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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한령 훈풍 분다지만, 韓 방송가는 여전히 '신중론' [TD취재기획]


2025. 11.14(금) 08:00

APEC 정상회담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경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최근 11년 만에 방한한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이 맞물려 한중 관계가 복원되리라는 희망이 싹텄다. 2016년 사드(THAAD) 배치 이후 9년 만에 '한한령(限韓令)'이 풀릴 수 있을지 대중문화계의 촉각도 곤두섰다.

◆ 한한령 훈풍 분다지만, 방송가는 '신중론' 대두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보복'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한한령'은 2016년 사드 배치 이후 한국의 드라마, 음악, 영화 등의 대중문화 콘텐츠의 중국 진출을 막고 한국 상품 불매를 유도하거나 단체관광 제한 조치를 내리는 등 한류를 금지한 일련의 사태를 통틀어 일컫는다. 케이팝 가수들의 공연은 잇따라 취소됐고 중국 방송사들은 한국 드라마, 예능 콘텐츠 구매를 일제히 중단했다. 한류스타들의 중국 드라마 출연은 물론 광고, 팬미팅 등의 일감도 모두 사라졌다.

당시 한류 열풍은 한국 대중문화 산업의 근간이었다. 거대한 중국 시장을 바탕으로 형성돼 있던 수익 구조가 모두 무너지면서 시장이 경색됐고 투자가 끊기면서 영세한 기획사, 제작사들은 자금난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중국 시장을 배제한 채 시장 질서가 재편된 지 9년 만에 들려온 낭보다.

APEC 직후 여론은 한한령 훈풍을 이야기하며 들썩였다. 실제로 KBS는 지난 1일 APEC 회의를 계기로 중국 관영매체 CCTV를 포함한 중앙방송총국 CMG와 미디러 교류 협력을 강화한다는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양 기관은 뉴스와 스포츠를 포함한 다양한 형식의 미디어 콘텐츠 협력을 모색하기로 했고, 양 기관이 주최하는 주요 국제행사를 상호 공유하고 참여 장려를 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정작 현장에서는 신중론이 대두됐다. 업계 관계자들과 대담을 나눠본 결과, 유의미한 콘텐츠 수출이나 대규모 행사가 진행되지 않는 이상은 '진짜 해제'라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 KBS와 CMG와의 협약도 '한중가요제' 재개, KBS 교향악단 베이징 공연, '뮤직뱅크 월드투어' 중국 진출 등 가요 관련 프로젝트만 추진이 예정됐을 뿐, 방송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협약이라고 보기에는 아직 무리라는 반응이다.

배우 소속사 대표 A씨는 "9년 동안 수 차례 한한령 해제에 대한 기대가 조성됐었지만 실제로 성사된 계약은 없었다"라고 짚었다. "APEC 이후 한국의 제작사들이 중국 측 업체들과 미팅에 나섰지만 서로 보유한 콘텐츠들에 대해 소개하며 소통의 물꼬틑 트는 데 그쳤다"라며 "단순한 스킨십 만으로는 한국 콘텐츠들에 대한 규제가 풀렸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 韓 스타 빈 자리 채운 中 스타, "한류가 예전처럼 맹위 떨치긴 어려워"

한한령이 풀린다 해도, 지난 9년의 시간 동안 탄탄히 내수 시장을 다져온 중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와 경쟁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이어졌다. 또 다른 배우 소속사 대표 B씨는 "한한령 이전에도 소속사 입장에서는 드라마 판권 관련 매출보다는 중국 내의 인지도 상승을 바탕으로 한 배우들의 광고료가 매출에 큰 기여를 했었다. 한류 스타들의 부재가 계속되면서 중국의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차지했고, 자국 내 배우들의 수요가 충분한 상황에서 다시 시장이 열린다 해도 소수의 톱 배우들을 제외하면 한국 배우들이 이들과 경쟁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A씨 또한 유사한 전망을 내놨다. 그는 "가수들의 경우 콘서트 등 공연, MD 상품 판매 등을 통해 수익이 남는 구조지만 배우들의 경우 광고, 행사 일부를 제외하면 수익이 나올 곳이 적다"라며 "최근 배우들 사이에서도 아시아 투어 팬미팅 등이 활성화되기는 했지만 팬서비스 차원의 행사인 경우가 대부분이지, 실제로 유의미한 수익을 낸 사례는 드물다"라고 밝혔다. 중국 시장은 분명 거대하고 매력적인 시장이지만, 예전만큼 한류가 맹위를 떨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업계 전반에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이태원 클라쓰, 폭싹 속았수다

◆ '한한령' 9년 간 재편된 K-콘텐츠 시장 구조, 두 마리 토끼 노린다

중국 방송사가 정식으로 수입한 마지막 드라마는 2016년 초 제작된 KBS2 '태양의 후예'다. 이후 K-콘텐츠는 글로벌 OTT(Over-the-top, 디지털 배포 미디어 서비스) 플랫폼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신드롬을 일으킨 '오징어 게임' 시리즈를 필두로 '킹덤' '이태원 클라쓰' '사랑의 불시착' '폭싹 속았수다' 등 여러 수작들이 인기를 얻으며 동서양을 막론한 거대한 K-드라마 팬덤을 형성했다.

B씨는 한한령 이후 OTT 플랫폼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드라마 시장의 질서가 완전히 달라진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콘텐츠 시장 또한 OTT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아졌기에 더 이상 중국 시장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수익 구조가 형성됐다"라며, 중국 시장이 한한령 이전처럼 절대적인 위치에 있지 않다는 분석을 내놨다.

배우 소속사 관계자 C씨는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K-콘텐츠에 대한 전 세계의 신뢰도가 상승했고, 기존 동남아 시장은 물론 미주, 유럽, 남미, 중동까지 K-콘텐츠와 한국 배우들이 진출할 수 있는 마켓의 영역이 넓어졌다"라고 밝혔다. "한한령이 해제에 대한 기대감이 업계 전반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매력적인 새로운 시장들 옆의 '또 다른 옵션' 정도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과거와는 달리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며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전략이 기본 전제가 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뉴시스, 각 드라마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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