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박진영 기자] 인터뷰 중 김기방(31)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무대가 정말 좋고 재미있어요”였다. 스스로에 대한, 혹은 작품에 대한 홍보를 하기 위한 자리였으니 형식적일 수도 있는 말이다. 하지만 조심스러우면서도 강단 있는 목소리로 자신보다 함께 공연하고 있는 배우들을 더 많이 칭찬하던 이 남자, 진심이 느껴졌다.

김기방은 현재 대학로에서 공연 중인 ‘커피프린스 1호점’(연출 김동연, 이하 ‘커피프린스’)에서 하림 역을 맡고 있다. 2009년 인기리에 방영된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배우 김동욱이 연기했던 역할이기도 하다.

김기방은 같은 소속사 선배 배우인 김수로의 영향으로 뮤지컬에 도전하게 됐다. 김수로는 ‘커피프린스’에서 제작 PD를 맡았다. 김수로는 밝고 경쾌한 분위기로 극을 이끌어나가야 하는데, 김기방이 그 역할을 잘 해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김수로 선배님이 ‘뿌리깊은 나무’를 보시고는 이 뮤지컬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셨나봐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워낙 많이 보셨던 지라, 분위기를 살리면서 무대 위에서 잘 놀 것 같다고 판단하셨대요. 그래서 ‘일단 얘를 끌어들여놓고 보자’라는 마음으로 일종의 모험을 하신 것 같아요.”

다수의 팬 미팅 진행으로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나는 건 부담스럽지 않았지만, 첫 뮤지컬 무대이기에 생기는 어색함이나 낯설음은 피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항상 무대 연기를 갈망했고,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다독임으로 그는 용기를 내게 됐다. 이 같은 김수로와 김기방의 예상은 적중했다.

“뮤지컬 하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정도로 좋고, 놓치고 싶지 않아요. 제 역량이 된다면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에요. 물론 주 매체는 방송이나 영화가 되겠지만, 그래도 가능하다면 꼭 1년에 한 두 작품은 하고 싶어요.”

제작PD인 김수로는 김기방에게 무대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했다. 그는 구구절절 설명하진 않았지만 “무대에 직접 서게 되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김기방은 무대에 서면서 김수로의 말을 100% 알 수 있었다고 했다.

“배우들끼리 서로 의지하고 믿게 돼요. 제가 잘못 되면 전체가 흔들리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책임의식이 있어서 서로를 많이 믿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커프’ 배우들은 최고의 배우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가장 친한 배우를 꼽아달라고 말하자 “모두 다 친한데”라며 한참동안 고민했다. 그러다 “남자 배우를 꼽긴 좀 그러니까 여자 두 분이라고 합시다”라며 재치 있는 대답을 했다. 윤은혜가 맡았던 고은찬 역을 뮤지컬에서는 유주혜와 홍지희가 연기하고 있다. 특히 김기방은 함께 공연을 좀 더 많이 한 유주혜에 대해 “참 잘 맞는 친구”라며 “일은 제가 먼저 시작했지만 무대 경험은 그 친구가 많기 때문에 연습 때도 많이 물어보고, 어린데도 많이 의지하게 됐어요”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또 그는 같은 역을 맡고 있는 김남호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남호의 모든 점이 무대에 적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참 많이 배웠어요. 또 남호가 춤을 굉장히 잘 춰요. 춤을 추면서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모든 배우가 남호를 따라갈 수가 없을 정도죠. 그런 에너지를 참 많이 배웠어요”라고 끊임없이 칭찬을 쏟아냈다.

그러면서도 김기방은 “그래도 순발력이나 자연스러운 애드리브 같은 건 제가 남호보다 조금 더 잘하지 않을까요?(웃음)”라며 은근한 자기 자랑도 잊지 않았다.

