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미국 제작사가 제작하고, 미국인 감독이 연출한 '미나리'는 왜 미국에서 외국어 영화로 분류된 것일까.

오는 2021년 2월 개최 예정인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측이 미국 각종 영화 시상식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미나리'를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려 논란에 휩싸였다.

골든글로브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가 주관하는 시상식으로 오스카, 아카데미와 더불어 보수적 색채를 지닌 시상식이다. 권위를 지닌 미국 영화 시상식 중 가장 먼저 열리기에 골든글로브 입성은 이 보다 한 달여 뒤 개최되는 아카데미의 전초전이라 불린다.

'미나리'는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가 수장으로 있는 제작사 플랜B의 영화다. 메가폰을 잡은 건 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삭 정(한국명 정이삭)이다. 골든글로브는 영어 외 언어가 50% 이상인 영화는 외국어 영화로 분류한다는 내부 규정을 이유로 오스카 유력 후보로 지목된 '미나리'를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리는데 그쳤다.

인종차별 논란을 제기한 건 현지 매체들과 할리우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계 미국인 감독들이다.

미국 문화잡지 이스트는 "과거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도 영어 비중이 30% 정도밖에 안 되지만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며 "'미나리'를 작품상에서 배제한 건 인종차별"이라고 꼬집었다. 또 중국계 미국인 룰루 왕 감독은 자신의 SNS에 "나는 올해 '미나리'보다 더 미국적인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이는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이자 미국에서 아메리칸드림을 추구하는 이야기"라며 "오직 영어 대사만으로 미국 영화인지 여부를 가르는 구식 규정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비판했다.

캐나다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에 출연 중인 아시아계 배우 앤드루 풍도 목소리를 냈다. 그는 "미국에서 촬영하고 미국인이 출연하고 미국인이 연출하고 미국 회사가 제작한 아메리칸드림에 대한 영화가 어쨌든 외국 영화라니 슬프고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미국 드라마 '로스트'에 출연한 배우 대니얼 대 김 역시 “미국이 고국인데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미국 문화인사들의 비판은 골든글로브가 과거 몇 차례 비영어권 영화들을 작품상 후보에 올린 것에 기인한다. 실제로 맥시코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바벨'은 골든글로브 작품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의 외국어 영화상 분류 기준이 명확치 않은 것이다. 게다가 '미나리'는 한국인과 한국어가 등장할 뿐 '아메리카 드림'에 대해 얘기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최근 '미나리'는 미국 현지 영화 시상식에서 각종 수상 행렬을 이어가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지난 21일 리 아이삭 정 감독이 미국 플로리다비평가협회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받았고, 배우 윤여정은 선셋필름서클어워즈, 보스턴·로스앤젤레스(LA)비평가협회에서 잇따라 여우조연상을 수상했하며 오스카 입성에 대한 기대감이 더해진 상황이었다. 이런 여론은 한국 언론의 호들갑이나 설레발이 아닌 미국 영화계 내부에서 형성된 반응이라 더욱 주목을 받았다.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에 입성해 4관왕을 휩쓴 배경에는 현지 비평가와 언론을 비롯한 대중의 긍정적 평가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기생충'의 진짜 쾌거는 한국 영화 최초의 오스카 수상을 넘어 미국 보수층의 장벽을 넘은 데 있었다. 하지만 골든글로브는 애매한 내규를 이유로 제2의 '기생충'으로 주목을 받았던 '미나리'를 사실상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동양 문화와 비영어권 자막에 대한 미국인의 편견과 거부감은 여전히 보수층에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생충'이 미국 문화 보수층의 장벽을 일부 허문듯 했지만 여전히 그 벽은 높기만 하다.

[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news@tv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