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13년 만의 기다림이 끝났다. 마침내 한국어로 노래하는 유령을 만나게 된 한국 관객들의 설렘이 인산인해를 이룬 극장 로비에서부터 느껴졌다. 새로운 도전에 나선 조승우는 뮤지컬계 고전으로 손꼽히는 '오페라의 유령'을 만나 또 한 번 배우로서의 진가를 입증했다.

세계 4대 뮤지컬로 꼽히는 '오페라의 유령'은 19세기 파리 오페라하우스를 배경으로 흉측한 얼굴을 흰 가면으로 가린 채 오페라하우스 지하에 숨어 사는 천재음악가 유령과 프리마돈나 크리스틴, 젊은 남작 라울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역작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생각해 줘요(Think of Me)' '바램은 그것 뿐(All I Ask of You)' 등 주옥같은 넘버들이 포진해 있는 뮤지컬계 고전이자 명작이다. 1986년 영국 런던, 1988년 미국 뉴욕 초연 이후 30년이 넘도록 사랑받아오고 있다.

국내 뮤지컬계에서도 '오페라의 유령'은 시장 전체의 저변을 넓힌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2001년 한국어 버전 초연이 24만명 관객을 동원하며 뮤지컬 산업의 전성기를 연데 이어 2009년 두 번째 한국어 공연이 33만명 관객을 동원하는 등 역대급 기록을 세웠다. 이번 공연은 역대 세 번째 한국어 공연이자 13년 만의 귀환으로 뮤지컬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왔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제작비가 전반적으로 상승함에 따라 VIP 좌석 티켓 가격이 19만원을 돌파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이에 따른 갑론을박이 오가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긴 기다림과 높은 티켓 가격으로 인한 기대감을 만족시키는 완성도의 공연이었다.

고전의 가장 큰 무기인 익숙한 넘버와 이야기가 만족도를 높이고, 화려하다 못해 황홀한 무대 예술이 볼거리를 담보했다. 1톤 규모의 샹들리에가 1층 객석 절반을 거치며 곤두박질치고, 수백 개의 촛불이 밝힌 신비로운 지하감옥과 오페라하우스 옥상에서 하강하는 천사상 등의 장치가 30여년 뒤에도 고스란히 재현돼 고전의 매력을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도 월드 투어 공연에서는 이동의 편의성을 위해 무대 장치가 다소 생략되지만 이번 한국어 공연은 단일 프로덕션으로, 초연 오리지널 무대와 동일한 세트를 제작해 더욱 클래식하고 웅장한 무대 효과를 경험할 수 있었다. 220벌에 달하는 의상도 이번 공연을 위해 새롭게 제작돼 빛을 발하고, 또한 전 시즌보다 한결 자연스러워진 구어체 번역이 보는 이들을 한순간에 파리 오페라하우스로 끌어들였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송원근 손지수

압권은 조승우의 연기였다. 전작에 비해 한층 단단해진 발성이 유령의 카리스마와 분노를 적절히 드러냈다. 성악을 기반으로 한 배우가 아니기에 이번 '오페라의 유령' 출연은 다소 도전적인 행보였으나 충분히 그의 이름값을 다해낸 무대였다. 압도적인 성량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나 때로는 탁성이 섞인 고함을, 때로는 애절한 속삭임을 섞어낸 가창이 되려 유령의 감정을 깊게 담아내는 도구가 됐다.

특히 유령이 크리스틴의 사랑을 갈구하고 기형적인 외모로 인한 외로움을 드러내는 구간에서 조승우가 펼치는 연기는 관객들의 강한 연민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자칫 유령의 비뚤어진 사랑만 강조돼 개연성이 떨어질 수 있는 스토리의 중심을 잡으며, 관객들을 순식간에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버리는 호소력 짙은 연기력이 단연 돋보였다.

성악가 손지수는 흠잡을 곳 없는 노래로 화려한 뮤지컬 데뷔 신고식을 치렀다. 유령을 향한 연민, 라울을 향한 사랑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하는 크리스틴의 복잡한 심경을 완벽히 그려내기에는 연기력이 여물지 않았으나, 탄탄한 경력을 소유한 소프라노답게 화려한 고음, 아름답고 서정적인 아리아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뮤지컬 주연으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히 입증했다.

또한 송원근 라울의 활약은 그의 재발견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귀공자다운 매력과 크리스틴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뛰어드는 라울의 심지 곧은 사랑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안정적인 가창력이 더해져 손지수와 펼치는 사랑의 아리아, 조승우의 유령과의 대립을 잘 그려냈다.

이밖에도 유령 출신의 배우 윤영석이 연기한 오페라하우스 운영자 무슈 앙드레, 이상준이 연기한 공동 운영자 무슈 피르맹의 능수능란한 호흡은 물론, 냉철한 카리스마의 마담 지리를 연기하며 변신에 나선 김아선, 프리마돈나 칼롯타를 능숙한 연기로 소화해 낸 이지영 등 믿고 보는 배우들의 조화도 돋보였다.

'오페라의 유령'은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6월 18일까지 공연한 뒤 7월 서울 샤롯데씨어터로 무대를 옮겨 막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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