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무언가를 하기 싫은 이유가 100가지라도, 하고 싶은 이유가 단 하나라도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 일을 한다. 그것이 애정을 기반으로 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배우 이준혁이 걸어온 길 역시 애정으로 그려온 궤적이다. 그 길에 여러 변수들과 비애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준혁이 기꺼이 그 ‘마술쇼’ 무대에 오른 건, 그가 애정하는 것들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8일 9, 10회 공개와 함께 종영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연출 윤영빈)는 동명의 웹소설을 둔 작품으로, 위아래로 치이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팀장 공은태(이준혁)가 로또 1등에 당첨된 후 사직서 대신 당첨금 13억을 품고 이전과 다른 마음가짐으로 출근하는 K-직장인 오피스 드라마다. 이준혁은 극 중 홍성인터내셔널 영업5팀장 공은태를 연기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 봤을 터다. 매주 토요일만 되면 ‘혹시 이번 주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기대감에 로또 용지에 적힌 숫자들을 당첨 번호와 맞춰보며 느끼는 그 찰나의 기분 좋은 설렘을 느끼며 말이다. 모든 직장인들의 그 꿈이 이준혁이라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얼굴을 통해 대리만족이 실현됐다.
사실, 공은태는 이준혁이 최근 몇 년 간 보여줬던 얼굴들 중 가장 우리 현실에 맞붙어 있는 인물이다. 상사들의 실적 압박과 사내 정치질, 거기다가 자신 보다 나이 많은 부하 직원에 이리저리 치이지만 매달 나가는 고정 비용을 생각하며 참는 것이 더 익숙해지는 일은 직장인이라면 공감을 안 할 수 없는 캐릭터다.
이준혁 역시 배우와 직장인, 직업군은 다르지만 그 비애를 아주 모르지는 않았다. 프리랜서이긴 하지만 공은태가 그랬던 것처럼, 늘 누군가의 평가와 선택을 받아야 하는 직장인의 비애와 비슷한 결의 감정을 느낀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준혁은 공은태가 처한 상황에 깊이 몰입해 이를 표현할 수 있었다. 13억 원이라는, 내 삶을 드라마틱하게 바꿔주기엔 애매한 그 금액 때문에 계속해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공은태의 처지는 이준혁이 그간 걸어온 길과 맞닿아 있다. 하나의 작품이 성공한다고 해서 배우로서의 입지는 나아졌을지는 몰라도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살인자부터 비리 검사, 테러리스트에 이르기까지 강렬하고 특이한 배역들을 주로 맡아왔던 이준혁에게 공은태는 모처럼 자신을 온전히 투영할 수 있는 캐릭터였다. 이준혁은 “지금까지의 캐릭터들은 저라는 개인을 너무 많이 지워야 하는 작업이 많았다면, 공은태는 조금 더 저를 쓸 수 있는 인물이었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보통 사람의 생각을 하고 자신의 실제 리듬을 그대로 써도 어색하지 않은 평범한 직장인의 얼굴은, 그동안 인간 이준혁과 멀리 떨어져 있던 배역들을 연기해 온 그에게 새로운 재미와 묘한 해방감을 안겼다.
이러한 편안함은 연기의 방식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났다. 프레임 안에서 에너지를 꽉 채워 표현해야 했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 작품은 리듬감이 더 중요한 작업이었다. 그는 “이 작품은 배우들이 미세한 리듬으로 움직인다. 제가 베이스를 담당하면서 리듬을 툭툭 칠 때 미묘하게 연기하는 재미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묵묵히 중심을 잡고 미세한 리듬을 타는 이준혁의 연기는 상대 배우들과 완벽한 앙상블을 이루며 극에 현실적인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이준혁의 디테일한 고민이 가장 빛을 발한 순간은 극 중 공은태가 로또 당첨 이후 팀원들에게 처음으로 분노를 터뜨리는 장면이었다. 대본 연습 때와 모든 세팅이 완료된 현장의 온도가 달라 깊은 고민에 빠졌다는 그는 “너무 난리를 쳐버리면 관계성이 무너지고 공은태 같지 않을 것 같아서 젠틀하게 화내는 방법을 택했다”고 말했다. 감정의 과잉 없이, 딱 필요한 만큼만 정확하게 할 말을 하는 공은태의 성정을 지키려 한 것이다. 더불어 양준호를 연기한 서현우의 욕설 연기 디테일이 극적인 텐션을 한껏 끌어올려 준 덕분에 이준혁도 거기에 맞게 강도를 올릴 수 있었다. 초반 시청자들에게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 명장면은 그렇게 이준혁을 비롯해 영업 5팀을 연기한 배우들의 합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다.
이준혁이 공은태를 깊이 사랑하게 된 이유는 일확천금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단단함에 있었다. 그는 “은태가 흔들리지 않는 지점에는 본인의 일을 사랑하는 코어가 있기 때문”이라며 “그 코어가 있어서 타인에게도 잘할 수 있는 것 같아 그 점을 가장 배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13억 원이라는 돈 앞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내며 긍정적인 리듬을 만들어내는 공은태의 모습은 묘하게도 이준혁의 삶과 겹쳐 보인다.
스스로는 공은태와는 달리 흔들릴 때가 많다며 웃어 보였지만, 그도 그만의 흔들리지 않는 코어가 있었다. 자신이 몸담고, 또 ‘덕질’ 중인 대중문화에 대한 애정이 바로 그 코어다. 그는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 그 과정 자체를 마술쇼에 비유하며 “도대체 이 마술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어서 이 일을 시작하고 계속해왔다”고 했다. 끊임없이 작품을 보고, 실패를 탐구하며 그 마술을 알아가려는 과정 자체가 이준혁을 지탱하는 힘이다.
일을 향한 깊은 애정은 자연스럽게 타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으로 확장됐다. ‘마술쇼’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이준혁은 동료 배우들과 제작진의 숨은 노력과 고충을 누구보다 선명하게 보게 됐다. 그렇기에 뛰어난 연기를 펼치는 동료를 볼 때 질투보다는 감사함을 느낀다는 그는 “현장에서 연기 외에도 극이 진행될 수 있도록 수많은 일을 해주는 동료들을 볼 때 가장 큰 감동을 받는다”고 고백했다. 이 애정을 기반으로 이준혁은 여러 작품들을 즐기고, 그걸 또다시 자신의 연기 자양분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결국 이준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사람과 일에 대한 애정이다. 이번 작품에서 이준혁이 가장 바랐던 것 역시 자신보다 함께 한 배우들과 제작진이 두루 주목받고 사랑받는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는 이준혁의 미소는 공은태의 그것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로또 당첨이라는 기적 이후에도 변함없이 자신의 일을 사랑했던 공은태처럼, 이준혁 역시 여러 파고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자신이 애정하는 것들을 위해 어제 보다는 오늘이, 오늘 보다는 내일이 더욱 기대되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 애정이 켜켜이 쌓여 완성될 이준혁의 내일이 벌써부터 기다려지고 또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에이스팩토리, 티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