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K-컬처, 달라진 위상을 넘어 이제 시장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다. 박찬욱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올해 열린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각각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필름 마켓 바이어들의 분위기도 뜨겁다. 같은 해 칸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가 동시에 트로피를 품에 안은 건 이번이 처음인데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영화의 인적 교류에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수상 소감이다. 박 감독은 28일(현지시각)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폐막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이같이 밝혔다. 그와 칸의 인연은 남다르다. 한국영화의 불모지였던 칸 영화제에서 그는 2004년 ‘올드보이’로 심사위원 대상을 받는 이변을 일으켰다. 이후 2009년 ‘박쥐’(심사위원상 수상), 2016년 ‘아가씨’에 이어 4번째 칸 진출작인 ‘헤어진 결심’으로 감독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박 감독의 수상 소감에서 한국을 넘어 아시아 영화가 세계인들과 소통하길 원하는 오랜 소망이 느껴진다.

수 년간 칸 영화제와 교류하며 신뢰를 쌓은 덕일까. 박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칸에서 공개된 한국 영화 중 가장 반응이 뜨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칸 영화제에 따르면 경쟁 부문 21편 중에서도 스크린 데일리 평점(3.2점)이 가장 높은 편이었다. 이는 황금종려상 수상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지만 박 감독은 “평점이 수상 결과로 이어지진 않는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감독상 수상 전 박 감독은 영화제를 통해 “제 영화에 나온 중국인 배우, ‘브로커’의 각본·연출의 일본 감독 등 아시아의 인적자원과 자본이 교류하는 자체가 의미있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의 염원이 닿은 것인지 한국 영화에 대한 필름 마켓의 대우는 확연히 달라졌다. K-컬처 아이코닉 방탄소년단부터 전세계를 휩쓴 ‘오징어게임’까지 한국 콘텐츠에 대한 신뢰감이 견고해졌고 아카데미부터 베를린, 칸까지 한국영화들이 주요영화제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칸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상영관은 관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아이유 주연의 ‘브로커’ 상영관은 아이유의 앨범을 들고 온 해외 관객들이 줄을 잇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아이유 본인도 놀라며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모습이 국내 취재진에 포착되기도 했다. K팝에 대한 관심이 한국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유수의 해외매체들은 일찌감치 한국 영화의 선전을 점친 듯 하다. 칸영화제가 열리기 전 미국 영화 전문지 버라이어티느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의 배급을 맡은 CJ ENM 이미경(미키 리) 부회장의 실적을 부각하는 기사를 실었다. 지난 3월 버라이어티는 이 부회장에 대해 “한국의 대중문화를 세계로 가져간 슈퍼 프로듀서”라고 소개했다.

이 같은 편상은 필름 마켓 내 한국 영화 판매 실적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CJ ENM에 따르면 올해 칸의 필름마켓 구매 경쟁은 가장 치열했다. ‘헤어진 결심’은 지난 24일 기준 '기생충'이 보유한 한국영화 최다 해외판매 기록(205개국)에 근접한 192개국에 선판매됐다. 먼저 북미, 영국, 터키, 인도 등을 사업권으로 두고 있는 Mubi社, 프랑스의 Bac Films社, 일본의 Happinet Phantom Studios社, 독일의 Koch Films社,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포괄하는 Nonstop社, 호주와 뉴질랜드 권역의 Madman社, 베네룩스 3국 권역의 Cineart, 이탈리아의 Lucky Red社 등에서 구매를 확정했다.

CJ ENM 박정민 해외배급팀장은 "'헤어질 결심'의 경우 박찬욱 감독에 대한 높은 기대감과 높아진 한국영화에 위상에 시너지가 더해지며 CJ ENM이 해외 세일즈를 진행한 영화 가운데 최고 수준의 금액으로 판매가 진행됐다"라며 “이들 회사들이 칸 국제영화제 이후 나라별로 맞춤형 배급 및 마케팅 전략을 짠 후에 최적화된 개봉일을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배우 송강호에게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안겨 준 '브로커' 역시 171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2009년 박찬욱 감독과 ‘박쥐’로 함께 칸을 찾았던 송강호는 ‘브로커’로 한국 배우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아시아 배우가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2000년 홍콩의 양조위, 2004년 일본의 야기라 유야에 이어 세 번째다.

‘브로커’ 역시 필름 마켓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헤어질 결심’ 판매수 보다는 적지만 171개국 주요국에 작품을 판매했다. ‘헤어질 결심’, ‘기생충’ 수치에 적은 편이지만 사실상 주요국 대부분에서 극장 상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비록 황금종려상은 놓쳤지만 이번 칸 영화제는 한국 영화가 주름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우 이정재는 감독 데뷔작인 ‘헌트’로 칸 영화제의 시작을 장식했고, 뒤를 이어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가 의미있는 성과를 내놓으며 한국 영화의 위상을 높였다.

[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news@tv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