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강렬하지는 않지만, 볼수록 몰입하게 만드는 힘. 어떤 캐릭터라도 현실에 있을 것 같은 생동감을 지닌 연기의 힘. 배우 배두나의 아우라는 장르와 분량 상관없이 캐릭터의 서사와 감정을 온전히 관객에게 전달하는 힘이다.

지난 24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고요의 바다'(극본 박은교·연출 최항용)는 필수 자원의 고갈로 황폐해진 근미래의 지구, 특수 임무를 받고 달에 버려진 연구기지로 떠난 정예 대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배두나는 극 중 저명한 우주 생물학자 송지안을 연기했다.

배두나가 '고요의 바다'에 뛰어든 건 원작인 최항용 감독의 단편 영화 때문이었다. 그간 '클라우드 아틀라스' '센스8' '주피터 어샌딩' 등 할리우드 활동을 통해 SF 장르를 경험해봤던 배두나에게 한국에서 제작되는 SF는 다소 회의적이었다. 할리우드의 반도 안 되는 제작비로 SF 장르물이 구현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최항용 감독의 단편 영화를 보고 어쩌면 한국형 SF 드라마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확신이 들었단다.

특히 SF 장르지만 캐릭터의 감정선을 따라간다는 점도 배두나의 매료시켰다. 배두나는 "배우의 얼굴과 심리를 따라가는 묘사라면 제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하게 됐다"라고 했다.

배두나는 "1회에 자극적인 걸로 시선을 잡고 가는 작품이 많지 않나. 저희는 그런 공식을 따라가지 않았다. 우리 작품은 밖은 고요하지만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걸 보는 거지 외부에서 파도가 치는 걸 보는 드라마는 아니다"라고 했다.

극 중 지안은 발해 기지에서 죽은 언니로 인해 특수 임무를 맡게 된다. 임무보다는 발해 기지에서 발견한 여러 의문점과 언니의 죽음에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움직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극의 서사와 감정을 끌고 가는 캐릭터인 만큼 배두나의 해석이 궁금해진 터. 이에 대해 배두나는 "제가 방향성을 정해놓으면 작가, 연출가님이 써놓은 것들이 틀어질 수 있지 않나"라고 작품에 쓰인 그대로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그렇다고 배두나의 해석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배두나는 대본 속 지안의 사회성과 사교성은 없지만 자신의 분야에서는 비상한 면모들을 감독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배두나는 "감독님을 보면 한 번도 자외선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처럼 얼굴이 하얗다. 또 은은한 오타쿠 같은 느낌이 있다. 그분을 보면서 은둔형 외톨이 정도만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언니의 사고 이후 진실은 알려주지 않고 마치 피해 보상이라는 듯 급수 등급을 올려주겠다는 윗선의 제안을 받는 장면에서 캐릭터의 영감을 받기도 했다. 배두나는 "그 장면을 촬영 첫날 찍고 너무 충격을 받았다. 너무 큰 상처여서 지안의 톤 앤 매너나 인간을 바라보는 모든 것은 그 신 하나로 시작됐다"라고 말했다.

지안이 작품의 서사와 감정을 이끌어가는 캐릭터였기 때문에 때때로 강박에 짓눌리기도 했다고. 배두나는 "제가 시청자들을 따라오게 해야 하는 포지션에 있는 캐릭터였기 때문에 감정선을 놓치면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매 신마다 그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라고 했다.

많은 배우들의 SF 작품의 어려움으로 장르 특성상 CG를 위해 아무것도 없는 그린 스크린 앞에서 실제를 상상하며 연기해야 하는 점을 꼽는다. 그러나 배두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미 여러 작품을 통해 상상하며 연기를 한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배두나는 "제가 2011년도에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하기 전에는 일상 연기를 주로 배우고 해왔다면 그때부터 해외 작품을 하면서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연기에 대해 훈련이 돼 있었다"면서 "'고 요의 바다는 이미 많이 구현돼 있었다. 많은 일들이 발해 기지 안에서 갇혀서 있기 때문에 그런 어려움은 다른 CG 영화들에 비해서 없었다. 연기하기 편했다"라고 했다.

다만 처음 입어 본 우주복의 무게감은 벅차기는 했다. 배두나는 "우주복의 무게감이 너무 무겁기는 했지만, 그건 고생 축에도 못 낀다. 다른 작품 하면서 양궁도 해보고 탁구도 해보고 격투기도 해보고 몸 고생하는 역할을 많이 해봐서 그런지 이 정도는 괜찮았다"라고 했다. 오히려 우주복을 입고 연기할 수 있어 감사하기까지 했다고. 배두나는 "배우는 한 번 살면서 여러 가지 인생을 살지 않나. 감수해야 할 부분도 많지만 다양한 인생을 살아볼 수 있다는 순기능이 있다. '살다 살다 우주복을 입다니'라는 희열이 있었다"라고 전했다.

좋은 동료들과 함께 했기 때문에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는 배두나다. 배두나는 "저희가 괴로우면 괴로울 수 있는 촬영이었는데 사람들이 너무너무 좋은 사람들이었다. 배우들과의 '케미'기 너무 좋았다. 물론 매번 신나게만 찍지 않았을 것 아니냐. 그런데도 서로 웃겨주려는 촬영장이었다"라고 함께한 배우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저는 '터널'을 찍었을 때도 그 이후에도 몇 년을 터널 지나갈 때마다 무서워서 트렁크에다가 물을 한 박스 씩 싣고 다닐 정도로 무서워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작품으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우리에게 꼭 필요하지만 펑펑 쓰는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했어요. 샤워할 때도 물을 펑펑 쓰다가 드라마 보고 나서 조심하는 것도 있죠. 작품이 가지고 있는 순기능이 좋아요."

'고요의 바다'를 끝낸 배두나는 어김없이 또 쉼 없이 달릴 예정이다. 지칠 법도 하지만, 연기 자체가 배두나에게는 힐링이라고. 배두나는 "저는 어느 순간부터 작품에서 제가 몸을 사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더 많이 부딪히고 더 많은 경험을 하는 것이 결국은 나의 전투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될 수 있으면 많은 경험을 하며 경험치를 쌓고 싶다"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것도 좋지만, 국내 작품 활동에도 소홀히 하고 싶지 않다는 배두나다. 그는 "해외에서 느끼지 못하는 재미를 국내 작품을 하면서 느끼기도 한다. 제 자신에게 힐링이 된다. 우리 문화를 공유하는 현장에서 일하는 게 재밌다. 또 나아가서 새로운 창작자를 경험하는 것도 재밌다"라고 했다. 장르나 역할의 구분을 두지 않고 좋은 작품이라면 마다하지 않겠다는 배두나의 열정이 감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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