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기록했다. '기생충'의 4관왕은 한국 영화사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수상 그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10일 오전 10시(한국 시각)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하 '2020 아카데미 시상식')이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열렸다.

이날 '기생충'은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구 외국어영화상) 등 총 주요 4개 부문의 상을 수상했다. 한국 영화사 최초로 아카데미 노미네이트에 이어 본상 수상까지, '기생충'이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을 통해 한국 영화 101년사에 남긴 족적은 어마어마하다.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기도 하지만, 아카데미 시상식과 해외 영화사에도 의미하는 바가 깊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변화를 알리는 수상이기도 하다.

그동안 아카데미 시상식은 백인 우월주의와 미국 영화 외 비영어권 영화 차별로 매해 논란이 돼 왔다. 또한 아무리 작품성이 우수해도 플랫폼을 통한 개봉을 원칙으로 하는 넷플릭스 제작 영화에 그 곁을 내주지 않을 정도로 보수적인 성향이 강했다. 대만 출신의 이안 감독이 '브로크백 마운틴' 아시아인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을 수상했지만, 미국 배우와 영어 작품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봉준호 감독이 지난해 10월 '기생충'의 북미 개봉을 앞두고 가진 현지 언론매체와 인터뷰에서 "한국영화가 비약적인 발전에도 지금까지 오스카(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오스카는 국제영화제가 아니라 로컬(지역)영화제이기 때문”이라고 답한 것만 봐도 그동안 아카데미 시상식이 비 영어권 영화에 각박했는지 알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의 '로컬 영화제' 발언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봉준호 감독의 발언은 큰 지지를 얻으면서 아카데미 시상식의 변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은 '기생충'의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 노미네이트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기생충'의 작품상, 감독상 등 주요부문 수상에 대한 여론은 비관적이었다. 국제장편영화상 외의 노미네이트된 부문들의 수상 불발 예측이 우세했다. 아카데미 회원 중 소수가 '기생충'이 자막으로 제작됐기 때문에 보지 않았다고 밝힐 정도로 아카데미의 벽은 견고했다.

제26회 미국 배우조합상(Screen Actors Guild Awards, SAG)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반전됐다. '기생충'이 해당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앙상블상(Cast In A Motion Picture)을 수상한 것이다.

'기생충'과 '1917'의 양강 구도가 형성된 가운데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초반부터 '기생충'으로 분위기가 기울기 시작했다. 봉준호 감독과 한진원 작가가 각본상을 수상한 것. 이후 국제장편영화상과 감독상까지 '기생충'에게 돌아가면서 작품상은 더욱 예측할 수 없게 됐다.

'1917'의 수상이 예측됐던 작품상은 '기생충'에게 그 영광이 돌아갔다. 외국어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기생충'이 처음이다. 또한 '기생충'은 1955년 영화 '마티' 이후 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석권한 두 번째 영화가 됐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보수적인 성향으로 '로컬 영화제'라는 비난을 받아 온 아카데미 시상식이 '기생충'을 통해 변화를 표명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동진 평론가는 작품상 호명 전 "'기생충'이 아카데미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아카데미가 '기생충' 같은 작품을 기다려 온 것이 아닐까 싶다"는 말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명작 반열에 오른 '기생충' 덕분에 변화의 기점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뉴시스, 영화 '기생충'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