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한길 김진석 기자]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의 성공이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버추얼 아이돌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끌어올리고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국 고유의 정서와 미학을 정교하게 반영한 세계관 속에 가상의 아이돌 그룹 헌트릭스(HUNTR/X)와 사자 보이즈(Saja Boys)를 등장시켜 눈길을 끈다. 이들은 실제 K팝 아이돌에 필적하는 매력과 성장 서사, 음악과 퍼포먼스, 팬덤과의 생생한 상호작용을 사실적으로 구현하며, 콘텐츠의 몰입감을 극대화했다.

영화는 넷플릭스 글로벌 톱 1위에 오르며 흥행 중이며, OST는 빌보드 차트 상위권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단순한 콘텐츠의 성공을 넘어, 버추얼 아이돌이 지닌 성장 가능성과 팬덤 기반 영향력이 현실 시장에서 실질적으로 입증된 셈이며, 새로운 글로벌 대중문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한국형 디지털 스타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플레이브(PLAVE), 메이브(MAVE:), 이세계아이돌, 스킨즈(SKINZ), 이오닛(AEONIT), 나이비스(nævis) 등 버추얼 아이돌 그룹들이 가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기며 존재감을 공고히 하고 있다. 메타버스, AI, 실시간 렌더링 등 최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탄생한 이들은 현실 아이돌에 못지않은 서사성과 유대감, 독창적인 세계관을 구축하며 MZ세대를 중심으로 폭넓은 팬층을 확보 중이다. 이제는 현실 아이돌과의 비교를 넘어, 때로는 그 이상의 몰입과 감동을 선사하는 가상 아티스트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단순한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 대중문화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패러다임 시프트가 현실화된 것이다.

버추얼 아이돌 전문가는 "이제 K팝의 미래는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융복합 IP와 버추얼 아이돌을 중심으로 크게 확장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 왜 버추얼 아이돌인가

버추얼 아이돌의 탄생 배경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버추얼 콘텐츠 제작자는 "팬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 오프라인 공연이 중단되면서, 산업은 거대한 공백을 마주했다. 그때 떠오른 건, 어디에 있든 함께할 수 있는 존재, 버추얼 아이돌이었다. 이는 기술로 구현된 감정의 대체물이 아니라, 감정을 선도하는 새로운 엔터테이너"라고 피력했다.

버추얼 아이돌 개발자는 "버추얼 아이돌 시장의 성장 가능성과 팬덤 기반 콘텐츠의 확장성을 주목해 해당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다"며 "게임 개발을 통해 축적한 기술력과 콘텐츠 제작 노하우를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엔터테인먼트에 도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고, 버추얼 아이돌 기획사 관계자는 "기술 발전과 시장 상황, 사내 여건 등을 꾸준히 주시해 온 결과,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아티스트가 활약할 시대가 올 것이라 판단했다. 이에 따라 그 전망을 구체화한 프로젝트로 버추얼 아티스트를 제작하게 됐다"라며 기술의 발전을 주요 요인으로 언급했다.

지난 4월 데뷔해 '인기가요 유니콘 in 도쿄돔'에 출연해 화제를 모은 7인조 버추얼 보이그룹 스킨즈 담당자는 "단순한 버추얼 캐릭터 그룹이 아닌, 지금의 청춘이 가진 정체성과 에너지를 대변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아이돌을 고민하다 시작된 프로젝트다. 팬데믹 이후 디지털 소비가 가속화되면서, 물리적 제약 없이 전 세계 팬들과 연결될 수 있는 IP에 대한 수요도 높아졌고, 그런 흐름 속에서 '가상'이라는 기술적 외형보다, '진정성 있는 스토리와 개성'에 집중한 스킨즈를 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 오프라인의 귀환, 그런데 왜 가상 아이돌은 더 잘 나가나

팬데믹 이후 대면 콘서트가 재개되었지만, 버추얼 아이돌의 인기는 오히려 더 탄탄해졌다. 이는 단순한 기술의 힘이라기보다는, 팬들이 이들과 맺는 감정적 관계가 일시적 유행을 넘어서는 서사를 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버추얼 아이돌 기획사 관계자는 "아이돌 콘텐츠의 본질이 무대 위 퍼포먼스, 아이돌만의 고유한 세계관과 서사에 있다는 점에 있다. 버추얼 아이돌 역시 이러한 서사와 캐릭터성, 콘셉트에 녹아든 음악적 메시지, 그리고 퍼포먼스를 구현하는 기술을 통해 팬들에게 몰입감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버추얼 아이돌은 실제 아이돌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가상 캐릭터만이 표현할 수 있는 성장 서사를 통해 별도의 팬덤 경험을 창출하는 콘텐츠"라고 밝혔다.

