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1986년 데뷔해 벌써 35년 차. 한 사람의 인생만큼 연기를 한 배우 김혜수는 어느새 누군가의 ‘워너비’이자, 대한민국 여성 배우를 대표하는 얼굴 중 하나가 돼있었다. 그럼에도 김혜수는 겸손함 가득한 모습으로 좀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지금에 충실하며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었다.

김혜수는 영화 ‘내가 죽던 날’(감독 박지완·제작 오스카10스튜디오)에서 유서 한 장만 남겨놓은 채 외딴섬 절벽 끝에서 사라진 세진(노정의)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현수 역으로 분했다.

김혜수는 앞서 수차례 간 공식 석상에서 “‘내가 죽던 날’은 운명 같았던 작품”이라며 남다른 애착을 드러낸 바 있다. 이렇게 ‘내가 죽던 날’에 빠지게 된 이유에 대해 김혜수는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다. 그냥 뭔가 마음속으로 훅 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나도 내가 죽을 것처럼 느껴졌던 날이 있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뭔가 내 얘기 같은 느낌이 들어 출연을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김혜수는 자신이 겪은 힘든 시기에 대해 털어놨다. 김혜수는 “가족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건 작년이었지만, 내가 알게 된 건 그전이다. 8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당시엔 일을 할 정신이 아니었고, 예상치 못해 너무 놀랐고, 또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때문에 영화 속에서 민정(김선영)이 현수에게 ‘그걸 어떻게 까먹냐’고 묻는 대사와, 세진이 ‘어떻게 그걸 몰랐냐’고 질문을 받는 장면이 너무나 공감됐다. 특히나 세진의 ‘왜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을까요? 모르고 있던 것도 잘못이겠죠. 그래서 벌을 받나 봐요’가 마음에 와닿았다. 그래서 더 끌렸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혜수는 자신이 상처로부터 어떻게 회복할 수 있었는지도 들려줬다. 김혜수는 “사실 개인의 상처나 절망적인 순간이 어떠한 계기로 완벽하게 치유될 순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시기를 이겨내려고 특별히 노력한 적도 없는 것 같다. 그냥 그 시간을 지나간 듯하다. 도움이 됐던 게 있다면 주변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때 내 곁을 지켜준 사람들에게 ‘있어줘서 고맙다’고 말한 기억이 있다”고 털어놓으며, “남이 나의 상처에 조언을 건넬 수 없듯이, 나 역시 남의 상처를 쉽게 말할 수 없다. 절대 상대적일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죽던 날’이 남이 가진 상처를 위로할 순 없을 테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다독이는 마음을 작품을 통해 느끼신다면, 우리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다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물론 ‘내가 죽던 날’에서 현수와 세진이 처한 상황이 저와는 많이 다르지만, 뭔가 제 얘기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누구나 자신에겐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상처나 고통의 순간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내가 죽던 날’은 ‘얼마나 많은 익명의 사람들이 자신만의 상처를 갖고 있을까’ 생각하게 해준 작품이었어요. 저 역시 이 작품을 통해 많은 위안을 받았기에, 각기 다른 상처를 갖고 계신 관객분들도 후반부에 가서는 현수와 세진의 모습에서 자신을 보고 위로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이토록 ‘내가 죽던 날’에 대한 애착이 크다 보니 작품을 잘 완성시키고 싶은 욕심도 컸단다. 김혜수는 “’잘 해야 한다’는 생각과 ‘제대로 해야 된다’라는 마음이 함께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걸 영상으로 잘 재현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너무 겁 없이 한다고 했나 싶기도 했다. 글과 영상의 갭을 어떻게 메꿔야 할지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고 운을 뗐다.

김혜수는 “그래서 더 감독님 및 스태프분들과 많은 대화와 회의를 나눴다”며 “촬영 스케줄이 타이트했지만, 중간중간 시간이 날 때마다 의견을 모아봤던 것 같다. 또 속마음도 공유했다. 실제로 겁나고 두려운 감정들도 우리끼리는 솔직하게 이야기했었다”고 말했다.

‘내가 죽던 날’이 성공적으로 완성될 수 있었던 데에는 배우들의 힘도 컸다. 김혜수는 “작품을 만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작품을 통해 누구를 만나느냐도 큰 포인트인 것 같다. 좋은 인연을 만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연기를 잘 하는 좋은 배우를 만나는 건 배우로서 좋은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면에서 ‘내가 죽던 날’은 좋은 배우들을 만난다는 것부터 설렘을 느낀 작품이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김혜수는 작품 속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이정은과 김선영에 대해 “두 분 모두 너무나 좋은 배우이자 좋은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다. 지나고 나니까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특히나 정은 씨는 무척 따뜻한 사람이었다. 마음으로 날 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런 배우분들을 만난 게 내게 있어 큰 축복이라 생각한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이미 수차례 언급한 적 있지만, 순천댁(이정은)과 마지막 만남이 이뤄지는 신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멀리서 정은 씨가 걸어오더니 내 손을 잡는데 그 순간 배우 이정은과 김혜수가, 순천댁과 현수가 함께 만나는 기분이 들었어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감정이 느껴지는 듯한 기분이었죠. 원래 감정이 그렇게 올라오면 안 되는 신인데, 서로가 계속해 눈물만 흘렸고 스태프분들은 저희를 기다려 주셨어요.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느껴지는,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그런 순간을 일을 통해서, 또 작업장에서 느꼈다는 게 경이로웠어요.”


김혜수에게 ‘내가 죽던 날’로 겪은 특별한 경험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김혜수는 몇몇 배우가 자신 때문에 ‘내가 죽던 날’ 출연을 결정했다는 얘길 듣고 깜짝 놀랐다고 고백했다. 김혜수는 “언론시사회 자리에서 감독님이 그 얘기를 하는 걸 듣고 처음 알았다. 감사하면서도 또 너무 놀랐다. 물론 내게도 함께 연기를 하고 싶고, 늘 존경하는 선배님이 계시지만, 내가 그런 대상이 됐다는 게 신기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혜수는 “물론 누군가의 ‘워너비’가 된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책임감을 가져야겠다는 이유로 내 본질적인 모습 자체를 바꾸는 것 역시 부자연스럽고 이질적이라고 본다. 일부러 귀를 막는 건 아니지만, 그런 호칭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김혜수는 35년 동안 연기를 하며 자연스레 누군가의 롤모델이자 ‘워너비’가 돼 있었다. 하지만 그가 애초부터 배우가 되길 꿈꾼 건 아니었다. 김혜수는 “어릴 땐 꿈이 계속 바뀌지 않냐. 하지만 배우를 꿈꾼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처음엔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데뷔 이후엔 사회부 기자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주변에 어떠냐고 물어본 적도 있다”며 “우연치 않게 배우가 됐지만, 지금까지 이런 경력을 이어올 수 있던 건 그저 현재에 충실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냥 내 역할을 했을 뿐이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일들과 사람들에게 충실했었다”고 전했다.

그렇기에 이제 50대가 돼 새로운 시작을 앞둔 시점에서도 김혜수는 나이를 크게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달라지는 것 없다”고. 김혜수는 “기사에 언급될 때나 나이를 체감하는 것 같다. 숫자에 많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또 30대, 40대, 50대라고 특별한 각오를 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때그때 내가 처하는 상황에 맞춰 알맞게 반응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50대를 처음 살아보지만, 달라지는 건 없어요. 그저 현재에 충실할 뿐이에요. 나이가 달라져도 그건 똑같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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