“사실 텃새가 있을까봐 걱정했어요. 절 낙하산이라고 생각하면 어쩌나. 그러면 어떻게 난관을 극복하나. 부딪혀서 이겨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그런 게 전혀 없었고, 오히려 정말 편했어요. 저보다 더 마음을 많이 열어서 먼저 다가와주셨고 또 도움도 많이 주셨죠. 그래서 이 사람들 때문에 뮤지컬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이렇게 좋은 곳에 있다가 다른 곳에 가면 이만큼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길 정도에요. 걱정이에요.(웃음)”

이런 마음이기에 김기방은 무대 위에서 가장 보람되었던 순간도 배우들과의 호흡이 딱 맞았을 때라 말했다. 최근 공연에서 배우 5명의 기운이 하나로 뭉쳐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게 됐다고. 배우들이 즐기고 있으니 관객들의 재미는 오죽하겠는가. 김기방은 배우와 관객이 하나 된 마음을 느끼던 그 순간의 희열이 아직도 생생한지 한껏 들뜬 표정을 지었다.

“그날 저를 예뻐해 주시는 드라마 작가님이 학생들과 단체관람을 하셨어요. 두 번째 보는 건데도 정말 재미있게 봤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감사했고, 또 배우들에게도 정말 고마웠어요. 또 그런 감동을 관객들에게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행복했어요. 이 행복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지난달 열린 ‘커피프린스’ VIP 시사회에는 김기방을 응원하기 위해 많은 연예계 스타들이 총출동했었다. 송중기, 장혁, 이광수, 김범, 이윤지, 강혜정 등 많은 배우들이 공연장을 찾아 김기방의 인맥을 다시 한 번 실감케 했다.

“다들 오셔서 재미있게 보고 가셨어요. 기대를 많이 안 하고 왔는지, 다들 저의 재발견이라고 하시더군요. 조인성 씨는 다른 날 따로 와서 공연을 보고 갔는데 좋아하셨어요. 그리고 ‘뿌리깊은 나무’ 때문에 5개월 동안 같이 고생했던 장혁 선배님은 ‘기방이가 무대에서 아주 잘 노네. 자기꺼 잘 찾은 것 같다’고 하셨죠. 무대에 있는 제 모습이 참 즐거워보였나봐요. 그래서 다시 보러 온다던 분들도 많았어요.”


그도 그럴 것이 김기방이 연기하고 있는 하림은 눈치는 없지만 그 자체로 활력소가 되는 재미있는 캐릭터다. 그리고 김기방은 극 초반 한결의 맞선녀로도 출연한다. 관객들은 짧은 치마에 여장을 하고 등장한 김기방을 보며 경악에 가까운 탄성을 내지르곤 한다. 이에 여장을 하는 소감을 묻자 김기방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맨 처음엔 유니폼을 입고 원피스를 입기로 했었어요. 그런데 의상 피팅을 할 때 남호가 벗고 하겠다고 하는거에요. 그래서 그걸로 결정이 나버렸죠. 제가 첫 공연이었기 때문에 큰일이라고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까 그게 더 재미있고 정확한 것 같아요. 유니폼을 입고 했다면 지금과 같은 임팩트가 없을 것 같거든요. 이 정도의 충격은 필요한 것 같으니까 죄송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어요.(웃음)”

무대 뒤에서 옷을 빨리 갈아입어야 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말한 김기방은 크게 실수한 것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대사 실수는 좀 있었지만, 전 뻔뻔하게 첫 문장부터 다시 하거든요. 그래서 관객들이 더 웃으시더라고요”라고 회상했다. 또 한결 역의 김태한이 “사람 병신 만드는 거 한순간이네”라는 대사를 “사람 만드는 거 한순간이네”라 했다고 말하고는 허허 웃음 지었다. 실수도 능청스럽게 지나가니까 어느 게 맞는 대사인 지 헷갈릴 정도라는 것.

마지막으로 김기방은 스스로를 ‘비주얼 배우’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여기까지 온 것은 연기력이 아니라 미친 존재감으로 빛나는 비주얼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 열 명, 스무 명 중에서도 튈 자신이 있어요. 예전에 신다은 씨가 ‘오빠는 그냥 존재 자체가 배우인 것 같다’라고 했었어요. 저는 그저 따뜻한 배우이자 포수 같은 배우가 되고 싶은 바람이에요. 상대 배우들이 어디로 공을 던져도 다 받아줄 수 있을 정도로 믿음이 가는 배우. 딴 배우들이 뻔뻔하게 와도 모두 포근하게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이게 제 배우로서의 이상향이에요.”

[티브이데일리 박진영 기자 news@tvdaily.co.kr/사진=김한준 기자, 아시아브릿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