는 단단한 뚝심이 있고, 뮤지션으로서의 줏대도 확실하다.

에릭남은 최근 영어 앨범으로 돌아왔다. 미국에서 대부분의 학창 시절을 보낸 그의 정체성이 처음으로 뚜렷하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영어 앨범은 국내 리스너들에게 이질적일 수 있겠지만, 에릭남에겐 오랜 목표였다. 그는 "날 오래 지켜봐주신 분들은 영어 앨범이 내 오랜 목표라는 걸 알고 계실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지금 이 시점에 오랜 목표를 이루기로 마음먹은 건 에릭남의 방향성이 조금 더 솔직해졌기 때문. 원하는 대로, 끌리는 대로 하는 음악을 하는 것에 더욱 집중하게 됐다. 그는 "음악적으로 하고 싶은 걸 당장 하는 게 내 색깔이라고 생각을 바꿨다"고 이야기했다. 지난 앨범부터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음악, 아끼는 노래들로 활동하는 것에 집중한 덕분에 행복과 감사를 느끼고 있다는 그였다.

"제가 현재 느끼고, 겪고 있는 현실을 노래로 전달드리는 게 가수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인생은 계속 변하고, 생각도 변하죠. 그러니까 음악도 색깔이 바뀔 수도 있어요. 다만 그 당시에 전달드리고 싶은 이야기를 최대한 열심히 전달하는 게 제가 할 일이지 않을까요?"


실제로 에릭남이 음악적 방향성을 잡아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는 "'국내 리스너들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통념에 맞춰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으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특히 '미국식'이라는 지적이 에릭남을 옭아맸다. 한국어 가사 전달도 그에게는 장애물 중 하나였다. 에릭남은 "발음, 가사 전달이 완벽할 수 없는데, 그 쪽으로 밀어붙이려고 하다 보니까 내 옷이 아닌 옷을 입는 느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이런 고민의 시간들을 겪고 난 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에 몰두하게 됐다는 에릭남. 그가 택한 건 팝 음악이었다. 최근 발매한 곡들 모두 미국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졌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에릭남과 팝을 잘 아는 외국 작곡가들이 함께 했다. 에릭남은 "내가 내 목소리를 제일 잘 아니까 내가 할 수 있는 팝 음악을 만들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 덕분에 변화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그는 목소리에 대한 자신감이 가득했다. 특히 "목소리 좋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다. 저만의 무기이자 자신감"이라며 '에릭남의 팝'을 '흔하지 않은 목소리 톤'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에릭남은 "제가 스스로 그렇게 느끼고 있어야 자신 있게 음악을 낼 수 있을 것 같더라"고 쑥스러워하며 웃었다.

현실적인 판단도 분명 있었다. 빌리 아이리시, 앤 마리 등 유명 팝 가수들의 음악이 최근 국내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일들을 지켜보며 확신을 얻었다고 했다.

"그 사람들의 음악도 다 들어주는데 제 음악도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해요. 목소리만 다른 거거든요. 희망을 얻었어요. 제 음악을 열심히 알리면 언젠간 사람들이 '에릭남이 이런 음악도 잘하는구나'라고 알아주는 날이 오길 바라요. 그러면서 점점 더 제 색깔을 진하게 내는 게 숙제인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국내 가요계에 뿌리를 둔 정체성을 부정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 또한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뚜렷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에릭남은 "난 케이팝으로 시작했다. 케이팝이란 브랜드는 내게서 뗄 수 없는 것"이라며 "내가 미국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다고 해도 내 시작점은 한국, 그리고 케이팝"이라고 밝혔다.

최근 해외에서 케이팝은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갓세븐 등 아이돌 그룹 위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여러 멤버들이 무대 위에서 군무를 하는 것이 대표적인 이미지다. 이런 상황에서 에릭남은 아이돌이 아닌 자신과 같은 케이팝 가수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지금 당장은 BTS나 블랙핑크가 제일 유명하거든요. 하지만 이번 앨범을 통해서 케이팝에도 장르가 다양하고, 여러 가수들이 많다는 걸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저뿐만 아니라 힙합, 알앤비 등 여러 장르의 좋은 가수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게 아쉬워요.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노래를 계속 내면서 케이팝이 한 가지 이미지가 아닌 저 같은 색깔도 있다는 걸 꼭 알리고 싶어요."

에릭남은 2020년 북미, 남미, 동남아시아, 유럽, 호주 등 여러나라의 무대를 통해 자신만의 팝을 열심히 알릴 예정이다. 무대 위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올해 페스티벌 무대에 설 때마다 티켓이 매진이었다. 내가 잘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어서 기분이 좋고, 그래서 더 열심히 준비하고 싶다"며 당찬 각오를 밝혔다.

[티브이데일리 오지원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