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토니어워즈 6관왕 금자탑을 세운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 박천휴 작가가 수상 소감을 직접 전했다.

지난 9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8회 토니어워즈에서 ‘어쩌면 해피엔딩’을 통해 작곡·작사상, 극본상을 수상한 박천휴 작가. 본지는 13일 박 작가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그간의 소회, 앞으로의 창작 계획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1947년 시작된 토니어워즈(Tony Awards)는 미국 연극·뮤지컬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시상식이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이번 토니어워즈 총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 극본상, 작곡·작사상, 최우수 무대디자인상, 연출상, 남우주연상까지 총 6개 부문을 수상했으며, 박 작가는 윌 애런슨 작곡가와 함께 작곡·작사상, 극본상을 공동 수상했다. 특히 한국 창작가 최초로 토니어워즈에서 수상에 성공하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21세기 후반 서울을 배경으로, 주인에게 버려진 구형 로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예기치 않게 감정적 유대감을 쌓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높은 완성도를 기반으로 해 2016년 초연 무대를 시작으로 다섯 차례 이상 재공연 되는 등 국내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국내 초연 이후 일본, 미국 무대에도 올랐으며, 특히 미국에서의 공연은 2020년 뉴욕 트라이아웃을 거쳐 2023년 10월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다. 일부 넘버가 한국 버전과는 다르지만 초연부터 영어 버전 개발을 병행한 덕에 원작의 매력을 고스란히 담아 현지 호평을 받았다. 현재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벨라스코 극장에서 상시 공연 중이다.

박 작가는 수상 소감을 묻는 질문에 “수상 이후 한 명의 창작자로서 생활이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다. 지난 10년 동안 긴 마라톤 같았던 서울과 뉴욕에서의 ‘어쩌면 해피엔딩’ 작업 여정을 좀 더 뿌듯하게 마무리한 것 같아 기쁘다”라고 소회를 전했다.

그는 “미국 영화계처럼, 공연계에도 ‘어워즈 시즌’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영화계가 비평가상, 에미와 골든글로브를 거치고 결국 피날레를 오스카 시상식에서 장식하듯 공연계 또한 비평가상, 드라마 리그와 드라마 데스크를 거쳐 토니 어워즈까지 거의 석 달에 가까운 ‘어워즈 시즌’동안 무수히 많은 행사와 시상식에 참석하며 부지런히 작품을 홍보해야 했다”라며 지난 3개월을 회상했다.

그는 “나는 브로드웨이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작가였으니, 내가 얼굴을 비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해서 내성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사람들을 만나 악수를 하고 다녔다. 그러니 토니 어워즈에 가까워질 무렵에는 석 달 동안 뛴 마라톤의 피니시라인에 다다른 느낌이었고 몸도 많이 지쳐있었다. 시상식 현장에 가면서는 피곤함과 설렘, 걱정과 흥분 등 모든 감정이 뒤섞인 기분이었다. 시상식 자체도 레드카펫부터 마지막 작품상 발표까지 총 일곱 시간이 걸렸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어쩌면 해피엔딩’에 대해 “나와 윌 애런슨이 함께 만든 첫 오리지널 스토리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원작이 없는 세계와 캐릭터들을 온전히 처음부터 만드는 일이 무척 즐겁기도, 두렵기도 했다”라며 작품이 가진 특별한 의미를 밝혔다. “관객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특별히 모르겠지만, 처음 쓰기 시작한 2014년부터 작년 가을 브로드웨이 개막까지, 계속해서 다듬으며 완성도를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애를 썼다. 그게 이유라고 생각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10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 윌 애런슨 작곡가와의 특별한 협업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박 작가는 “한국에서는 윌을 ‘작곡가’로 호칭하지만 윌은 지금껏 계속 저와 함께 극작을 해왔다. 미국에서는 저희 둘 다 ‘writer – 작가’ 즉, ‘쓰는 사람’이라고 호칭한다”라며 “음표든 활자든 구분하지 않고, 저희는 지금껏 계속 쓰는 사람들이었다. 비록 제가 먼저 생각한 아이디어라고 해도 함께 이야기를 짓고, 음악의 정서와 질감을 정하고, 매일 누구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협업한다”라고 설명했다.

박 작가는 “윌과는 협업자이기 전에 17년째 매우 가까운 친구 사이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나 정서에 비슷한 면이 많다. 서로의 예술관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믿음을 바탕으로 하다 보니, ‘내가 할 일’, ‘네가 할 일’을 구분하지 않고 늘 매우 가깝게, 유기적으로 함께 작업한다. 작업의 지난함과 고통, 즐거움, 그리고 한 작품을 끝냈을 때 느껴지는 성장도 거의 매 순간 함께해 오고 있다”며 견고한 파트너십에 대해 이야기했다.

수 년 간의 준비 기간 끝에 마침내 브로드웨이에 입성하게 된 ‘어쩌면 해피엔딩’이다. 박 작가는 한국 공연과 브로드웨이 공연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에 “한국 공연과 규모가 다른 만큼 연출과 무대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모두 오랫동안 수정 작업을 거치며, 최대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한 시도였다”라고 설명했다.

