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기자의 엔터&비즈] 넷플릭스를 맞이한 한국 콘텐츠 시장은 지난 10년 간 강산 보다 더 많은 변화를 겪었다. 2016년 한반도에 발을 들인 글로벌 OTT기업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으로 방탄소년단에 머물던 한국 K콘텐츠의 저력을 확장시켰고, K콘텐츠는 세계가 주목하는 브랜드가 됐다.

‘킹덤’으로 시작해 ‘오징어 게임’으로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킨 한국 드라마는 ‘지옥’, ‘더 글로리’등 넷플릭스라는 굴지의 플랫폼을 통해 세계 시청자들의 인정을 받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콘텐츠의 몸값을 책정하는 하나의 기준이 됐다. 국내 제작사도 배우들도 오매불망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에 합류하길 바란다.

하지만 더 글로리, 영광은 넷플릭스의 몫일 뿐이다. 글로벌 OTT가 정착한 국내 콘텐츠 시장은 모든 날들이 흉흉해졌다. 앞날도 그러할 가능성이 높다. 상륙 10년, 국내 제작사들은 빈곤해졌고, 배우들의 몸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글로벌 기업의 자본이 휩쓴 K콘텐츠 시장에 토종 영세 제작자가 설 곳은 없다.

왜 창작 생태계는 ‘빈익빈 부익부’ 구조로 재편됐을까. 제작사는 더 이상 콘텐츠의 주인이 아니다. 넷플릭스의 정책에 따라 울고 웃는 하청업자로 전락했다. OTT 시대가 도래하기 전 국내 제작사들은 광고를 통해 수익을 창출했다. 여기에 해외 판권 판매, VOD 출시 등 IP 통해 부가 수익을 얻을 수 있었지만, 콘텐츠 시장의 중심이 OTT로 완전히 옮겨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토종 제작사는 IP를 보유하지 못해 이들이 지급하는 수수료에 만족해야 한다. ‘오징어 게임’ 시리즈로 돈을 번 건 한국이 아닌 넷플릭스 본사다.

경매에 참여하는 듯 한국 배우들의 몸값을 높여 놓은 것도 국내 제작사의 환경을 어렵게 만들었다. 코로나19가 출몰하기 전, 회당 1억 원 선에서 논의되던 국내 A급 배우들의 출연료는 2020년 무렵부터 회당 3~5억 원 선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로 OTT에 첫 진출한 배우 공유는 회 당 3억 원 가량을 받았다. 현재는 이를 크게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경쟁에 뛰어든 토종 OTT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어느 날’에 출연한 배우 김수현의 회당 출연료는 5억 원이었다. 사생활 논란으로 보류 중인 디즈니플러스 ‘넉오프’의 회당 출연료는 8억 원 선에 책정됐다. 불과 2~3년 사이 몸 값이 3억 가까이 오른 것이다. 넷플릭스가 만든 행운아의 상징, 배우 이정재의 ‘오징어 게임2’ 회당 출연료는 10억 원을 웃돈다. 제작사 사정이 어려워진들 이들의 몸값을 기존으로 돌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제작사들은 넷플릭스와 국내 1% 배우들의 주머니를 채우며 빈곤해지고 있다. 특히 중소 제작사는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가 상실돼 일회성 프로젝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장기적 역량 축적이 힘든 구조라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 살얼음 구조다. 결과적으로 콘텐츠의 수익은 글로벌 플랫폼이 독점하고, 제작자는 이를 뒷받침하는 기형적 생태계가 된 것이다.

기술이 시장에 혁명을 일으키고 시장의 중심이 되는 건 상식적인 일이다. 문제는 OTT 글로벌 기업의 존재 유무가 아니라 이들의 독과점을 견제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부재하다는 것에 있다.

넷플릭스의 ‘망 사용료’ 논란이 대표적이다. 넷플릭스는 한국에서 매년 수천억 원의 트래픽을 발생시키지만, 국내 인터넷망 사용료를 거의 지불하지 않는다. SK브로드밴드 등 국내 통신사들은 매년 수백억 원의 망 사용료를 지불하고 있음에도 정작 해외 기업인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는 사용료에서 자유롭다.

SK브로드맨드가 반발해 넷플릭스와 수년째 법적 분쟁을 이어가고 있고, 2023년 국회에서도 ‘망 이용대가 법제화’가 논의되었으나 글로벌 플랫폼들의 반발로 표류 중이다. 왓챠, 웨이브, 티빙 등 국내 OTT 사업자들은 넷플릭스라는 공룡과 싸우면서 망사용료라는 핸디캡까지 않고 있다. 이 불균형은 국내 플랫폼의 경쟁력 저하, 해외 플랫폼 의존 심화라는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글로벌 OTT 기업의 독과점은 국내 배우 매니지먼트 사업에도 직,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배우들의 출연료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면서 이들의 활동량은 전 보다 줄어드는 추세다. 일반적으로 소위 ‘A급 스타’ 배우들의 경우 출연료는 본인이 모두 가져가고, 광고 수익만 회사와 나누는 경우가 많다. 효율성, 수익성을 고려해야 하는 회사의 입장에서는 회의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다.

YG, 씨제스엔터테인먼트가 연달아 배우 사업에서 손을 뗀 이유도 이와 크게 무관하지 않다. 해당 사업은 대게 소속 배우들을 통해 드라마, 영화 등 새로운 콘텐츠 창출을 통한 IP(지적재산권) 수익에 기대를 건다. 하지만 OTT 글로벌 플랫폼이 시장을 독점하면서 통로가 막혔다.

넷플릭스는 한국에 상륙하며 분명 K-콘텐츠 시장에 르네상스를 일으켰다. 그런데 국내 콘텐츠 시장은 전 보다 가난해졌다. 을이 된 국내 제작사 처우 문제, 또 이들을 보호하는 법적 장치의 부재, 앞으로도 오를 배우들의 몸 값 그리고 불공정한 망사용료 문제까지 악순환이 장기화될 경우 결국 한국 콘텐츠 사업은 침체될 수 밖에 없다.

그 때는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는 더 이상 한국 시장에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들의 빈자리가 무엇으로 채워질지. 악순환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전망은 암담하다.

[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news@tv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