또다른 버추얼 아이돌 기획사 관계자는 "이제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누군가의 '존재'만을 보지 않는다. 서사와 상호작용의 농도가 더 중요해졌다. 버추얼 아이돌은 그것을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설계하고, 끊임없이 발전시킬 수 있다. 오히려 더 인간적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 몰입을 구현하는 기술, 감정을 설계하는 시대

초창기 버추얼 아이돌은 3D 애니메이션 기반 캐릭터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의 트렌드는 더욱 현실적인 비주얼과 감정표현, 그리고 인간과 닮은 음성 합성 기술로 진화했다. 이전까지는 사람을 '닮은' 존재였다면, 이제는 사람과 '구별되지 않는' 존재로 확장되고 있다.

특히 실제 팬과의 감정적 교감을 구현하기 위해 가장 집중하고 있는 기술은 음성과 표정, 움직임의 정밀도다. 버추얼 아이돌 개발자는 "팬이 슬픈 말을 하면, AI가 '공감'의 표정을 지을 수 있어야 몰입이 생기지 않겠나"라고 강조했다.

이에 팬들은 댓글, 소통 플랫폼, 실시간 스트리밍 등에서 자신이 한 말에 즉각 반응하는 버추얼 아이돌을 통해 '내가 세계관의 일부'라는 강력한 감정 이입을 경험한다. 결국 디지털 존재에 '진짜 마음'을 쏟게 만드는 것이 정서적 몰입의 새로운 코드다. 최근엔 팬의 톤에 따라 표정이 바뀌는 버추얼 아바타, 혹은 팬의 SNS 데이터를 학습해 '맞춤형 반응'을 제공하는 시스템까지 등장하고 있다.

버추얼 아이돌 기획사 관계자는 "최근 기술은 팬과의 인터랙션에서 더 높은 몰입감을 구현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표정, 동작, 눈빛 등의 디테일한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자연스럽게 구현할 수 있는 페이셜 캡처 기술, 가상 공간 속 라이브 퍼포먼스의 자연스러움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는 단순한 시청을 넘어 팬이 캐릭터와 '함께 성장한다'는 느낌을 제공하며, 더욱 깊은 정서적 교감을 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버추얼 아이돌 기획사 담당자는 "인간의 감성을 학습하고 닮아가는 그를 통해 인간과 기술이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 연결되는 아티스트로 진화하고 있다"고 내다봤으며, 스킨즈 담당자는 "단순히 그래픽 퀄리티를 높이는 것을 넘어, 팬과의 '심리적 연결'을 우선에 두고 있다. 실시간 인터랙션, 내러티브 기반 콘텐츠, 그리고 개별 멤버의 '감정선'이 담긴 커뮤니케이션 포맷 등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추후에는 팬이 직접 세계관에 참여하거나 영향을 줄 수 있는 열린 구조로 발전시켜, 관계의 방향성을 '일방향 콘텐츠 소비'에서 '양방향 감정 공유'로 확장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스킨즈, 이오닛, 나이비스

◆ 버추얼 아이돌도 '초고가 스타'…데뷔·유지비용 현실 못지않아

버추얼 아이돌은 단순한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아니다. 실제 사람처럼 움직이고, 노래하고, 팬들과 소통하며 '살아있는 존재'처럼 활동한다. 콘셉트 아티스트와 3D 모델러가 협업해 얼굴, 체형, 움직임 등을 설계한다. 최신 모션 캡처 기술이 적용되며, 표정 변화와 몸짓 하나하나가 현실감 있게 구현된다. 버추얼 아이돌의 목소리는 주로 실제 성우나 가수의 더빙, 혹은 AI 음성합성 기술을 통해 구현된다. 최근에는 AI가 실제 인물의 목소리를 학습해 가창력과 감정을 표현하는 수준까지 진화했다.

버추얼 아이돌은 무대에서도 살아 숨 쉰다. 확장현실(XR) 기술과 가상현실 무대를 활용해 실제 콘서트처럼 실시간 공연이 가능하다. 팬들은 메타버스 플랫폼을 통해 이들과 인터랙션하며, 팬미팅이나 라이브 방송도 즐길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력과 막대한 제작비용이 들어간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버추얼 아이돌 한 명을 데뷔시키는 데 드는 초기 제작비용은 최소 수억 원대에 달한다. 고퀄리티 3D 모델링, 실시간 모션 캡처 장비, AI 음성합성 시스템, 퍼포먼스 엔진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되기 때문이다.

