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김기덕 감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외신에 의해 일제히 보도됐지만, 국내 영화계는 어떤 공식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러시아 매체들은 지난 11일 고 김기덕 감독이 이날 라트비아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일괄 보도했다. 향년 60세. 외교부 역시 사망 소식을 확인했다. 주 라트비아대사관은 "우리 국민(김기덕 감독)의 사망 사실을 접수한 후 현지 병원을 통해 관련 경위를 확인했다”면서 “현재 국내 유족을 접촉해 현지 조치 진행 사항을 통보하고 장례 절차를 지원하는 등 영사 조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외 3대 영화제 본상을 휩쓴 감독이 사망했음에도 불구, 국내 영화계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와 활동했던 배우, 동료들 역시 추모글을 올리지 않고 있다. 사망 소식이 알려진 당일 부산국제영화제 전양준 집행위원장이 "비보를 접했다"라며 "한국 영화계에 채울 수 없는 크나큰 손실이자 슬픔이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애도의 뜻을 밝힌 게 전부다.

한국영화감독조합 측도 "김기덕 감독은 조합 소속이 아니다"라며 "입장을 발표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유족의 입장을 통하지 않고서는 장례 절차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


영화계는 왜 김기덕 감독의 죽음에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문화예술인의 부고 소식은 고인의 넋을 기리기 위해 최대한 널리 알리는 것이 관례다.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 추모 물결이 일고, 장례 일정과 발인일, 장지 등이 공개된다. 평소 고인을 따랐던 이들을 위한 추모 공간이 따로 마련되고 생전 고인이 남긴 작품들을 기리는 평가도 다시 시작된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의 죽음에는 애도의 뜻은 커녕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 2018년 불거진 미투 논란의 후유증으로 보인다. 그 해 MBC ‘PD수첩’ 제작진은 ‘거장의 민낯’ 편을 통해 김기덕 감독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여배우들의 증언을 방송했고, 이 내용은 영화계에 큰 충격을 선사했다. 함께 가해자로 지목된 배우 조재현은 현재까지 비난을 받으며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김기덕 감독은 모든 것이 허위 주장이라며 MBC를 포함한 배우를 상대로 10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배우의 증언이 구체적인데다 여러 정황들이 드러났기 때문. 법원 역시 MBC의 손을 들어주며 김기덕 감독은 국내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상대에 대한 무고 및 손해배상 소송 등 많은 반격을 취했지만 모두 패소했다. 최근인 11월에도 항소 의지를 밝혔지만 타격을 받은 신뢰도를 회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미투 논란 후 김기덕 감독은 국내와의 인연을 거의 끊다시피 했다. 해외로 발길을 돌린 것도 이 때문. 김기덕 감독은 논란 후 유럽을 포함한 러시아 등 자신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나라에서만 작업을 해왔다. 최근에는 한국을 완전히 떠나 라트리비아 영주권을 얻으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유작이된 '디졸브'는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어로 촬영한 작품이다.

추모를 자제하는 영화계의 침묵은 그로부터 폭력과 성폭력을 당했다는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존중일 것이다. 고인을 애도할 수는 있지만 공개적으로 업적을 기리는 것은 부적절 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생전 '한국 영화계의 이단아'라는 타이틀을 벗으려 노력하던 고 김기덕 감독은 성폭력 가해자라는 불명예 속에 타지에서 홀로 눈을 감았다. 쓸쓸한 죽음을 맞았지만 영화계는 애도를 표하지 않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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