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오랜 만에 만난 배우 류준열(36)에게서는 성장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스크린 안에서 드러난 배우의 비약적 성장은 프레임 밖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배우처럼 안 생겼다’는 누군가의 눙에 맞장구를 치는 그의 모습에서 제법 '짬밥 좀 먹은 배우'의 내공이 느껴진다. 배우는 작품과 함께 성장한다는 걸 새삼 보여주는 그다.

오는 28일 개봉을 앞둔 영화 ‘올빼미’(감독 안태진, 제작 씨제스엔터테인먼트)는 낮에는 볼 수 없고, 어두운 곳에서는 볼 수 있는 주맹증을 앓는 맹인 침술사 경수(류준열)가 소현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벌이는 하룻밤 사투를 그린 사극 스릴러다.

인조 실록에 기록된 소현세자의 미스테리한 죽음을 바탕으로 경수라는 상상의 인물이 탄생했다. 완벽히 허구의 인물이지만 결코 허무맹랑하지 않다. 실제 역사가 남긴 의문의 틈을 그럴싸한 상상으로 파고들었다. 맹인이지만 소현세자의 죽음을 유일하게 목격한 경수의 하룻밤이 선사하는 긴장감이 꽤 팽팽하다.

“시나리오가 80페이지에 불과했는데, 짧지만 몰입도가 상당했고, 재밌었어요. 어둠 속에서는 볼 수 있다는 주맹증이라는 장애가 상상의 소재가 아니라 실제한다는 걸 알고 이 작품은 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죠. 주맹증을 앓는 몇몇 분들을 만났는데 그 분들 눈빛이 마치 꿈을 꾸는 듯 해 인상적이었어요. 그 눈빛을 영화 안에 녹이려 했죠.”

경수는 볼 수 없지만 볼 수 있는 어려운 캐릭터다. 기존의 시각 장애인 연기와 달라야 했지만, 관객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맹인 연기에 대한 틀을 훌쩍 넘는 시도는 공감을 얻기 힘들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더 어려움이 있었다고. 고민 끝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중점을 둔 연기가 아니라, 오히려 눈으로 많은 걸을 얘기하는 연기에 중점을 뒀다.

류준열은 ‘올빼미’를 촬영하는 중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초점을 흐리게 한 상태에서 수 개월 간 연기를 하다 보니 실제로 시력이 전과 같지 않은 현상을 겪은 것이다. 놀란 마음에 안과 전문의인 지인에게 연락을 했고, 초점을 맞추는 능력이 일시적으로 떨어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현재는 나아졌지만 스스로도 신기한 경험이었을 터. 그만큼 경수라는 캐릭터에 류준열이 몰입했음을 보여준다.

“앞을 못 보는 경수가 소현세자에게 ‘우리 같은 사람은 보고서도 못 본 척 해야 한다’고 말하는 대사가 있는데 전 경수의 핸디캡이 평범한 사람들의 처지, 먹고 살기 위해 참고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의 애환을 말하는 어떤 상징 같은 거라고 봤어요. 그런데 경수는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내가 보았습니다’라고 용기를 내죠. 사사건건 모든 일 마다 자기가 다 보았다고, 자기가 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때로 정말 용기내야 할 때 말하지 않죠. 사실 궁에서 경수는 편견에 의해 너무나 하찮은, 신경 쓸 가치 조차 없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누구보다 용기가 있는 사람이고, 그런 경수를 연기하면서 저도 느낀 바가 많았어요.”

류준열은 경수라는 인물을 만들어가며 많은 것을 배운 듯 했다. 모든 작품이 배움을 남기지만 ‘올빼미’는 유독 편했던 작품이다. 극중 인조 역을 맡은 유해진과는 세 번째 호흡이고, 조명팀은 자신의 필모 절반 이상을 함께 한 이들이라 특별하다.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소중한 지 새삼 느끼게 해준 작품이 바로 '올빼미'다.

특히 ‘준열아, 너 주변에 이런 얘기 해주는 사람 없지?’라며 많은 것들을 얘기해 준 유해진과의 인연은 소중하다. 그는 유해진이 ‘어떤 조언을 해줬냐’는 질문에 “구체적인 건 영업 비밀이라 말 할 수 없다.”며 웃어 넘겼다. 그 만큼 유해진의 조언 하나하나 진심으로 듣고 있다.

‘올빼미’ 언론시사회에서 유해진은 류준열을 향해 “잘 서 가고 있다. 기둥이 단단해졌다”며 후배인 류준열의 성장을 기뻐했다. 덕담을 들은 류준열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는데, 아마도 기쁨과 성취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작품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클 수 밖에 없다.

그는 다양한 필모를 쌓아가는 비결에 대한 질문에 “고정된 이미지가 없어서”라고 답했다. 제작자나 감독들을 만날 때 마다 공통적으로 듣는 말이 “생각과 다르다”라는 말이라는 것. 저 마다 자신에 대해 갖는 생각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그 다름 덕에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고. 연이어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그 어느 때 보다 감사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좀 거창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배우는 시대를 반영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맞는 말 같아요. 배우라는 직업으로 단순히 돈벌이만 할 게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는 작품을 하고, 그 가치를 반영하는 연기를 하는 일이요. 다소 억지스럽게 철저히 관객의 입맛을 맞춘 영화가 있다고 했을 때, 그 역시도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도 그 안에 있는 사람이고요. 영화가 나올 때 관객들에 대한 저의 예상은 정말 하찮은 것이라 감히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극장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신 분들이 다시 극장가로 많이 돌아와 주셨으면 좋겠어요.”

기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류준열의 대답이다. 그런 류준열에게 '눈 뜨고 일어나니 스타가 됐다'거나 '응팔 신데렐라'라고 말하는 건 이제 실례다. 연기는 물론 제작사와 관객의 입장에서도 작품을 바라볼 수 있는 배우로 성장했다.

그는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으면서도 볼 수 있는 경수를 통해 넓고 깊은 눈을 갖게 됐다. "눈으로 말하려고 했는데, 작아서 다 표현됐을지 모르겠어요"라고 겸손히 말하는 류준열의 눈이 유독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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