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낯선 판타지의 외피를 벗기면 지극히 익숙한 이야기가 나온다. '재혼 황후'는 그 익숙함 위에 공들인 세계관과 배우들의 연기를 얹어 한국형 로맨스 판타지, 소위 '로판' 장르의 가능성을 시험대에 올렸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재혼 황후'(극본 여지나·연출 조수원)는 강대한 동대제국의 황제 소비에슈(주지훈)와 황후 나비에(신민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사이다. 소비에슈는 별도의 정부를 두지 않을 만큼 아내를 아꼈고, 나비에는 완벽한 황후로서 제 역할을 다해 왔다. 두 사람에게 유일한 고민은 후계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함께 나선 사냥에서 소비에슈는 도망 노예 라스타(이세영)를 구하고, 괴수에게 쫓기던 나비에는 신비로운 새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이 만남을 계기로 굳건해 보이던 황실 부부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제작 단계에서부터 여러모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원작 웹소설과 웹툰이 이미 탄탄한 팬층을 보유한 국내 로판 계의 대표작이었기에 캐스팅 단계부터 배우와 캐릭터의 싱크로율을 하나하나 따지며 화제가 됐다. 지난달에는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온 스크린' 섹션에서 초반부 3회가 선공개됐고, 당시 관람한 관객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린 후기가 쏟아지면서 본 공개를 기다리는 시청자도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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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재혼 황후 |
막상 공개된 작품에서는 이질감이 생각보다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당초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처럼 어설픈 그림이 나오거나 서양 드라마의 패러디처럼 가벼운 느낌일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 그러나 체코와 독일에서 진행한 해외 촬영과 고풍스러운 고성의 분위기가 도입부부터 시선을 압도했다. 화려한 의상과 세트, 소품까지 하나의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해 공들인 시각적 요소가 빛나 '재혼 황후'만의 비주얼이 단단하게 완성됐다.
또한 작품은 시작부터 사냥터에서 괴수가 튀어나오고 왕자 하인리가 새로 변한다는 수인 설정을 자연스럽게 보여 주며 이곳이 아예 '판타지' 세계임을 강조한다. 고증 오류를 걱정할 필요 없이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장르라는 점을 시청자가 받아들이고 나면 '재혼 황후'는 예상보다도 훨씬 신나고 재미있는, 이른바 '도파민' 터지는 이야기가 된다. 황실 공문서에 한글 손글씨체가 적혀 있고 배우들의 드레스에는 지퍼가 달려 있는 장면에서는 다소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한국형' 로판이라는 설정 아래 기세 좋게 밀고 나가는 것이 낫다는 제작진의 뚝심이 느껴진다.
제작발표회에서 "낯설지만 익숙할 것"이라고 자신하던 배우들의 말처럼 판타지 설정이라는 외피를 떼고 보면 수많은 드라마에서 봐 온 스토리라인이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황후와 결혼 관계를 이어 가던 황제가 갑자기 노예 여인에게 반하고, 황제의 냉대로 수모를 겪던 황후가 다른 왕국 왕자의 구애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전 세계 어느 드라마에나 볼 수 있는 전개다. 그런 만큼 먼저 '껍데기'에 적응하면 인물에 몰입하기 쉽다. 황후 나비에와 그에게 찾아온 새 사랑을 응원하게 되고, '나쁜 남자'인 황제와 '순수악' 라스타에게 손가락질하며 욕하는 재미까지 갖춘 '도파민 파티' 드라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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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재혼 황후 |
여기에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도 몰입을 돕는다. 먼저 황후로서의 우아함과 무게감을 모두 갖춘 신민아가 눈에 띈다. 원작과의 싱크로율을 극대화하는 미모는 물론, 황후의 자리에서 날 것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절제해야만 하는 삶을 살고 있는 나비에의 감정선을 절묘하게 표현했다. 이종석 또한 원작 속 하인리의 이미지를 그대로 구현했다. 이국적인 외모의 아름다운 왕자라는 묘사에 꼭 맞는 비주얼에 연기력까지 갖춰 로판 세계관을 굳건히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시청자들의 삿대질을 받을 준비가 돼 있다"던 주지훈은 원작 팬들의 원성이 자자하던 소비에슈의 행동과 대사를 맛깔나게 구현해 작품의 실사화에 큰 역할을 했다. 이세영도 웹툰을 찢고 나온 듯한 싱크로율 높은 미모를 자랑하고, 자칫 오그라들 수 있는 3인칭 대사마저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연기력으로 라스타 캐릭터의 존재감을 극대화했다. 여기에 정영주, 이봉련, 최대훈 등 이미 연기력으로 정평이 난 명품 조연들이 더해져 세계관을 더욱 공고히 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지만, 4회까지의 감상은 이만하면 첫 한국형 로맨스 판타지를 충분히 구현해 냈다는 인상이다. '재혼 황후'의 실험적인 도전이 성공하면 수많은 인기 로판 작품이 줄줄이 실사화돼 하나의 장르를 형성할지도 모를 일, 글로벌 OTT를 무대로 K드라마가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재혼 황후'가 새로운 개척지를 만들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재혼 황후'는 매주 수요일 2편씩 공개돼 총 10회 에피소드로 시청자들을 만난다.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