박 작가는 “한국은 무대전환이 거의 없는 반면 브로드웨이 공연에서는 매우 많은 무대전환과 효과가 쓰인다”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이유로 한국보다 배우의 숫자와 오케스트라의 악기 숫자 등이 조금씩 더 늘어났고, 한국버전에는 암시만 되고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던 장면을 브로드웨이 버전에서는 추가하거나 반대로 축약하거나 생략한 대사, 넘버도 있다고 말했다.

스물다섯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지만, 그와 윌 애런슨 작곡가의 작품들은 대부분 한국을 배경으로 한다. ‘어쩌면 해피엔딩’ 또한 미래의 가상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박 작가는 한국을 배경으로 한 이유에 대해 “작가로서 저에게 가장 친숙한 세상과 정서를 이야기로 만들고 싶다는 자연스러운 이유였다”라고 말했다.

“아직도 영어를 할 때 종종 한국식 액센트가 나옵니다. 뉴욕에 오니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훨씬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요. 저와 윌이 만든 뮤지컬 ‘일 테노레’의 1930년대, ‘고스트 베이커리’의 1970년대를 통해, 한국 관객들에게는 친숙하면서도 묘하게 낯선 질감의 세상을 선보이고 싶었고, 해외 관객들에게는 낯설지만 묘하게 공감되는 세상을 선보이고 싶다 생각했습니다.”

한국인의 정서를 품은 작품들을 안고, 박 작가는 계속해 창작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개막한 신작 ‘일 테노레’와 ‘고스트 베이커리’의 재공연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며, 아직 발표 되지 않은 TV 드라마 프로젝트도 하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윌 애런슨 작곡가와 함께 작업한 ‘일 테노레’와 ‘고스트 베이커리’ 모두 해외 진출 계획이 있다고. 박 작가는 “우선 영어로 가사와 대본 수정 작업을 할 계획이고, 뉴욕 현지에서 제작자와 연출 등 좋은 파트너를 찾아야 하는 복잡한 작업들이 남아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박 작가는 지난해 그의 연출 데뷔작이었던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를 언급하며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의미있는 작품을 번역하고 연출해서 한국 관객분들에게 선보이는 일도 계속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몇 년 전 이야기를 완성해 놓은 단편영화가 하나 있는데, 뉴욕을 배경으로 한 한국인 커플의 이야기다. 지금까지 공연에 더 몰두하느라 계속 미뤄뒀는데,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충동이 희미해지기 전에 이 영화를 꼭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다”라며 단편영화 계획도 밝히는 등, 계속해 창작의 불꽃을 태우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박 작가는 “그저 어떠한 이야기를,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충동과 의지가 계속 되는 한 꾸준하고 진중하게 작업을 이어가는 창작자이고 싶다”라는 소망을 전했다. “평생 서울과 뉴욕에서 보낸 시간이 이제 거의 50대 50에 가까워지고 있다. 두 문화와 언어를 오가는 창작자로서 조금은 다른 관점이되, 많은 분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내고 의미가 있을 이야기들을 만들고 싶다”라고 말했다.

또한 국내외 무대에서 성공을 꿈꾸는 한국의 젊은 창작자들에게도 진솔한 이야기를 전했다. “공연을 만드는 일은 평균적으로 5년 이상은 걸리는, 영화나 드라마보다도 긴 시간 매달려야 하는 일이다. 반면에 창작자에 대한 대우는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훨씬 더 보잘 것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하며 “빠른 성공을 위해 뛰어들기에 좋은 직업은 아니며, 흥행하는 공연들을 교과서처럼 따르기엔 아직 한국 뮤지컬이 산업화한 역사가 그렇게 길지 않아 충분한 교과서가 있는 것 같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는 “창작진들이 쉽게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진심으로 이야기와 음악을 써서, 진정성있는 제작자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제작해야 버틸 수 있는 과정”이라며 창작자들을 응원했다.

토니어워즈 6관왕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룬 ‘어쩌면 해피엔딩’은 2015년 트라이아웃 공연을 기점으로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이에 오는 10월 10주년 기념 공연으로 관객들을 찾을 예정이다. 박 작가는 “몇 년 전부터 극장을 조금 더 큰 무대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무대가 넓어짐에 따라 시각적인 요소들에 필요한 변화가 있을 예정이다”라며 “그간의 여정을 되돌아보며 새로운 공연장에 맞춰 자연스럽게 다듬어질 예정이다. 또한 과거에 함께했던 배우분들이 이번 무대에 다시 오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조심스럽게 가져보고 있다”라며 “이번 10주년 공연이 저와 윌뿐 아니라, 그간 이 작품의 여정을 함께해 주신 분들, 그리고 십 년 동안 공감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관객분들 모두에게 행복한 공연이 될 수 있도록 애쓰겠다”라고 각오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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