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무너진 세계 속 분열되는 인간 사회와 커지는 이기심으로 인해 벌어지는 예측 밖의 사고들, 아포칼립스 장르의 영화에선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들이다. 그리고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런 아포칼립스 장르의 매력을 제대로 담아내며 막이 내린 뒤에도 관객들을 끝없이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든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냐'고.

9일 개봉하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제작 클라이맥스 스튜디오)는 대지진으로 하루아침에 폐허가 된 서울에서 멀쩡하게 남은 단 하나의 건물, 황궁 아파트에 모여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주민들은 처음엔 영탁(이병헌)을 중심으로 세워진 규칙 아래 그야말로 유토피아와도 같은 터전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안에서도 의견이 충돌하며 갈등의 골은 깊어진다. 그리고 탄탄한 줄로만 알았던 황궁 아파트에는 점차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크게 아포칼립스 장르에 속하는 영화다. 단어 그대로 세계의 파멸 및 멸망을 주제로 한 장르로, '부산행' '해운대' 등의 재난 영화 역시 아포칼립스 장르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해당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콘크리트 유토피아' 속 서울은 초대형 지진으로 인해 쑥대밭이 되고, 수백만 서울 시민은 하루아침에 자신의 터전을 잃는다. 극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위험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거나 그들의 물건을 훔치는 등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일들을 하기 시작하며 심지어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범죄까지 저지르기도 한다.


사실 이런 아포칼립스 장르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담고 있는 이야기가 신선하진 않을 수도 있다. 한정된 자원과 공간으로 인해 변해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담은 작품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수없이 많기 때문. 다만 이걸 제대로 낸 녹여낸 작품은 많지 않다. 기가 막힌 반전을 노리다가 헛발질을 하는 경우도 있고, 해피엔딩으로 갑작스레 노선을 바꾸려다 전복할 경우도 있는데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포칼립스의 본질은 제대로 지키면서 그들이 갖고 있는 색깔도 2시간 10분의 러닝타임 동안 끝까지 끌고 간다.

여기에 누구나 공감할 법한 한국의 사회적인 문제를 녹여내 깊은 몰입감을 이끌어낸다. 깡통 전세, 부동산 사기, 아파트에 따른 계급 사회 등 현실 속 문제들을 저격하는 내용으로 절로 주민 중 하나가 된 것 같은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것. 심지어 인물 각자가 갖고 있는 사연들이 이해가 되고 공감할 만한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어 이들의 이야기에 막힘없이 몰입하게 만든다. 이를 담담하고 차갑게 담아냈다는 점 역시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장점 중 하나다. 만약 자극적이고 매운맛으로 그려냈다면 반감이 들었을 텐데 오히려 차분한 분위기가 현실감을 살리며 공감대를 자극한다.

몰입감을 높이는 데에는 배우들의 역할도 한몫했다. 특히 영탁으로 분한 이병헌의 열연이 인상깊다. 어딘가 모자라 보이다가도 서늘하고 광기 어린 눈빛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특히 극 중반부, 그가 마이크를 잡는 순간은 기대해도 좋다.

이런 현실적인 분위기 탓일까. 영화는 계속해 관객을 세계관 속으로 이끌며 자연스러운 과몰입을 유발한다. 또 영화는 관람하는 내내 머릿속에서 한 가지 질문을 맴돌게 한다. 만약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냐'라고. 크게 양측으로 나뉜 집단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계속해 질문하며 보는 이들을 시험에 들게 한다. 기자회견 당시 박서준이 언급한 것처럼 영화를 관람한 뒤 토론 나누는 걸 즐긴다면 올 여름 어떤 텐트폴 영화보다 좋은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텐트폴 영화 4강 라인업(밀수, 비공식작전, 더 문, 콘크리트 유토피아) 중 우세를 점한 건 '밀수'다. 빠른 속도로 관객을 쌓아가며 현재 400만을 목전에 두고 있다. 과연 4강 라인업 중에선 가장 늦게 개봉하게 된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13일 연속 독주 중인 '밀수'를 막아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