초기 비용뿐 아니라 매월 수천만 원대의 인건비·기술 유지비도 필요하다. 실시간 모션 캡처와 AI 보이스 기술은 반복적으로 업데이트·보정돼야 하며, 콘텐츠 제작과 팬 소통을 위한 운영비도 계속된다. "작업자 급여, 장비 업그레이드, 서버 비용 등을 합치면 현실 아이돌과 비슷한 구조의 유지비가 나온다"고 버추얼 엔터사 대표는 말한다.

또 다른 버추얼 기획사 관계자는 "제작은 물론이고, 활동을 유지하는 데도 매달 수천만 원의 인건비와 기술 유지비가 필요하다. 현실 아이돌 못지않은 운영 구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 버추얼 아이돌, 공연보다 캐릭터가 돈 된다

버추얼 아이돌이 현실의 아이돌과 다른 점은 단지 '존재 방식'만이 아니다. 돈을 벌어들이는 구조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현실 아이돌이 앨범 판매, 공연, 팬미팅 등 오프라인 기반의 활동을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면, 버추얼 아이돌은 IP(지식재산권)를 중심으로 한 확장형 비즈니스 모델에 기반한다. 주 수입원은 캐릭터 자체를 활용한 굿즈 판매와 라이선스 계약이며, 스트리밍 후원, 유료 구독, 브랜드 협업, 가상 이벤트 등은 보조적인 수익원으로 작용한다.

버추얼 콘텐츠 제작사 관계자는 "앨범 판매나 공연 매출보다는 굿즈, 라이선스 계약, 캐릭터 활용 수익이 더 크다. 팬들이 사랑하는 건 캐릭터 자체이기 때문에 활용 범위도 훨씬 넓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에는 브랜드 광고 및 협업 수익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버추얼 아이돌을 광고 모델로 기용할 경우, 섭외비는 한 건당 약 3000만 원에서 5000만 원대 수준으로 형성된다. 이는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쓸 때 드는 비용 대비 절반 이하이며, 장기 계약일 경우 더 저렴하게 조정되기도 한다. 광고주 입장에서는 시간과 공간 제약 없이 원하는 콘셉트에 맞는 캐릭터 연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비용 대비 효과가 크다는 평가다.

이처럼 버추얼 아이돌은 캐릭터 IP를 중심으로 굿즈·라이선스·광고·팬 소통까지 모두 수익화할 수 있는 구조를 지닌다. 이는 단순히 비용 절감 효과를 넘어,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을 가진 새로운 아이돌 산업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 감정의 진짜를 묻다, 버추얼 아이돌의 시험대

버추얼 아이돌 산업은 여전히 진화 중이다. 기술력은 날로 정교해지고, 팬덤의 양상도 현실 아이돌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기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과제도 여전히 존재한다. 가장 중요한 건 바로 관계와 감정이다.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된 세계라도, 그 안의 감정이 얕으면 팬과의 연결은 오래가지 못한다. 진짜처럼 보이는 외형만으로는 부족하다. 팬들이 느끼는 몰입과 공감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기술 위에 진정성 있는 서사와 감정의 밀도를 끊임없이 더해나가야 한다.

버추얼 아이돌 기획사 관계자는 "대중들이 버추얼 아티스트에 공감하고 서로 감정적으로 연결되는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가장 큰 도전 과제다. 지금은 좀 더 메시지와 비전이 확장되어 기술이 고도화된 세상에서 인간과 기술을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공감을 만들어 내고자 한다"고 전했다.

스킨즈 담당자는 "가장 큰 가능성은 '확장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버추얼 아이돌은 국경, 물리적 한계를 넘을 수 있고, 아티스트가 현실적인 제약을 최소화해 다양한 모습으로 팬과 만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만 팬들과 진정성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 그리고 현실과의 자연스러운 접점을 만들어가는 것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결국은 '공감'과 '서사'가 사람을 움직인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버추얼 아이돌은 이제 더 이상 현실의 대체재가 아니다. 독립된 존재로, 고유한 정체성과 세계관을 구축하며 대중 앞에 서고 있다. 기술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외형 위에 감정이 덧입혀지고, 그 감정을 따라 서사가 쌓인다. 그리고 우리는 실존하지 않는 존재를 통해 오히려 더 실존적인 감정을 경험하고 있다. 현실을 흉내 내는 가상이 아닌, 가상을 통해 재구성된 현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버추얼 아이돌의 모습이다.

[티브이데일리 김한길 김진석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블라스트,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 패러블 엔터테인먼트, 브릿지 엔터, 온마인드, SM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