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지하 기자] 가수 조영남(75)이 ‘그림 대작(代作)’ 사기 혐의를 벗었다. 판매한 화투 그림이 ‘저작권 시비’에 휘말린 적이 없다는 점이 대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25일 오전 사기 혐의로 기소된 조영남의 상고심 선고기일에서 무죄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미술작품의 거래에서 기망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그 미술작품에 위작 여부나 저작권에 관한 다툼이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원은 미술작품의 가치 평가 등은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법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라고 봤다.

또 “검사는 원심판결에 저작물 사기죄로 기소했을 뿐 저작권법 위반죄로 기소하지 않았다”라고 짚으며 “미술 작품이 위작 저작권 시비에 휘말리지 않은 이상 기망이라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해당 미술품의 거래에서 그 작품이 친작(親作)인지, 보조를 사용해 제작했는지 여부가 작품 구매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거나 중요한 정보라고 할 수 없다”며 “피해자들이 이 사건 미술작품을 조영남의 친작으로 착오한 상태에서 구매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원심은 수긍할 수 있다”고 했다.

조영남의 ‘그림 대작 사기’ 사건은 약 4년 동안 미술계와 연예계의 핫이슈였다. 음악 활동과 방송 활동을 병행하며 꾸준히 연예 활동을 해온 그는 종종 그림을 그리는 일상을 공개하며 화가로서의 존재감도 쌓았다.

화투라는 독특한 소재를 활용한 팝아트에 조영남의 유명세가 더해지며 그림의 가격도 올랐다. 천만 원 이상에 거래되는 등 국내에서 활동 중인 유명 화가들 못지않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그림의 대부분을 조영남이 아닌 대작 화가가 그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사기 의혹’에 휩싸였다.

조영남은 지난 2009년부터 2016년까지 평소 알고 지내던 무명화가 송모 씨에게 총 200~300점의 그림을 그리게 하고, 배경색을 일부 덧칠하는 등 경미한 작업만 추가하고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인 것처럼 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림을 팔아 1억6000여만 원을 챙긴 것으로 파악됐고, 검찰은 조영남에게 사기 혐의를 적용했다.

조영남은 지속적으로 억울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조수 사용은 현대미술계의 관행이며, 그림의 아이디어가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대작 여부를 구매자가 물어보지 않았을 뿐, 숨길 의도가 없었음도 분명히 했다.

하지만 1심은 조영남이 제작했다는 작품들이 본인의 창작적 표현물로 온전히 삼을 수 없고, 이를 구매자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죄로 판단했다.

당시 재판부는 구매자 대부분이 대작임을 몰랐고, 작업을 맡기는 사실을 알았다면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라 판단해 조영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은 이를 뒤집었다. 조수를 통한 작품 제작 방식이 미술계에서 널리 통용되는 방식이고, 작품이 조영남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으며, 대작해 준 이들은 보조작가로 조수를 사용한 사실을 고지해야 할 의무가 없다고 봤다.

해당 재판부는 구매자들의 주관적 기대와 다르다는 이유로 사기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 측이 이에 불복하며 결국 대법원까지 밟게 된 가운데 재판부는 조영남의 손을 들어줬다. 미술작품의 가치에 대한 판단을 법리적으로 내릴 근거가 없다는 것이 주요한 이유였다.

특히 조영남의 그림이 위작이라거나, 저작권 시비에 휘말리지 않았다는 점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재판 내내 대작 고지 여부, 조수 활용 등이 주요 쟁점으로 거론되고 화제를 모았지만, 저작권 관련 내용은 크게 대두되지 않았다.

지난달 대법원의 공개변론에서 검찰 측은 저작권법 위반으로 조영남을 기소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밝혔다. 검찰은 “송씨 등이 그린 그림이 조영남 아이디어에 기반을 뒀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조영남 저작물로 인정됐기 때문에 기소하지 않은 게 아니다”라며 “송씨 등이 자신이 그린 그림을 돈을 받고 건네줬기 때문에 이를 통해 저작권도 함께 넘어갔다고 보고 저작권위반 발생하지 않는다고 봤다”고 주장했다.

반면 조영남 측은 작품들이 화투라는 독특한 소재를 활용하고 본인의 사상을 담아 만든 ‘단독 저작물’이기 때문, 검찰 측이 조영남을 저작권법 위반죄로 기소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사실상 재판부 역시 조영남 측의 주장을 들어줬다.

[티브이데일리 김지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송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