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국내외 1~7세 미취학 아동들을 단숨에 사로잡은 TV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는 2018년 기준 연간 약 150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고 다 년 간 15% 이상의 매출 신장률을 기록 중이다. 인간사회 온상을 적나라하게 반영한 이 한국형 콘텐츠의 성공 비결을 한 줄로 정의할 순 없겠으나, 무엇보다 이 스토리텔링은 세상 속 첫 발자국을 떼려는 유아들에게 공생사회의 뜨거운 가치를 말해준다.

극중 패티는 대다수 내향성의 한국 직장인들이 부러워할 법한 자신만만하고 활달한 성격의 캐릭터다. 반면 아이디어가 풍부한 천재 외골수 에디는 사회성이 결여됐으며, 얼핏 동네 바보 스타일의 포비는 유순한 성향 탓에 타인에게 이용당할 가능성이 있다. 어눌한 사고뭉치 크롱이는 모든 등장캐릭터의 돌봄과 관심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선천적 부족함과 빈곤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사회 약자에 관한 대유로 비춰진다.

그렇다면 모든 면에서 평범해 보이는 뽀로로는 어떻게 인상적인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까. 뽀로로는 처신이 과하지 않고 중립적이며 대체로 의리가 있다. 가장 무난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꽤 괜찮아 보이는 뽀로로는 관객이 동일시할 만한 ‘나 자신’이다. 세상의 중심이 나여야만 하는 영유아기 아기들에게 뽀로로는 내가 걸어가야 할 이 세계의 가슴 벅찬 시작점이 됐다.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 조회수 1위를 차지한 tvN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극본 조용·연출 박신우)는 사회적으로 좀 ‘이상한’ 세 명의 삼각관계를 화려하게 묘사하는 드라마다. 예술 재능이 뛰어난 고기능 자폐(HFA) 장애인 문상태(오정태)는 배우 오정태의 연기 내공에 힘입어 시청자들의 측은지심을 자아낸다. 그런 문상태에게 자신을 평생 뒷바라지해 온 요양보호사 동생 문강태(김수현)는 독점욕을 불러일으키는 유일한 애인인 셈인데, 이 형제의 인생에 침입한 외로운 성격파탄자 고문영(서예지)은 그만큼 문상태에겐 위협적인 폭군이다.

문상태가 기어이 동생 문강태를 붙잡고 “고문영이 그렇게 좋아? 나보다 좋아?”라고 눈물범벅의 인정투쟁을 벌이는 일은, 인생 속 숱한 ‘거절당함’이나 ‘버림 또는 버려짐’의 순간들을 상기시킨다. 말하자면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남들과는 확실히 다른 삶을 사는 트라이앵글 캐릭터 구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관계 트라우마를 헤집어낸 스펙터클 심리치료물에 가깝다.

인간이란 본래 서로에게 그리 선망할 만한 존재가 아닐 것이다.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의 화합적 해피엔딩과 달리, 집단 사회의 본능은 외양의 추(醜), 빈곤, 약자, 늙음을 자연스레 경시한다. 가령 반려자를 찾는 일에서조차 덕 볼 여지를 재어보는 한국의 불경기 구성원들에게 있어 평범하고 안락하게 살아가는 일 자체가 이미 고난이도 미션일 테다. A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영리하고 좋은 사람이 B에겐 폐를 끼치는 악인이 될 수 있고 어떤 사교집단에서 부덕한 구설을 일으킨 인물이 또 다른 집단에서 평판 좋은 주인공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

설상가상 2020년의 한국은 더 많이 배우고 가진 젊은층일수록, 오로지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막차에 오르고자 가속을 밟는 상태다. 청춘의 노력 자체는 독려할 일이지만 국가 경제의 허리층이 될 일원들의 이 같은 투기 성장 방향성이 썩 건강할 리도 만무하다.

중노년부터 기득권까지 서울의 노른자 땅과 증권시장에 자산을 몰아넣는 현 대한민국 트렌드를 누구라도 거스를 순 없을 것이다. 그 지옥열차조차 올라타지 못한 팔할 국민들의 체념적 시련은 또 어떠할까. 다만 분명한 것은 국내 자본주의 동향과는 별개로, 어떤 사람은 거대한 아프리카 대륙에 매립지를 짓는 선택을 하며 지구를 병들게 하는 쓰레기를 태우기라도 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무엇이 부족함이고 무엇이 완전함인가. 어쩌면 오늘의 한국인은 충만함과 모자람의 가치가 전복된 땅을 걷고 있다.



[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tvN, 오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