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끝까지 고상한 사랑이었다. 나이의 무게가 더해갈수록 커진 두려움 뒤로 숨어버린 어른아이의 선택은 결혼이 아닌 동거였다. 개인의 선택이니 당연히 존중해주어야 하지만, 시청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주인공들이기에 그 앞날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좀 더 신중함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SBS 주말드라마 ‘끝에서 두 번째 사랑’(연출 최영훈 극본 최윤정)이 강민주(김희애)와 고상식(지진희)의 따뜻하고 애틋한 연합 속에 막을 내렸다. 과거의 상처에서 비롯된 여러 오해와 편견들을 넘고 넘어 맺은 그들만의 마지막 장면이었을 테지만 애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 한 구석이 헛헛해오는 것은 막을 수 없더라.

원작이 따로 있어 그를 충실히 따랐을 뿐일 수도 있겠지만(각색한 걸 수도 있겠다만), 결국 ‘어른아이’ 운운하며 책임감의 농도가 덜한 ‘동거’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 못내 아쉬운 까닭이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자신을 대입시키며 몰입하는 드라마 주인공에게, ‘성장’은 필수적인 요소다. 주인공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성장을 경험함으로써 시청자들은 현실 위에 놓인 자신을 좀 더 솔직하게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아무리 통속적이다 어쩐다 해도 드라마가 가져야할, 본연의 소명이기도 하다.

‘끝에서 두 번째 사랑’은 겉으로만 보자면, 무료한 생으로 끝날지도 모른단 생각에 우울해하던 40대의 독신여성과 일이든 삶이든 안전제일주의를 원칙으로 하는 40대 독신남성, 상반된 두 남녀가 서로 얽히고설키며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맥락의 중심은 다른 곳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얼마 전부터 우리사회에서 확연한 속도로 퍼지고 있는 존재들, 나이만 들었을 뿐 여전히 삶과 사랑과 세상 앞에선 상처를 입을까 두려워 애써 ‘쿨’하게 책임을 회피하며 살려는 ‘어른아이’들에 관해서라 할까.

어떤 예기치 못한 사건,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 혹은 누군가에게 그런 아픔이나 상처를 줄까 두려워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어날 일이 안 일어나진 않으며 상처를 주고받는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하나같이 불완전한 존재들이 함께 모여 사는 불완전한 세상이니까. 불완전함을 한껏 머금은 단어, ‘어른아이’의 등장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어른아이’가 ‘어른’이란 단어를 대체할 수 없듯이, 그렇다고 ‘어른아이’가 정상적인 어른들의 모양새라 인정될 순 없다. 암암리에 존재하던 불완전한 어른들의 입장이 현시대에 급증하면서, 우리도 그들 안에 포함되면서 그 심정에 크게 동감하고 이해한 결과 생긴 신조어일 따름이다. 즉, 드라마가 진정 ‘어른아이’들을 그리고 싶었다면 ‘어른아이’에서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아내든지, 굳이 그러고 싶지 않다면 차라리 ‘어른아이’들을 등장하게 만든 척박한 현실세계를 담아내든지 해야 했다. ‘끝에서 두 번째 사랑’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서, 대사만 번지르르하게 내뱉어 ‘어른아이’를 마치 정상적인 어른인 것처럼 만들어놓았다.

사랑하는 연인은 반드시 이야기의 끝을 결혼으로 맺어야 하냐고, 구시대적 발상이라며 반문할 수도 있으리라. 그 ‘구시대적 발상’이란 게 도대체 어디를 기준으로 하는 건지 알 순 없지만, 단지 결혼이 아닌 동거를 택한 결말 때문만이 아니다. 주인공이 동거를 선택한 이유 자체도 ‘구시대적 발상을 무너뜨리겠어,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보여겠어!’에서 비롯된 게 아니지 않나. 그저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게 두렵고 앞으로의 삶이 안전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는 어른아이의 대표적 특징인, ‘책임 회피’를 아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겠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선택할 상황에 많이 놓인다는 의미다. 선택엔 항상 책임이 뒤따르고, 이는 때때로 삶을 한없이 무겁고 부담스럽고 두려운 것으로, 고상치 못한 것으로 만든다. 하지만 이리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짊어질 줄 알아야 비로소 우리는 어른이 되어간다 할 수 있다. 나이를 먹는다고 자연스레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니까. 어쩌면 요 근래 수많은 ‘어른아이’들의 등장은 비틀린 세계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무거워진 삶의 무게에 지레 겁을 먹고 몇 발 물러서서 회피해버린 이들이 늘어난 까닭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실망스러웠다. 결국 어른이 되지 못하고 어른아이에 머물러 버린 강민주와 고상식의 모습이. 환상 섞인 희망일지라도 어른아이들에게 비정상적인 현실을 버티고 넘어설, 진정한 어른이 되어갈 힘을 주길 바랐건만, 어른아이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도리어 어른의 진정한 의미까지 퇴색시켜 버렸다. 지금으로선 중상류층의 위선적인 사랑의 모습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SBS]